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이유』 끝

인간은 자신의 생전의 모습과 마지막 모습을 정할 수 있다

by 한상훈

인간 중 그 누구도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이는 없다.


만약 이유가 존재한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의 삶의 목적은 '죽기 위함'이라는 모욕 밖에 남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태어남을 선택할 권리도 기회도 박탈되어 살아가지만, 다른 모든 동물들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지 와 어떻게 죽을지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오랫동안 고민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딘가를 걸어 다녔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가 세상 누가 두려울까. 무차별적으로 세상의 온갖 불만과 비판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생명보다 죽음이 가까웠기 때문일지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영혼은 죽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넓은 의미의 명사를 사용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것을 쥐고 싶어서 발버둥 쳤을 뿐. 그렇게 실존을 상실하며, 가치를 상실하며, 믿었던 신을 내려놓으며, 끝없는 회의감과 실망감과 분노 그 어딘가에서 요동치는 삶이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나에게 이유는 없었기에, 아니 인간에게는 살아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에, 사람은 각자의 이유를 만들거나, 이유가 필요 없다 판단하거나, 이유와 무관하게 살아간다. 누군가에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누군가에겐 아무 가치도 없는 질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제 사람에게 남은 것은 이유 없는 곳에 와서 어디로 가기를 택했냐는 물음일 것이다. 그 선택은 아름다웠을까? 스스로 대답해야 하겠지. 각자는 어떻게 살아갈지와 어떻게 죽을지. 단 2가지 만을 증명하거나 주장하며 살아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대부분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에 "잘 먹고, 좋은 곳에 살면서, 여러 정신적 육체적 만족을 충족시키는 삶"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적인 선택이다. 인간적인 해답이다. 어찌 보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완벽해 보이는 답 아닐까.


그다음은 죽음에 대한 답.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 무엇을 위하여 죽을 것인가. 죽음을 회피할 것인가. 죽음 앞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인가. 그것은 사람마다 답이 많이 다르다. 생각하기 꺼려하고, 두려워하며,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 된다. 죽음에 대한 폼나는 답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이 바뀌어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런 건 아닐까. 사실 그 답이 무엇이든 아무도 채점하는 이가 없고, 아무도 심판하는 이가 없다. 그저 선택일 뿐. 그 선택이 실제로 이뤄질지,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결국 사람은 나침반의 방향을 정하고 여행을 떠날 뿐, 지도를 볼 수 없는 여행자와 같다. 왜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왜 여행을 지속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머무는 것도 여행.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도 여행.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의 끝에 도달하면 지긋지긋한 여행도 끝난다. 쉼일까. 두려움일까.


살아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는 결론은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어떤 인간이 악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하며 당당한 삶도, 어떤 인간이 선으로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삶도. 모두 그들이 선택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며, 어떻게 죽을지에 대한 답이었다.


나의 답은 내 기록에 담긴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정하진 못했으나 아내를 정할 수 있고. 태어난 곳은 정할 수 없었으나, 내가 살아갈 곳은 정할 수 있다. 나의 태어난 곳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머물 국가를 정할 수 있고, 내가 어떤 언어로 말하고, 어떤 언어를 쓰는 이들과 살아갈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실존이 부재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과는 무관하게 나는 나의 선택대로 산다. 그 누구의 결정도, 강압도 없이 나의 길을 간다. 이유가 없다.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내 발걸음이 이끌려 가기를. 내 어린 시절부터 망령처럼 살아남았던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으로 끝난다. 여정의 끝은 곳 새로운 시작이었다. 삶의 주인은 그 어떤 존재도 아닌 나다. 나는 내가 나아갈 길과 죽을 곳을 스스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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