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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04. 2021

내가 시도했던 사업들 - 4

10대부터 도전했던 기록들




8. 일에프육공디

제가 창업을 하고, 제 앱을 만들고,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이직 제안을 받은 건 꽤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친구가 계속해서 정진하는 모습을 보니 몇몇 대표님들이나 회사의 C레벨 임원 분들 눈에 들어왔던 것이죠. 하지만 에어데스크를 만들 때까지 저는 그 어떤 회사에도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500원 벌기'였습니다.


'내가 100% 만든 앱으로 500원만이라도 벌 수 있다면 나는 500만 원도 벌 수 있을 것이고, 5억 원도 벌 수 있을 것이다. 500원이라는 작은 돈이라도 벌지 못하고 남의 팀에 들어갈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에어데스크 프로젝트가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진행이 어렵다는 견적이 세워졌을 때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 구인란에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많은 기업에서 저를 원하고 있었고, 스타트업에서는 CTO 또는 개발 리더 포지션으로 요청을 해주셨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특히 개발자 1명인 회사에서 CTO를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가 세상에 쓸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었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여러 대표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봤습니다. 그중에서도 일에프육공디라는 회사의 대표님은 진심을 담아 저를 대해주셨습니다. 첫 미팅 요청 때부터 그 이후에도 어떻게 해서든 모시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한 꿈도 선명하셨습니다. 30대 중후반이셨지만 마음만큼은 소년 같이 뜨겁게 타오르고 계시다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CTO 포지션으로 일하게 됩니다. 일에프육공디의 사업모델은 굳이 유사한 것을 따지자면 요즘 잘 나가는 클래스101과 유사합니다. 일에프육공디의 초기 모습은 굉장히 형편없고, 디자인도 엉망이었는데 영업을 얼마나 간절하게 다니신 것인지 300만 명에 가까운 유튜버 사나고 씨의 팬미팅이나 트위치 스트리머인 마젠타님을 호스팅 하기도 했었습니다.

일에프육공디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스트리머, 유튜버들의 제2의 수익을 만들어주자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의 유튜버(90% 이상)는 월 200만 원이 안 되는 수익을 얻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오프라인 클래스나 활동 등을 개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서 유튜브 + 알파의 수익을 줄 수 있다면 시장성이 있다고 본 것이죠. 일에프육공디는 추가 수익 모델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상품들을 생각해봤지만 이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많은 유튜버 분들은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추가 수익을 버는 것보다는 영상을 더 찍는 걸 원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오프라인 모임이나 활동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유튜버 분들 중에는 얼굴을 가리고 활동하시거나, 자신의 손만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또한 이 사업은 절망적인 상황에 곧 놓이게 되는데 바로 코로나 사태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일에프육공디의 주 사업모델인 오프라인 미팅이나 클래스를 통한 수익 창출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지면서 투자를 받는 것도 어려워지고, 파트너가 될 유튜버, 스트리머, 인플루언서 분들을 모실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사업 모델을 조금씩 수정해보기도 하고, 국가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금을 받고, 사무실을 구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습니다. 마치 가라앉는 배에 물을 양동이로 푸는 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업 모델은 불투명해지고, 앞으로 방향성은 코로나로 인해 더 어두워지고, 팀원들의 사기는 떨어져 갔습니다.


9. 언더바인드

언더바인드는 제가 일에프육공디에서 일을 하면서 사이드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일에프육공디는 미래가 불투명했고, 저를 포함해 팀원들도 무엇을 하면 해결될 것이다 라는 게 명확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일에프육공디 말고도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몇 주간 진행했습니다.


언더바인드는 텔레그램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완전 암호화로 만들어진 폐쇄 커뮤니티입니다. 비슷한 예로 설명하자면 다음 비공개 카페 같은 곳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이며, 카페 안에 등록된 모든 게시물은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언더바인드를 만들 당시 카카오톡 대화 기록이 노출된다는 뉴스가 돌고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익명성과 완전한 암호화로 보호되는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언더바인드는 뜻하지 않게 가로막히게 되는데 바로 'N번방 사건' 때문입니다.


'N번방 사건'이 발생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서비스에 규제가 추가됐습니다. 제2의 N번방을 만들 수 없도록 국가가 데이터에 액세스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자체 서비스에서도 음란물 등을 필터링하고, 감독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서비스 공급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규제였습니다. 저는 제가 만들려고 하는 게 제2의 N번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개발 로직을 완성한 시점이었지만 프로젝트를 종료하게 됩니다.  


10. 데드코미디

언더바인드의 실패 이후 저는 재미에 중점을 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도 않고, 나도 당당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재밌는 콘텐츠를 인스타그램과 같은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뉴스피드 형태로 콘텐츠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팔로잉 팔로우도 쉽게 할 수 있고, 사진 공유도 쉽게 이뤄지는 앱입니다. 이를 온라인 콘텐츠와 접목시켜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젝트 - 인스타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팀원을 모집하고, 개발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초기에 팀원을 모으는 과정에서 목표 기간, 출자 금액, 지분, 역할 등을 명확히 해서 개발을 시작했는데 막상 외부 인력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낸 친구 2명과 일을 시작하게 됐고, 인스타그램처럼 모바일 앱을 만들기보다는 먼저 가볍게 시도해보자는 느낌으로 웹사이트를 제작하게 됩니다.


