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을 해하는 적 1명을 죽일 수 있다면
살아야 할 사람은 죽었고, 죽어야 할 사람은 살았다. 그게 마지막 결론이었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간단한 산수였다. 그를 죽이면 100명의 무고한 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물론 그 빈자리를 채우는 또 다른 이가 생기는 것은 뻔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만약 사람의 목숨으로 인생의 값을 매길 수 있다면 어떻게 계산을 해야 맞을까?
억압받고 핍박받는 이들을 살린 수와 그들을 고통받게 하는 악인을 죽인 수. 그 두 숫자 중 더 의미 있는 숫자는 무엇인가. 구하는 것. 악을 제거하는 것. 어떤 쪽에 부등호를 둘지 인간이 판단할 수 있겠는가.
목숨을 내려놓은 이들에게는 평가는 중요치 않았다. 왜 살아야 했을까. 그들에겐 '나'가 없었다. 형제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과 같이 생각했기에 형제가 위기에 놓여있다면 내 목숨을 던져서라도 살려야 했을 뿐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가장 우선되는 첫 계명을 따르기 위해 죽기까지 따른 것일 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칼을 들었다면, 안타깝게도 그 칼의 끝도 알아야 했다. 베드로가 칼을 뽑았을 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칼로 끝이 정해질지라도 형제를 해하는 적들의 목을 하나라도 더 가져갈 수 있다면, 피가 손에 묻기를 주저하지 않을 뿐이다. 그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싸워야 했고, 누군가는 지키는 것이 아닌 적을 섬멸하기 위해 적진에 들어가야 했다.
적이 사라지지 않는데 어떻게 전쟁이 끝나겠는가. 적이 내 목을 노리고, 내 형제를 감옥에 가두고 있는데 그것을 집구석에 처박혀 울며 기도만 한다고 바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철창을 내 손으로 부숴 그들을 구해내겠다. 그리고 그들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비록 그 값이 많은 피를 원했더라도 말이다. 사랑 때문에.
살아남은 비겁한 자는 이렇게 기도해보곤 한다.
'나는 오랫동안 더 살아 네가 구하지 못한 나머지 모두를 구해내겠다. 적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신께서 나를 도우시길.'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지금 내 몸을 던지는 것.
만 명을 살리기 위해 10년의 기약을 세워 살아가는 것.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남은 모든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것.
영웅들은 저곳에서 영웅들이 될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모두에게 증인이 된다. 그들이 영웅이었다는 증거는 그들이 살린 이들이 증언할 것이다. 생명의 값을 얼마로 바꿀 수 있을까. 가장 귀한 것을 위해 그들은 살아왔고, 역사가 모두 꺼지더라도 유일하게 빛날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