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7월 29일

2023. 7. 29

by 한상훈

오늘 나는 미뤄둔 일들을 곱씹으며 하루를 보냈다. A사 대표님이 아침에 전화가 와서 실제 서비스 유지 비용에 대해 자신이 알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A사 대표님은 주말에 종종 연락을 하는 편인데, 막상 내가 답변하면 주말이 지나고 답변 하셔도 된다고 하셔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본받을 부분이 많은 분이다. 아마도 지난 2년을 꽉 채워 가는 여정 가운데 쌓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것과 별개로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G 대표에게 부탁한 진행 상황에 대한 정리는 하루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보나마나 이번 달도 돈을 보내지 못할 거라는 내용일 것이고, 전화로 전후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할 것이 뻔했다. 나는 그가 밉지 않다. 그냥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약한 한 명의 대표라 생각할 뿐이다. 다만 상황이 힘들 때 그가 더 멋진 모습을 보이는 대표이기를 바랬다. 왜냐면 나라면 어떻게 진행을 했고, 얼마나 지체 됐는지, 사과와 더불어 상황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진솔하게 말하고, 기록하는 것보단 침묵으로 상황을 피하는 선택을 한 것 같다.(바빠서 카톡 답변을 못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대표다. 대표 간 대화에서 “바빠서 깜빡했다.”와 같은 말은 “자신은 아마추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G 대표와 공동 대표로 있는 K 대표에게도 메세지를 전했다. 당연한 것처럼 나에게 작업 완료에 대한 부분은 문서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황당한 요청을 하고, 그도 당황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것을 기꺼이 해주었다. 다만 K 대표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해주시면 된다.”라는 말로 하기에 더이상의 호의를 보이는 것은 허락하면 안되겠다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을 끝으로 더 이상 저는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 추가로 생기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K 대표님께서 잘 처리해주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와 같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마지막 문서를 전달했다. 그는 나에게 사과도 감사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래서 나는 G와 K가 속한 이 회사와 이 조직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들로 모여있는 곳인지 새삼 깨달았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수 많은 ‘약한’ 강자들을 대면한다. 그들이 약한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결하겠다.” 라는 이 말 한 마디를 결코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어깨에는 책임과 무게가 같이 실리지만 그들의 조직엔 리더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래서 수 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푼의 돈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언제나 양해만 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생각할 때면 쥐구멍에 숨은 쥐 같다고 느낀다. 철옹성 같은 회사에서 빛나는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그들은 쥐구멍에 숨은 쥐와 같다. 주인이 나타나 발걸음이 지면을 쿵쿵 때리면, 언제 들킬까 두려워 구멍에 들어가 벌벌 떠는 쥐들 말이다. 그들이 해온 허황된 약속들로 인해서 누군가가 연락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문제를 마주하고, “밤에 대리 운전을 해서라도, 배달을 해서라도 조금씩이라도 갚겠습니다.”라고 말할 배짱이 없다. 그들은 대표도 아니고, 그들은 남자도 아니고, 그저 겁 많은 어린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나는 수개월의 시간을 주었고, 그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기도 했다. 그들이 나에게 1원 한 푼 갚지 못하는 기간 동안 나는 1억원이 넘는 돈을 갚았고, 생활비 마련하기 위해 힘들게 모은 것들을 헐값에 팔았다. 나를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선명하게 밝히고, 반드시 이 모든 일들을 책임지겠다 말했다. 그리고 말이 허황되지 않도록 기록하여 전달했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를 그들보다 나은 대표라 담대하게 믿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무능과 자격 미달을 대신 짊어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것이 나의 업보라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면 나 역시 때로는 나를 믿어준 사람을 실망 시켰고, 때로는 내 짐을 그들의 어깨에 옮기기도 했다. 문제를 마주하기 보다는 도망치던 순간도 있었고, 스스로도 한심하게 시간을 보내며 멍하기 괴로워하던 순간도 있다. 그래서 난 그 모든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순간들이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생각한다. 남을 질책하기에 거침없지만 그 거친 칼날은 결국 내 자신을 헐뜯고 있었고,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나약한 인간인 순간이 많았다.


더 큰 사람이 되겠다는 용기로 어깨에 하나 둘 짊어져보곤 한다.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내가 그것을 모두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되어, 지금의 괴로움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강인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매일 다짐하며, 아주 조금씩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을 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큰 사람이고, 완성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밤에는 함께 일하는 C 대표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청담동에 사무실이 생겼고, 거기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해당 사무실은 지금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사업의 미팅 자리로 쓰면 좋겠다고 제안을 주셨다. 기존에 봉은사에 있던 사무실보다 커보이진 않았지만 훌륭한 곳이었다.