데드코미디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콘텐츠도 가져오고(소위 말하는 렉카), 홍보도 하면서 서비스를 운영해갔습니다만 생각보다 성장은 지지부진했습니다. 먼저 인스타그램과 같은 뉴스피드 형태로 콘텐츠를 즐기는 게 웹,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는 낯선 형태였고, 두 번째는 뉴스피드로 만들다 보니 많은 이미지를 스크롤에 따라 자주, 많이 가져와야 하는데 이 모든 게 큰 비용을 발생시켰습니다. 이미지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했음에도 트래픽에 따른 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수익모델을 개선하거나, 아니면 비용을 온전히 부담하면서 큰 광고주를 모실 사이즈가 안되면 돈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결과적으로 데드코미디는 몇 개월 정도 개발부터 론칭까지 진행을 했으나 수익 모델과 수익성을 이슈로 중단하게 됐습니다.


11. 밋엔노우

밋엔노우는 사업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였지만 유의미한 테스트였던 것 같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것 역시 일에프육공디에서 일하는 와중에 함께 진행했던 것인데 당시 일에프육공디 팀원들에게 이야기했을 때도 재밌는 아이템이다 했습니다.


밋엔노우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의 카테고리를 선택합니다. 꼭 이성을 만나는 목적이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거나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만나는 목적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메일을 등록해두면 매칭이 발생할 때마다 매주 한 번 이메일을 보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목록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밋엔노우는 제가 생각해도 재밌는 아이디어이고, 쉬운 제품이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의향이 있지만 이 서비스 역시 현실을 마주하고서 실망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좋은 이유로 만남이 가능한 서비스임에도 온갖 변태적인 취향들을 올리는 곳으로 변질됐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에 '자신을 때려줄 수 있는 여왕님'이라고 한다거나 또는 이것보다 심한 온갖 성적 취향들이 나열되어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서비스 역시 깨끗하게 사용되기는 쉽지 않겠구나 싶어 정리하게 됐습니다.


12. 플렉스웹

11번 밋앤노우 말고도 크고 작은 사업들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12번째 사업인 플렉스웹에 저는 정착한 상태입니다. 제가 일에프육공디를 나오고 나서 그동안의 경험과 경력 때문인지, 온갖 곳에서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됐습니다. 시기적으로 치면 2020년 중순부터 간단한 홈페이지부터 그것이 알고싶다에 들어갈 주식 게임 같은 것들을 요청받게 됐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가상화폐 트레이딩 봇을 구매하고 싶다는 분들도 있었고, 여러 개발 의뢰가 들어오다 보니 아예 전문 개발사를 차리는 게 돈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플렉스웹이라는 웹 개발 전문 에이전시를 세우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실 사업 초기에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작은 회사의 홈페이지를 외주 제작해주는 수준이었는데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대표님들이 제가 개발사를 차렸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 둘 일거리를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 보다도 저한테는 마음에 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얼굴에 심한 비대칭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올해 3월 8일 양악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보름정도 쉰 시점(3월 26일)에서 저는 개발사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패스트캠퍼스에서 풀스택 강의 촬영을 진행하고, 작년부터 반년 정도 쓴 책을 4월 경에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일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5월 1일 역삼동 포스코타워에 사무실을 차려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몇 개 회사의 웹 솔루션을 만들면서 강의 촬영을 하고, 회사를 키우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다행히 1인으로 시작한 회사에 한 분 두 분 뛰어난 분들이 지원해주셨고, 지금은 7~8명 정도 되는 회사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중으로 14~16명으로 증원할 예정입니다.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두고 사업한 지 이제 5개월 정도 되는 시점에 저희는 큰 회사의 솔루션을 만들게 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프로젝트는 바로 배달로 유명한 W사의 서비스를 저희 플렉스웹에서 개발하게 됐습니다.




저는 인생이 두려움 속에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모르니 두려웠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두려웠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고, 이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홍보할 돈이 없어서 브런치에 글을 올려서 제 자신을 알려야 했습니다. 기술을 가르쳐줄 사수, 선배가 없어서 인터넷을 보고, 책을 보고, 유튜브를 보고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답이 없으면 공식 문서를 찾아보고, 이해가 안 되면 아예 번역을 하나하나 하면서 보고, 군대에서는 코딩을 할 수 없으니 노트에 코딩하고, 책상을 타이핑하면서 키보드 타이핑하는 것처럼 코딩해보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삶은 간단합니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면 세상이 두려웠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아는 게 없으니 무서운 거겠죠. 반면 지금은 20대 초반과 달리 두려움도 없고, 심지어 이 회사가 올해까지만 존재하고 사라진다고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 회사가 사라진다고 해도 저는 프리랜서로 일을 할 수 있고, 어디서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6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불과 몇 개월까지만 해도 지금 제가 운영하는 회사가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치 식물이 뿌리를 내리듯 시간이 필요했구나. 성공이라는 식물은 많은 눈물을 먹고, 뿌리를 내려야 무럭무럭 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시도했던 사업들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서른 살부터 시작될 그다음 사업들과 어떤 일들이 있을지도 꾸준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적다 보면 저처럼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시작할 분들에게 도전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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