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2026. 3. 28.

by 한상훈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야 했다. 서울에 사는 W가 내려오는 길이니 나를 태워 가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최근에 이사를 위해 저렴한 라보를 샀는데, 평소에 타던 렉서스가 아닌 시간상 라보를 끌고 왔다. 차 뒤엔 그가 사둔 야마하 바이크가 있었다. 라보는 이전에 이삿짐 맡길 때 사용해 본 적만 있지 타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타보니 꽤 재미있었다. 사실 차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누가 모느냐에 따라 차의 멋도 달라지는 것이었다. W는 언제나처럼 멋지게 살고 있었기에 그가 이사를 위해 산 차도 멋있었다. 내 인생에 라보를 또 언제 타볼까.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그는 주로 아우디와 일을 많이 했는데, 이번엔 포르쉐 일도 할 것 같다고 했다. 나와 그는 차 이야기로만 3시간 이상 떠들 수 있을 만큼 차를 사랑하고, 내가 차를 아는 것에 족히 10~20배 이상은 지식이 많은 친구다 보니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최근에 페이스리프트된 포르쉐 신형 모델부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벤츠와 레인지로버. 미국차에 대한 이야기. 조그만 라보를 타고 그와 나눈 이야기들은 언제나처럼 재밌었다.


친구의 결혼식에서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이어서 서울로 올라오니 슬슬 때가 된 것을 느꼈다. 게임을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 세상이라는 게임. 세상을 즐길 타이밍이 도래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평생을 동굴 속에 살다가 처음으로 밖에 나온 사람처럼 지냈다. 그림자만 보던 사람이 실체를 보게 됐으니 그 충격은 상당히 무거웠다. 이건 일종의 외과 수술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가진 수십 년간의 물음에 대한 답을 넣는 수술 과정.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찾았다는 희열과 찾지 못했다는 좌절을 순차적으로 반복해야만 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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