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1
(오후 3시)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해 조금 늦은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2시에 STO 사업건으로 해외에서 있는 대표님이 제안 내용을 간단하게 보내주셨고, 진행 중인 STO 사업건의 구도와 콘텐츠 상품에 대한 문서를 살펴보았다. 새벽 4시쯤이 돼서야 잠에 들 수 있었는데, 언제나처럼 알람 없이 9시 조금 전에 깨어났다.
나는 그다지 부지런한 편이 아니다. 게으를 수 있을 때는 한 없이 게으른 사람이라 오늘의 일정이 바쁘지 않았기에 침대에서 바로 깨어나기보다는 커피 한 잔 마시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다시 누워 쉬고 있었다. 10시쯤 함께 일하고 있는 한 이사님 전화를 받게 됐다. 함께 거래를 진행하고 있는 분과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식사라도 간단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식사 제안은 어렵지 않지만 워낙 바쁜 분이라 차주에 일정이 날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내본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일정이 하나 비어 식사 일정을 잡고, 나는 아직까지도 돈을 보내지 않는 거래처에 연락을 해 입금 일정을 확인했다. 언제나처럼 1~2주만 기다려달라고 했고, 다른 한 곳은 별다른 말 없이 “넵”이라는 짧은 메시지만 보냈다.
대표들이 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어떤 사업을 하며 살아왔는지 한눈에 분별할 수 있다. B2B만 해온 나 같은 사람들은 몇 가지 비즈니스 철칙을 반드시 지킨다. 가령 이메일을 보낼 때 인사, 자기소개, 간단한 안부, 내용 전달, 맺음말, 서명 등과 같이 기업 간 대화에서 지켜야 할 불문율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나같이 비교적 어린 대표일수록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 문자를 보낼 때나 화상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반대로 B2C나 자영업을 해온 분들은 이런 패턴에 익숙지 않은 듯하다. 가령 문자를 보내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도 양식이나 규칙 등이 없이 제목만 덩그러니 보낸다거나, “수고하세요.”와 같은 말 한마디로 이메일을 보내는 일을 보곤 한다. 문자도 비슷하다. 문자도 작은 편지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작은 것에서 상당히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충분히 이해는 가능하지만 나는 종종 직감적으로 이런 분들과 일을 하는 걸 꺼리곤 한다. 이유는 비즈니스 매너가 다른 환경에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물에 대한 것도 엉뚱한 걸 원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충분히 설명했지만, 문서를 읽지도 않고 회의에 참석하거나, 굳이 말로 설명을 들으려 한다. 나는 확신하건대 정돈된 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가 말로 설명해 주면 이해할 수 있다는 건 허상이라고 본다. 이해는 자신의 언어로 내용을 풀어 설명할 수 있어야 이해한 것이지, 누군가의 말을 듣고 ‘아 내가 이해했구나.’라는 감정으로 이해했다고 치부하는 건 이해가 아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다섯 살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나는 충분히 그것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 있다. 다섯 살 아이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다섯 살 아이의 지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만큼 자신이 이해했다면 어린아이와 같은 청자를 대상으로 쉽게 풀 수 있을 만큼 완전히 학습해야 한다.
오후가 되고 늦은 첫 식사를 했다. 카카오톡에는 몇 가지 업무용 내용이 올라왔다. 그중 하나는 물류 서비스에서 유통 비용 원가를 절감하는 설루션을 진행 중인데, 이와 관련해 한 파트너가 질문을 했다. 질문에 답변하고, 중간에서 소통하다 보니 벌써 오후 3시를 지나 4시를 향하고 있었다.
오후 4시의 서울은 한가롭고 조용했다. 태풍이 온다 했으나 비는 크게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집 안의 고요함이 좋았다. 나는 아주 고요한 곳에서 멍하니 생각을 떨어뜨리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이 그런 순간이다. 머릿속에 있는 온갖 사건들, 온갖 이야기들, 관계들, 거기서 얻은 자극들을 모두 내려놓는 걸 좋아한다. 도파민은 즐겁지만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정말로 쉬기 위해선 모든 자극을 내려두고, 심지어 생각도 내려두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명상을 추천하지만 내 경우엔 명상이 쉽지 않다. 이유는 가만히 있다 보면 머릿속에 있는 온갖 사건들과 상황들, 해결해야 할 문제, 꿈과 목표가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명상이 되곤 한다. 도리어 글을 통해 생각을 빼내고, 기억을 빼내는데 집중한다. 한 때는 녹음기에 영화 ‘마션’의 주인공처럼 떠들어보곤 했지만 말을 하면서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격양되곤 했다. 쉬기 위해 명상하는 것이고, 쉬기 위해 정리하는 것인데, 말을 하면 에너지는 소모되고, 감정적으로 격양되고, 마치 술에 취하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사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들지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나는 술과 같은 자극을 삶에서 덜어내는데 항상 관심이 많다.
자극을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극 속에 살다 보면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생 시절 2년을 시끄러운 건국대학교 후문 술집 주변에서 살았다. 자극이 너무 많고,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면 뇌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한다. 모든 자극을 줄이고,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평온하고 초연하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에서 7~8년 정도 살면서, 왕십리, 한양대, 건국대, 군자, 양재동, 역삼동까지 오면서 점점 더 조용한 곳으로 가기를 소망하게 된다. 한 친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끔찍하게도 시끄러운 동네였다. 그러나 서울의 웃긴 점은 같은 논현동이어도 고급 빌라가 모여있는 논현동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마음 같아선 몇 달 전 논현동 브라이튼 N40으로 이사 가고 싶었다. 조용한 것도 좋았고, 집도 좋았고, 작은 발코니에 식물을 기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이사를 미루고 나는 온갖 세상의 무게를 대신 해결하고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좋은 집을 몇 달 전 보다 보니 확실히 집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물론 살다 보면 집에서 얻는 만족감은 줄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이 살기에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겠다.’ 하는 것도 있고, 동시에 친구나 지인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일이 잘 풀려서 삶의 여유가 생긴다면 아주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 가족, 친구, 지인, 파트너 분들 모두 종종 초대해서 식사도 대접하고, 편하게 대화도 많이 나누면 참 좋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이 꿈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선택지보다는 꿈꾸는 모든 것들을 적어도 한 번씩 누려보고 싶다. 아니 한 번씩 누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항상 입던 옷처럼 편하게 누리는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 항상 살아온 곳처럼 한남동 유엔빌리지나 브라이튼 N40이나, 서판교에 아파트형 개인주택이나.
