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
24살에 나는 친한 친구 두 명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 대학원과 창업을 고민하던 날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대학원의 선택지는 없었다. 대학원은 그저 게으름에 대한 허울 좋은 핑계였었다. 아무 곳에서도 오라는 대학원은 없었으니 말이다.
창업을 다짐하면서 나는 10년의 시간을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33살이 되는 해에 다시 결정하자고 말이다. 만약 10년의 시간을 쏟았지만 여전히 실패하고 낙오한 인생이라면 그동안의 방황을 그만두고, 착실하게 살던지, 비영리 단체에 들어가 헌신하며 살던지, 아니면 외로운 삶의 종착역으로 주님께 향하던지 셋 중 하나를 다짐했다.
플렉스웹을 만들기 전까지 여러 번의 실패와 프로젝트의 파산을 겪었다. 공동 창업자와 싸우기도 많이 했고, 나를 욕하며 떠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개발을 하면서 5년 동안 나는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쓴 코드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반복된 실패와 고객의 실망이 두렵기도 했다.
바닥난 자존감에서 벗어나오는건 스스로 힘내자 다짐하며 빠져나올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인정 그리고 현실을 깨닫는 자기 인지 능력과도 연관이 있었다. 내가 자존감을 얻었던 길은 다른 개발자들의 인정을 받는 것과 동시에 수백 명에 이르는 경력 개발자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떤 길을 밟아왔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됐다.
그 후 개발에 있어서는 여러 자신감이 있지만 사업가로 살기 시작하면서 개발자로서의 삶은 병행하기 힘들었다. 사업이 커짐에 따라 내가 쓰지 않은 코드들로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대표라는 직책은 주커버그처럼 하루종일 개발하며 컴퓨터 앞에 있다가 손님들이 찾아오면 무성의하게 응대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만들어야 했다.
분명하게도 작년 초는 결단의 시기였다. 실력이 부족한 신입 개발자들로 영업이익을 만드는 것은 참 어려웠다. 그래서 수익성이 높은 산업에 전염했고, 그러다 보니 큰 수익을 거두곤 했다. 지나와서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건 호사다마로 비유할 수 있었다. 좋은 일이 가득할수록 '마'도 많아졌다.
공개된 곳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과 갈등이 회사 깊은 곳에서부터 자라나고 있을 때 나는 달콤한 돈을 따라다니는 벌과 같았다. 그들은 모두 재력을 자랑하고, 자신들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수천만 원의 계약금도 앉은자리에서 이체하곤 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그들 중 다수는 올해가 가기 전 법인 파산을 신청했다. 우리 회사의 손해도 컸고, 채권 순위는 밀렸다. 10억 이상 빚을 지고 배 째라는 법인 대표들을 상대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나 역시 다른 채권자들에게 의심을 받기도 했고, 나 역시 나쁜 놈으로 알려진 적도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진솔하게 사업을 해왔던 편이다. 내가 믿는 아군들에게 내 상황이나 비전이나 꿈, 목표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내 말을 100% 믿지 않았다. 직원들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어기제가 있기에, 또한 자신이 거짓말하기에 타인도 거짓말하는 것을 예상하고 사람을 대한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업가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덕목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진실보다는 보여주고 싶은 진실을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 실체가 없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호화로운 사무실과 융숭한 대접을 하며 미끼를 물어줄 다른 회사를 찾는 것 같았다.
나의 사회 경험으로는 이런 사람들을 대처하기 힘들었다. 이 시장에 있어서 나는 여전히 신입 대표와 같았다. 신입 사원들이 항상 하는 불만처럼, 신입에게 과도한 일을 맡긴 삶을 나 스스로 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다음 비전을 보고 나아갔다. 다른 대표들의 허황된 말을 믿기도 했고, 이미 진행한 사업을 중간에 포기할 경우 잠재 수익마저 모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에서야 이런 상황에 놓이기 전에 상대를 잘 알고,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선을 긋고, 회사를 보호해야 했지만, 나는 성장만 아는 대표이자 풋내기 대표였다.
나는 다른 비전을 바라보며 나아갔지만 여전히 그곳도 알고 보니 척박한 황무지 같았다. 오아시스를 바라보며 사막을 건너고 났음에도 여전히 사막이 한참 남아있던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쉽게 도달하기엔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그러나 내가 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사업 파트너들을 수없이 만나며 나보다 나이 많고, 삶의 경험이 많은 뛰어난 사람들은 나의 진솔함을 좋게 본 듯했다. 그들은 비즈니스에서 매너와 룰,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목마른 자로서 내가 우물을 파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갈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여정이 어디를 향해 갈지 하루하루 더 미뤄지고 있다. 완전히 하얀 것도 아니고, 완전히 검은 것도 아닌 비즈니스는 언제나 회색이었다. 나의 일은 무엇인가. 회색 사람들과 어울리며 회색 인간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남들을 하얗게 만드는 하얀 인간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