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Oct 17. 2021

지지직거리는 TV

어린 시절 내가 느끼던 세상의 색은 지지직거리던 아날로그 TV와 같았다. 저녁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다투시던 부모님, 항상 누워계시던 할머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하루에 5시간 TV를 봐도, 10시간을 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그 공허한 시간을 채워주었던 건 자그마한 TV. 온갖 홈쇼핑들을 보고 또 보고. 그러다 지치면 장난감을 혼자서 가지고 논다. 그마저도 재미가 없어질 무렵이 와서야 나는 TV 밖 세상을 보고 싶어 졌던 것 같다.


동네에 친구도 없고, 내가 가진 것도 없고, 더 이상 보고 싶은 TV도 없어질 무렵, 나는 불량한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들이라 말할 수 있다.


어울리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오르막 내리막을 가야 했다. 가는 길은 오르막이 많아서 더 힘들었는데 간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동네에 놀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동네도 상황은 좋은 건 아니었다. 가게 몇 개 피씨방 하나 있는 곳에 가는 거였지만, 적어도 나를 하대해주고 놀아주는 몇 명의 형들이 있었다. 형들은 의형제라면서 나를 대우해주는 척했지만 사실 삥을 뜯는 것과 다름없었다. 곧잘 피씨방 비를 달라고 하거나 몇 천 원씩 가져가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바보처럼 나는 그것이 형들과 어울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그 형들이 어쩌면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유유상종. 그것보다 사람을 쉽게 표현하는 말이 없다. 내가 따라다니던 형들의 집에 놀러 가도 그곳에도 부모님은 없다. 그 형들도 나처럼 텅 빈 집에서 홀로 지지직거리는 TV를 보던 외로운 어린애였을 뿐이다.


아마도 그들과 나는 같은 세상에서 같은 걸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하루 종일 TV 앞에서 시간이나 보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학원에 가거나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을 받아 주말이면 가족여행, 외식 같은 걸 해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 형들의 집도 우리 집과 비슷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아무 말 없이 계시거나 아무도 없었다. 녹슨 쇠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일부러 어둡게 라도 해야 하는 듯 누런 낡은 커튼이 늙고 있고, 오래된 요와 이불이 장롱 안에 들어가 있었다. 비슷한 소리, 비슷한 햇빛, 아무런 생기 없이 죽어가는 듯한 집에서 큰 우리들은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것 같다.


지금은 외식이 흔하고, 초등학생도 스타벅스에 가는 세상이지만 내 어린 시절은 돈가스 한 번 외식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 가족의 외식은 하나로마트에 쇼핑하러 가서 하나씩 사 먹던 8천 원, 만원 하던 닭강정. 그것도 참 행복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소시지를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해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항상 집에 어른들 입맛으로 맞춰야 한다고 하시며 안 해주셨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집엔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어머니가 휴게소에서 가져오신 종이에 쌓인 햄버거가 내 어린 시절 최고의 음식이었다.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보기 힘든 1500원 정도의 햄버거. 케첩과 약간의 양배추, 그리고 냉동 다짐육으로 만들어진 햄버거. 참 밉기도 하다. 몇 년 동안 외식 한 번 안 하고 아끼고 아껴도 애들 소시지 하나 넉넉하게 살 수 없었는지.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볼 수밖에 없던 세상, 친구 한 명 없는 곳에서 10살 꼬마는 무얼 하고 하루를 보냈는지 물어봐주는 어른이 없다는 게.


그러나 이제 내가 보는 세상은 지지직거리는 TV는 아니게 됐다. 아침의 색은 푸른 가로수가 올라서 있고, 시원하게 뚫린 대로를 따라 수 십, 수 백의 빌딩들이 푸른빛을 뿜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맑다. 만약 내가 지옥 같은 시간을 겪으며 세상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이 밝은 거리를 걸을 수 있었을까. 내가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마음 놓고 무엇이던 사 먹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많은 어른들을 보고 자랐지만 본인이 속한 세계를 바꾸지 못하고, 점점 잠식되는 이들을 수 없이 봐왔다. 월 25만 원 고시원에서도 지지직거리는 TV를 세상으로 여기며 사는 이들이 있었고, 20년 전 오갈 대가 없어 삥 뜯는 형들을 의형제로 생각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사람도 있었다.


인생의 출발선은 모두 다르지만 끝까지 출발선에서 멈춰 있을 필요는 없다. 앞서간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다. 그저 세상의 빛이 달라지는 걸 보고 싶다. TV 밖 세상, 스마트폰 밖 세상에서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시도했던 사업들 -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