Scientist

2025. 10. 7.

by 한상훈



고향으로 가던 길이 콜드플레이의 사이언티스트 곡을 들었다. 이 곡을 듣자마자 과거로 회귀하는 것만 같았다. 이 곡은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 내 마음을 가장 온전히 담은 곡이었기 때문이다.


곡의 가사는 내 마지막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며칠간 폐인처럼 지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잠이 오지도 않았다. 매일 일상처럼 늦은 밤 나누던 이야기는 공허한 시간으로 바꿨다. 그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워야 했지만 빈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심장이 아팠다. 내가 그녀를 그 정도로 사랑했었는지 과거엔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끝나고 나니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았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이 가사에 진하게 녹아든 것만 같았다. 보고 싶었고. 미안했고.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하지만 그렇게 끝이 나고 나서 어쩌면 영혼의 일부분이 온전히 잘려나간 것 같았다. 그 후로는 인생에 또 다른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것 같다. 사랑은 쉽게 주지 않기로. 사랑 외에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를 바라며.


꽤 오래전 일이기에 모든 기억도 상처도 다 치유된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저 상처를 두꺼운 껍데기로 두르고 있었을 뿐. 고작 노래 한 소절만으로 나는 오래전 기억들과 상처들로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그녀는 알 수 있을까. 내가 마지막 여자로 사랑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알았기 때문에 떠났을지도. 나는 영영 답을 들을지 못 들을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밝았던 얼굴을 기억해 보면 앞으로도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얼굴을 찢어내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처럼, 내 자신보다 사랑한 사람이 떠나가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게 여자를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의 일부분에 영구적 손상을 입어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나보다 더 소중했던 사람과의 이별. 목숨보다 소중했던 신앙.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나를 이곳저곳 찢어발겨 어딘가 훼손된 불구의 사람으로 만든 건 아닐까. 조금은 덜 간절하게 살았더라면. 조금은 덜 극단적으로 살았더라면 나의 사랑도 편안했을까.


나는 이제 온전히 이 세상을 그저 하나의 게임 정도로 볼뿐이다. 내가 선택한 날 것의 게임. 지극히 사실적이라 게임인지도 인지할 수 없는 게임. 그런 비극 속에서 인간다움을 느끼고 있다. 즐거움과 괴로움. 수술의 고통. 약하면 경험하는 필연적 모욕. 가난의 비참함.


눈이 아플 정도로 눈물이 차올라 터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세상 모두를 적으로 삼아 세계를 잿더미에 두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이토록 비참한 상황에 몰린 나 자신을 연민하며 통곡의 괴로움을 울부짖거나.


내게 복이 있다면 마지막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복이 있다면 삶이 초라한 비극의 서사로 물들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복이 있다면 아팠던 기억이 나를 가장 위험한 곳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 나에게 복이 있다면 이전의 상처가 기억나지 않을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복이 있다면. 나에게도 그것을 누릴 순간이 도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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