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중앙화의 순혈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위의 영상은 "이더리움이 0원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비탈릭 부테린 앞에서 하는 영상입니다. 재밌게도 이 영상을 보는 사람마다 어떤 관점에서 블록체인을 대하느냐에 따라 이 영상은 미래를 예견하는 영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멍청한 소리라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는 미래는 무엇이고 왜 이들은 이더리움을 가치 없다 평가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버그가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사람이 만든 모든 제품엔 찾지 못한 결함과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더리움도 사람이 만든 코드로 이뤄져 있고, 이 코드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이 과정에서 버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령 다음 하드 포크로 예정된 내년 3월 이더리움에서 버그가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코드 업데이트 과정에서 아무도 찾지 못한 잠재적 버그가 발생해 메인넷이 꺼지거나, 트렌젝션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거나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 이더리움을 포함한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어퍼컷을 맞을 것처럼 휘청거릴 겁니다.
이더리움은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뤄진 '더 머지'의 경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7년 가까이 발전해온 이더리움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더리움을 포함해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모든 블록체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업그레이드 과정 자체를 보안 결함이자 위험성이라 말합니다.
만약 내년 이더리움의 업그레이드가 버그 없이 잘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수십 년 후에도 이더리움이 단 한 번의 문제없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모든 중앙화 된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가지고 가야 할 숙명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탈 중앙화 된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중앙 조직이 소스코드의 버전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는 이상 이것은 잠재적인 리스크이며 프로젝트가 일순간에라도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위의 주장은 블록체인이 업그레이드되지 않고 비트코인처럼 아무도 중앙에서 관리하지 않는 구조를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지만 반대로 비트코인의 열등한 성능과 환경 문제로 넘어가면 이들은 말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비트코인은 이더리움처럼 중앙 팀에서 프로젝트를 이끌며 버전 업그레이드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처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만 문제는 비트코인이 가진 문제점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비트코인의 초당 처리 속도(TPS)는 7에 불과합니다. 국가별 송금과 분산 원장 시스템이라는 큰 대의를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TPS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트코인은 비싼 수수료(가스비)와 매우 느린 전송속도로 인해 실제 결제에 쓰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에 가깝습니다. 비트코인을 억지로 사용한다고 해도 이는 특정 페이먼트 시스템이 중앙화 된 서버를 통해 캐싱 처리된 결제 결과를 일정 텀으로 비트코인 블록에 업데이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 순혈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더리움처럼 사람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보안 결함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수정 불가능한 비트코인의 열등한 성능과 환경 문제(성능 대비 가장 많은 양의 CO2를 배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들은 비트코인을 포함하여 블록체인 시장을 완전히 탈 중앙화 된 자산의 집합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치 금처럼 언제나 동일한 원소기호를 가져야 하고, 불순물이 섞이질 않길 원합니다.
또한 문제가 생겼을 때 블록체인의 영구적인 손상과 피해를 우려하지만 실제로 많은 블록체인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서비스와 동일하게 메인넷이 꺼지기도 하고, 사사로운 이슈로 블록체인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중앙화 된 조직은 설령 버그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바로 수정하여 대응합니다. 손 놓고 망했으니 모두 포기하자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이 생태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제 논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약 만든 주체가 불분명하고, 특정 기업의 후원이나 중앙화 된 집단도 없는 조직에서 덩그러니 만들어진 코인을 구매하고 싶습니까? 한 발 물러나 주체가 있으나 업그레이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블록체인이며 완전한 탈 중앙화로 아무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블록체인이 있으니 구매하라는 권유를 받으면 구매하시겠습니까?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먼저 이러한 코인은 거래소에 올라가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거래소는 거래소의 신뢰를 위해 점점 더 많은 기준을 두고 코인 상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코인이 하고자 하는 가치와 기술력, 커뮤니티 그룹의 영향력, 이들을 신뢰할 후원자나 프로젝트 참여자, 프로젝트의 리더 등을 봅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완전 탈 중앙화를 외치며 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래소에서 신뢰를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위에서 제시한 반박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주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롯이 블록체인의 코드적 가치와 백서에서 말하는 몇 가지 약속들에 의존해 투자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가능하려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완전한 탈 중앙화를 위해 정교한 블록체인을 만들고 이후에는 그들이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그저 프로젝트의 개발자와 최초 투자자로서만 남아야 합니다.
