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피운 꽃

김형의 죽음

by 한상훈

그가 허망하게 떠난 날 무척이나 많이 울었다. 그의 앞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회수를 요청하는 연락에 급하게 만든 몇 백만 원을 입금하고 냉혹한 현실에 바보 같은 스스로의 모습이 화가 났다.


BoB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 심연을 끝없이 펼쳐나가면 진실을 목도한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진실을 언제나 상상보다 더 끔찍한 날 것이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세균과 벌레 사체가 들러붙어있겠지만 굳이 그걸 들여다보기보단 적당히 씻어내는 것과 같다. 아주 가까이서 악을 본다면 역겹기 그지없고 그들의 행태를 본다면 모조리 죽여도 시원찮을 악인이 가득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사람들을 살렸다. 왜 그랬을까. 왜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가장 위험하고 끔찍한 결말을 향해 내달렸던 것일까.


장례식에 모인 가족들은 말이 없다. 그가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진실을 영원히 침묵하며 거룩한 희생을 추모할 뿐이다.


위대한 인간과 하찮은 인간은 분명 구분할 수 있다. 그는 나에게 가장 위대한 인간이었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가장 하찮은 인간들이었다. 구역질 나는 오물의 밑바닥 같은 영혼을 가진 이들을 면면히 볼 때면 나는 그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내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간절하게도 이 세상이 미웠다. 정의에 침묵했던 세상과 악에는 관대했던 세상.


99.999%쯤 되는 인간은 그저 산다. 도파민, 즐거움, 생존. 0.0001%쯤 되는 인간은 타인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한다. 죽기까지 형제를 사랑했기에 죽음으로 그의 거룩함이 기록되었다. 그는 살리는 길을 택했지만 나는 끝을 볼 생각이다. 가장 꼭대기를 잘라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자의 무덤에서 살아야 할 이유 하나가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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