C 대표님은 여러가지로 놀라운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시야가 넓어졌던 순간 중 가장 큰 순간 중 하나가 이 분을 만났을 때다. 그는 시장 경제와 금융 자본에 대해 해박한 분이시고,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분이시다. 그리고 굉장히 신사적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도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셨다. 나는 감정적으로 요동치며 강렬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나 그는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고즈넉한 숲에 홀로 굽어 자란 소나무와 같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C 대표님에 대해서 여러 소식을 들었다. 대부분은 그에 대해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이 공존하는 극과 극의 모습이었다. 나 역시 함께 일하면서 그의 평판이 어떠한 이유에서 극과 극으로 나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하는 이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00%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100%를 원할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강요해왔던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을 잘 다루는 장수들을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쓰는게 아닌 적절한 곳에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종종 나는 분을 내곤 하는데, 그럴 때 나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30분이 지나기 전에 이미 스스로가 작게 행동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차가운 지혜가 가득하기를 바라곤 한다. 나를 보호하며, 동시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차갑고, 냉철한 지혜가 가득하기를 바라곤 한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으나 사실 많은 시간을 제대로 보내기 보단 여러 일들로 미루곤 했다. 아침엔 글을 쓰고, 간만에 커뮤니티에 올린 후에 댓글을 한참 달아주었다. 오랜만에 댓글을 달며 대화를 하니 정신적으로 각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글쓰기와 댓글쓰기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게으름을 부렸다. 괜히 꼼꼼하게 샤워를 하고, J 대표님에게 “오늘 회의할 수 있냐?”는 연락이 와서 미팅을 갔다올까 하고 장소를 조율했다. 그는 성남으로 오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정도 시간이 없었기에 나중으로 미뤘다.


그러다 일을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그저 온갖 생각을 다 밀어내고, 집중해야 하는 것이 나같은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인지라 다른 대표들이 실수하고, 잘못한 것에 대한 생각도 중간중간 들고, 여러 일들의 우선순위와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걸 먼저해야할까. 여전히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데, 집중도 잘 안될 때면 더욱 답답하기도 하다. 사실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이것에 몰입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것 같았다.


여러 일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은 보람과 힘듦이 동시에 있다.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가끔은 행운의 여신이 찾아와 가끔 내 손을 잡고 무거운 짐이 기억나지 않게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는 것 같다. 하늘에 잠깐 올라가 힘겨운 산행길을 벗어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동안 올라온 수많은 과정을 돌아보기도 하고, 과거를 추억하며 그땐 그랬지 하며 몇 시간이고 추억에 잠기곤 한다. 25살이 지나고 나에겐 아름답고 거창한 추억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가 비슷하고, 치열한 인생 이었지만, 그 중간중간 찍었던 사진. 언제나 컴퓨터 앞에서 찍었던 그 시간들이 문득 생각나곤 한다.


감사했다. 작은 스타트업 팀에 참여하기 위해 양재동으로 올라왔을 때 3평 집에서 슈퍼싱글 매트리스 하나를 첫 월급을 받고 장만했다. 그렇게 3달 쯤 모았을 때 아버지에게 빌린 200만원을 갚고, 4개월쯤 지나 쿠팡에서 40만 원 짜리 컴퓨터를 샀다. 무거운 노트북이 아닌 40만원 짜리 쿠팡 컴퓨터로 집에서도 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시절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질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이 글을 쓰는 아이맥과 양 옆의 4K 모니터, 작지만 혼자 살기엔 충분한 아파트, 200만원이 넘는 아주 좋은 침대. 아무 것도 없던 나에겐 꿈 같은 나날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힘들고 지칠 때면 양재동 양재천을 하염없이 걸으며 꿈꿨던 과거를 생각하곤 한다. 그때 나는 퇴근 후 양재천을 혼자 걸으며 대단한 사업가가 된 모습을 상상하고, 중얼거리며 다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회사에 대해서, 좋은 기술에 대해서, 좋은 기업 문화에 대해서, 온갖 것들에 대해 마치 1000억 정도 번 사업가 처럼 말하고 다녔다. 사실은 180만원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말이다.


난 여전히 미생으로 살고 있으나 이 삶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나는 대단한 삶을 꿈꾸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이 기술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걸 바래왔다. 나에겐 선생님이 없었고, 선배도 없었기에. 끊임없이 홀로 반추하며 살아오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긴 여정을 걸어와 세상에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인생이 책이라면 오랫동안 책을 덮고, ‘The End’ 라고 쓰고 싶었지만, 이제와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쓰일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래서 내 삶의 책을 조금 더 자주 많이 적어보고자 한다. 나의 삶과 여정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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