영상에서는 모든 이더리움 토큰들이 쉿 코인(Shit coin)이라고 비하해서 표현하며, 모든 토큰이 0원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모든 알트코인을 두고 말한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알트코인은 가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오롯이 투기적 수요로 인해 가격이 형성되고, 어마어마한 숫자의 투자자 피해를 입혀왔고, 악행이라는 악행은 다 이뤄진 곳이 알트코인 시장입니다. 투기적 수요를 통한 가격에 대한 부분은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차치하고 논의를 이어가 보자면 이더리움의 가격과 토큰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시장이 평가할 일이고, 이것이 저는 나쁘다 보진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이 부분을 설명해보자면, 과거 비탈릭 부테린의 글을 인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이더리움의 적정 가격과 발행 규칙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2014년 1월 23일 비트코인 매거진에 올린 그의 글입니다.(비트코인 매거진의 글은 정확히는 부테린의 글을 리뷰한 것입니다)
그는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처럼 유한한 발행량으로 인해 희소성이 무한대로 올라가지 않고 일정 발행량이 무한히 유지되어 일정한 인플레이션 모델로 이더리움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무한 발행의 이유가 투기적 수요와 초기 투자자들이 얻는 과도한 보상을 감쇄하여 후기 참여자들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이더리움이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는 가격대가 적합하다고 보고 있으며 무한히 가격이 오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0원은 극단적이지만 비트코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서 적절한 물량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원할 것입니다.
토큰의 경우 0원이건 0원에 준하건 그것 자체로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최초 발행량과 그 토큰이 동작하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입장에서 적정한 가격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토큰은 생태계를 만드는 주체가 적정한 가치 수준을 설정해야 하고, 이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토크노믹스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결정입니다.
엑시 인피니티를 비롯한 P2E 게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P2E 모델은 대부분 토큰 보상 시스템으로 구성됩니다. 게임을 즐기면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토큰을 받고, 이 토큰을 사용해 게임 내 재화를 구매하는데 쓰거나 토큰을 생성할 수 있는 채굴 노드 살 수도 있습니다. 즉 기존의 게임에서는 게임을 즐겨도 이 재화를 투자 수단으로 재활용할 여지가 없었다면 P2E의 경우엔 게임과 투자 상품의 결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투자 상품이 그러하듯 당연히 과도한 가격 형성이 발생할 수 있고 또는 가격이 너무 형편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토큰의 가격이 얼마가 되던 게임 자체를 즐기고, 게임 내 재화를 구매하려는 사용자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토큰 가격이 저렴하다면 저렴한 토큰을 구매해 게임 내 콘텐츠를 빠르게 즐길 수 있고, 비싸다면 직접 게임을 해서 토큰을 벌어 원하는 게임 재화를 구매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이더리움을 비난하는 이들이 원하는 세상이 오면 블록체인 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들이 가치 있다 말하는 비트코인의 가치도 최초로 회귀해 0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대부분의 프로젝트와 거래소는 이더리움과 레이어 2를 지원하며 견고한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이더리움이 만든 가치는 단순히 범용 애플리케이션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이 하지 못한 블록체인 생태계의 큰 형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컨트렉트를 통해 블록체인이 단순히 거래 원장으로만 동작할 수 있는 부분을 온갖 형태의 스마트 계약으로 가능성을 넓혔고, 웹 3.0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또한 이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솔리디티를 지원합니다. 또한 과거를 살펴보면 이더리움 그룹은 탈 중앙화 및 비영리 단체로 남기 위해 조직이 분열됐습니다.(영리 그룹을 원한 이들은 이더리움을 빠져나와 리플을 만들었습니다.)
부테린 입장에서 그가 중앙화 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면 불쾌한 표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가 블록체인의 트릴레마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 정당한 위치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말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프로젝트도 완전한 탈 중앙화에 이르기 어렵고, 완전한 보안성과 완전한 확장성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는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이지, 탈 중앙화 되지 않은 블록체인은 무가치하여 0원에 준한다 말하는 것은 블록체인의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한 이상주의자의 주장입니다.
영상의 뒷부분을 보면 비탈릭 부테린의 랩이 있습니다. 사람들 중엔 그를 비아냥 거리는 분들도 있고, "너무 코딩을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졌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러한 비아냥보다는 그가 순수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천재적인 소년이 쓴 코드 한 줄 한 줄이 인류 역사를 크게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가 영리를 추구했고, 중앙화 된 마인드로 그의 전자 지갑에 있던 수십조의 이더를 사용했다면 이더리움을 포함한 블록체인의 생태계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저는 이더리움을 비롯한 블록체인 시장을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시장을 믿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블록체인이 가진 가치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점점 늘어날 것이고, 발행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단단한 가격대가 형성될 수 있고, 투기적 수요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현명한 투자자들이 더 많아진 시장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간이 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더 많은 기술이 발전되어야 하고, 성장통과 비아냥과 여러 도덕적 해이로 인한 피해를 지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식시장이 리먼 사태가 지나고 발전한 것처럼 블록체인 시장은 아직 어린아이 같은 시장이고, 법령의 회색지대가 많은 위험한 시장입니다. 그럼에도 기술이 가진 가치와 이것이 제공할 수 있는 사용성의 가치가 점점 더해진다면 분명 성숙한 시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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