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거짓말을 한 게 있다.
나의 인생에도 삶을 꼭 살아야겠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여자친구에게 내가 가진 삶의 허무함을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 여자친구가 해줬던 말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죽지 않고 오랫동안 자신과 만나 행복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느낌. 나 자신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받을 때 죽어있던 나에게도 삶의 의미가 생겼었다. 이 삶은 허무했지만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다. 사람은 사랑받고, 사랑 주기 위해 산다는 것. 20대에 배운 것 중 가장 큰 경험이 아니었을까.
나는 종종 사람들이 느끼는 본질적 허무함과 공허함의 이면엔 영성의 부재함이 있다 생각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존재라 영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오랫동안 있으면 영혼은 육체의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 영혼의 비명이 수많은 내면의 벽에 부딪혀 알 수 없는 메아리로 자신을 채운다. 환청이 들리는 것처럼. 이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육체의 명령을 따라 산다. 영혼은 그 길을 원치 않고 있음에도 말이다.
영혼은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예수의 메시지 중 가장 핵심은 그가 말했던 가장 중요한 계명. "타인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메시지 하나로 모든 인류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랑하고 있는가.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사랑을 받을 때 비어있던 내 삶에 의미가 생긴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준다면 그의 삶에도 의미가 생길 것이다. 공허하고 무의미한 이 세계에서 사랑을 받았을 때 우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 안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사랑으로 찾았던 것 같다. 그것이 폭풍 앞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깨닫게 된 건가. 지긋지긋했던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살아야 하는데 필요한 이유는 없었고, 그저 사랑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함께하면 행복한 이가 있었고, 하루 종일 그리운 사람이 있었다.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그냥 그것을 위해 사는 것 같다. 그걸로 족했다. 더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사랑하는 이와 떨어지기 힘들 만큼 붙어있고 싶어서 잠드는 순간 직전까지도 통화를 하고,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면 꼭 껴안아주던 순간들이 쌓이고. 그렇게 사랑하고 나면 소중한 생명도 탄생하고. 그게 다였다. 이 생명의 목적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 단순한 목적을 찾아 이 먼 길을 돌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이방인처럼 버려져서 지내왔던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순간을 통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명한 자국을 남기기 위한 오묘한 신의 뜻일까.
신은 어린아이와 같다. 순수하고. 인간이 창조한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신은 돈이라는 단어도. 법이라는 단어도.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단어를 이해하지 않고 영혼으로 다가선다. 본질만 담겨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고. 파괴와 창조가 함께 한다. 죽은 나무와 나뭇잎이 거름이 되어 새 생명의 터전이 되는 것처럼.
나는 신의 뜻은 모르지만 인간에게 부여된 사명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예수의 메시지와 동일할지 모른다. "서로 사랑하라." 그게 전부가 아닐까. 조금 더 사랑하면 꽤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교리라는 이름으로 거세된 신학과 영성이 아닌 본질은 언제나 하나였던 게 아닐까. 사랑.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인생을 다 바쳐서라도 자식을 먹이고 가족을 부양하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끝까지 가는 것이다. 아버지로 사는 이유도. 어머니로 사는 이유도. 남편으로 사는 이유도. 아내로 사는 이유도. 홀로 찬란하게 빛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며 사는 인생은 얼마나 공허할까. 내가 발견한 삶의 의미는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