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암호화 폐쇄형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언더바인드(underbind.com)는 2020년 초부터 기획해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한 서비스입니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어떤 형태의 간섭도 받지 않는 완전 암호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입니다. 언더바인드를 기획한 이유는 이름처럼 약자들만을 위한 폐쇄성(베타성)을 띄는 서비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의 강점인 소통과 정보 전달이 언제나 공개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역으로 제안한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언더바인드 내의 각각의 그룹은 커뮤니티 형태로 존재합니다.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자신의 커뮤니티의 폐쇄성을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커뮤니티 안에서 관리권을 가집니다. 회원 가입 수락 및 추방, 콘텐츠 삭제 등의 권한을 가지며, 서브 관리자를 뽑을 권한도 있습니다. 커뮤니티는 하나의 작은 동아리라고 볼 수 있을만큼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및 권력의 분산을 할 수 있는 장치들을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살펴보면 완전 폐쇄형 소셜 서비스인 텔레그램과 유사합니다. 텔레그램은 사용자 정보를 추적하지 않고, 외부에서는 엑세스를 하지 못하도록 장치해둔 것으로 유명합니다. 텔레그램은 채팅 서비스이기 때문에 콘텐츠 공유에 있어서는 약합니다. 언더바인드는 콘텐츠를 공유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텔레그램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언더바인드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2019년 12월 중순부터 주말마다 작업하기 시작해 서비스의 앞단(프론트)와 뒷단(백엔드)의 작업 및 여러 실사용 테스트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2월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n번방 사태'가 일어납니다.
n번방 사태는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범죄로 이 사태가 일어난 배경에는 텔레그램이란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텔레그램의 뛰어난 보안을 이용해서 범죄에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저는 언더바인드의 위험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더바인드는 콘텐츠를 위한 텔레그램이었기 때문입니다.
언더바인드는 이러한 배경에서 약 3개월 가량 개발을 진행했지만 세상에 빛은 보지 못한 서비스였습니다. 언더바인드는 상당히 공들인 프로젝트이지만 한 편으로는 서비스를 만드는 철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악용의 가능성이 있는 서비스는 만들어선 안되는가?
마치 총과 칼을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세상의 강력한 무기와 서비스는 대부분 정부의 통제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통제를 받습니다.
저는 언더바인드와 비슷한 서비스가 언젠가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서비스는 현 시대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프라이버시와 사용자 감시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이고, 수 많은 잠재적 범죄에 대해서도 대응해야할 것입니다.
저는 그 답을 계속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시스템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인가?'
'어디까지 사용자를 감시해야하는가?'
'설령 시스템을 만든다고 해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든 사용자의 정보를 함부로 뒤져도 될 것인가?'
이미 많은 서비스에선 사람들의 수 많은 메시지, 정보들을 허락도 받지 않고 넘긴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침해되도 괜찮은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언더바인드 프로젝트는 단순히 서비스의 가치나 사용성 보다도 신념과 연결된 프로젝트였습니다. 텔레그램의 창업자는 러시아의 인권을 위해서 텔레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러시아만큼 국민의 개인정보를 꿰고, 사람들을 감시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펼쳐진다면 아마도 저는 다시 언더바인드를 고민해볼 것 같습니다.
영문 버전: https://www.nomcss.com/handcrafts/underb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