재밌는 건 강남에 사는 건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4년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살다 보니 슬리퍼를 신고 테헤란로를 산책하는 날이 무척이나 많다. 강남에 익숙해졌으니 그보다 조용하고, 좋은 동네에서도 익숙하게 살아보고 싶다.
(늦지 않은 밤)
3시간 정도 짧은 잠을 잤다. 자는 사이에 돈을 보내지 않은 거래처 한 곳에서 입금 일정을 또 미룬다는 헛소리를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몇 마디 문장으로 정리하고, 짧게 통화했다. 사회가 힘들수록 신용도 없고, 책임감을 싸게 팔아버린 영혼이 많다. 특히 영업을 많이 뛰는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빚더미에 올라 살아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게 되는데 결국 간절한 영업은 미숙한 일처리로 끝이 난다.
지난 1년 전만 해도 이런 식으로 영혼을 팔고 하루를 사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잠잘 시간도 없이 일한다 했지만 결국 하는 일이라곤 밤새도록 술과 여자를 끼고 노는 것과 잠잘 시간도 없이 죄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그들을 보면 지옥은 필요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난 항상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지옥처럼 탈출구 없는 무한한 고통이 합당한가?’라는 물음이 있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아무리 큰 고통을 받아도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숨 쉬는 것보다 빠르게 죄를 늘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느낀다.
교도관 중 한 명이 쓴 글에는 ‘싸한 사람은 피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인생을 박살 낼 수만 있다면 몇 년을 감옥에 가던 게이치 않는 이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오랫동안 있었다. 전과가 10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살면서 만나는 일이 일반적이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선명히 알았다. 테스토스테론이 폭발하고,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지긋지긋한 감옥 생활을 끝내고 폼나게, 깨끗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걸 보았다. 아이러니하다. 한 편으로는 자기 기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요단강 보낼 각오로 살면서, 한 편으로는 온실 속 화초처럼 흉터 하나 없이 살아온 남자로 기록되길 원한다.
나는 그들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감정도 없다. 도리어 어떤 면에선 좋아하기도 한다. 그들은 논리보다 앞서는 의리를 가진 사람들도 많고, 많은 경우 사내다운 모습들을 보이기도 한다. 폭주하는 테스토스테론과 아드레날린, 도파민에 대한 갈망이 그들에게는 저주와 같은 결과를 이끈 게 아닐까 싶다.
지옥은 어쩌면 이미 그들에게 도래했다. 적어도 매일 숨 쉬듯 죄를 짓고, 거짓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이 세상이 지옥과 같을 것이다. 그들은 지옥의 구성원이며, 동시에 지옥 같은 세상에서 더 악마 같은 이들에게 고통받는다. 아이러니하다. 악마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악마다. 그리고 그 악마는 인간이다.
꿈에서 함께 일하는 회계사님와 통화를 한참 했다. 어차피 다음 주에 식사로 만나기로 했는데 꿈에서 통화를 하는 건 재밌는 경험이었다. 내용은 독특했다. 국민의 힘 김기현 당 대표님을 소개해주기로 한 것이다. 회계사님은 현대 계열사 대표님을 모셔오겠다고 했다. 아쉽게도 나는 국민의 힘 김기현 당 대표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회계사님은 대단한 분이지만 내가 알기론 현대 그룹 계열사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꿈에서 일을 하는 것은 흔한 일중독자의 삶이다. 예전에 에어데스크를 개발할 때는 UI를 그리고, 코드를 쓰는 꿈을 꾼 적이 종종 있었다. 일공살롱에서 일할 때는 코드를 쓰는 꿈을 많이 꿨다. 그때는 실력은 부족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은 컸다. 그래서 밤새도록 일하고 오후 4시쯤 2시간 정도 자고, 다시 일어나서 코드를 쓰던 날이었다. 잠을 자면서도 코드를 썼고, 엎드려 누워 쉬면서도 코드를 구조화했다.
인간은 고통을 받아야 성장을 하나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으며 코드를 썼기에 요즘도 내가 쓰지 않은 몇 만 줄의 코드에서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고, 몇 백, 몇 천 줄의 코드를 쳐낼 때 기분이 상쾌하다. 과거의 내가 피똥 싸며 만들어낸 고뇌의 결과다.
요즘은 컨설팅 그룹에서 온갖 사업건에 대해 분석하고, 논의하고, 사업 구조를 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하다 보니 회의와 미팅이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특히 해외 사업건의 경우 영어로 회의를 하다 보니 꿈에서도 영어로 회의를 하는 꿈을 종종 꾸고 있다. 그럴 때면 무척 기분이 좋다. 지금은 영어로 말하는 것이 30점 정도라면 이렇게 5년 정도 더 하면 전 세계 어디던 비즈니스 회의도 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뉴욕, 맨해튼으로 넘어가 금융가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싶다. 도대체 얼마나 큰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 세계 돈을 쓸어 담는지 그들의 면상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