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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un 28. 2020

누적의 힘

바보는 세상에서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내 글을 지금 컴퓨터로 보고 있다면 주소 끝자리를 확인해보라. 440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브런치에 올라온 글은 170편이 되지 않지만 나는 아직까지 440편의 글을 써왔다. 쓴 글의 절반은 버리고, 그 중에서도 몇몇은 삭제하고 남긴 게 지금의 글 목록이 되었다.


수 년간 440편의 글을 써오면서 많은 제안을 받아왔다. 그 결과 서른살이 되는 내년에 책 출판할 수 있게 됐다. 3개의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인재들이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고, 실리콘밸리의 VC에서 투자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업의 대표도 자주 만났다. 내 글을 보고 나와 일하고 싶다고 하신 분들이었다. 한참 만날 때는 한 주에 14명 이상의 대표들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들의 제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지, 조언해줄 수 있는지, 함께해줄 수 있는지로 말이다. 평범한 개발자 또는 직장인이라면 경험하기 힘든 것을 나는 내 삶을 공유하면서, 글을 쓰면서, 하나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숫자만 말해보고 싶다. 적어도 매일 수 백 명이 글을 보고 있고, 매년 10만명 이상이 내 글을 보고 있다. 카카오 채널에 소개된 것도 여러번이고, 다음 메인에 올라간 적도 많다. 피아노 독학이라고 치면 피아노도 전공하지 않은 내 글이 가장 위에 뜨는건 벌써 몇 년 됐다.




내 첫 정식 사업이던 에어데스크도 누적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 에어데스크는 매일 수 천 명이 사용하고, 아직까지 5만명 이상이 가입해서 사용했다. 하루 평균 40분 이상 사용하며, 연간 200시간 이상 사용된다.

에어데스크 스크린샷

에어데스크에서 내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사용자들이 좋아해준 덕일까. 많은 감사 편지도 받았고, 좋은 제안도 받아왔다. 프로그래밍 전공자도 아닌 내가 대학에서 웹 개발을 강의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곳에서 얻은 기회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노력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꾸준한 노력을 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도 그렇고, 자기 개발도 동일하다. 모든 걸 잠깐 시도해보고 끊어버리니 누적의 힘을 경험하지 못한다. 열매가 맺히기도 전에 나무를 버리고 떠난다.


반면 나는 가진게 없었기에 누적의 힘에 의존했다. 소위 말하는 근본없는 놈이라 더 무언가를 쌓아두어야 했다. 학생 때도 그랬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야 영어 독해집과 단어집이라는게 있다는걸 알았을 정도로 공부에 문외했다. 근본도 없이 공부했으니 나는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이 하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적게 노력하고 큰 걸 요구하는 건 도둑놈 심보니까.


이런 이유에서 나는 시험기간마다 전과목 문제집을 3권씩 풀었다. 못하는 과목은 7권 풀었다. 문제집을 3권 이상 풀게 되면 한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문제를 다 읽지 않아도 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깊어봐야 얼마나 깊겠는가. 몇 권을 독파한 후에는 대부분의 문제 패턴이 들어온다. 새로운 문제를 찾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다. 3년정도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 문제집으로만 해도 집 천장을 닿을 만큼 쌓을 수 있었다.


공부에서도 누적의 힘은 동일하게 적용됐다. 과목당 3권을 한 달 안에 풀어대기 시작하니 1년에 족히 100권 이상의 문제집을 독파해 공부했다. 이정도로 공부한다면 어떤 바보라도 공부를 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자주 자랑한 것이지만 이 덕분에 나는 전교 최하위권으로 입학해 전교 1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누적의 힘은 너무 강력해서 나같은 바보도 높은 점수를 받게 만들 수 있다. 브런치만 봐도 나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얼마나 많이, 얼마나 꾸준하게 해왔는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6개월간 읽은 책들

누적은 모든 곳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누적의 힘 하나를 믿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다.올해에도 지난 6개월간 나는 23권의 책을 읽었다. 매년 평균 50권의 책을 보니 적절한 페이스로 읽고 있는 셈이다. 25살 이후로 본 책이 250권이 넘어가니 엄밀히는 평균 70권 정도 된다. 군복무 시절엔 1년에 100권정도를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내가 느끼기에 보는 것이 달라진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쉐프들은 재료와 요리법까지 읽어낼 수 있다. 같은 건물을 보더라도 건축가는 설계도를 그려낼 수 있다. 누군가에겐 1차원적인 정보겠지만 누군가에겐 하루 종일도 떠들수 있을만큼 다양한 지식이 그 속에 있을 수 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꿰뚫어보기 위해 책을 본다.


누적의 힘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이 간극을 쉽게 보기도 한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고맙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힘을 무시해주길 바란다. 왜냐면 더 많은 이들이 이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한 번의 노력만으로 성공하려고 한다면 나와 같이 꾸준히 해온 사람들의 기록이 세상에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그들이 쉽게 포기해준 덕에 내 제품이 더 눈에 띌 것이고, 내 글이 더 오랫동안 읽힐 것이다.


나는 브런치를 쓴지 57개월이다. 프로그래밍을 시작한지 59개월이다. 그 중 24개월은 군대에 있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회사를 세우고, 대학 강의를 하고, 책을 집필하고, 대표들을 만나고, 군복무까지 할 수 있었던건 단순하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을 꾸준히 세상에 알리면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한 것 뿐이다. 나는 복잡한 법칙은 믿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10년, 20년 계속해서 쌓아갈 것이다. 글, 지식, 제품, 서비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꾸준히만 하면 된다. 그게 내가 믿는 누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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