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5
때로는 아군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모두가 관전자이고, 나와의 관계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됐을 때에만 친하게 행동하고, 무언가 주곤 한다. 대가 없이 먼저 베푸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생 시절 내가 돈이 없고 가난해도 학생부 애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돈의 90%를 쓴 적이 있다. 그 친구들 중 아무도 나에게 그 돈에 대해서 차후에 고맙다고 한 사람도 없고, 나중에 성인이 돼서 밥을 사겠다고 한 이들도 없다. 모조리,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갚지 않고 떠났다.
친구들도 비슷하다. 회사 물품들 정리하면서 컴퓨터, 모니터, 온갖 것들을 나누어 준 적이 있다. 내가 뻔히 힘든 상황인걸 알아도 나누어 준 값의 1/10이라도 도움을 돌려준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누구 하나, 정말 단 한 명도 아직까지 내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단 돈 10만 원이라도 힘들 때 보낸 인간이 없다. 그러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는 눈팅하면서 혹시나 자기 이야기를 하나 염탐하는 이들을 볼 때면 끔찍하게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들곤 한다.
불과 2~3년 동안 나는 내가 해결할 필요도 없고, 소송하고, 고소해도 되는 돈 약 3억 원을 대신 갚아주었고, 갚아 주고 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고마움을 전하는 이들이 있었을까. 책임에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바퀴벌레처럼 도망치기 바빴다.
한 번은 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매일 자신이 얼마나 많이 벌고 있는지 자랑하던 녀석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3차례 도움을 주었고, 굳이 줄 필요도 없던 온갖 축하금도 보내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위기에 있을 때 그 자랑하던 돈, 한 달 용돈으로 받는다는 돈보다도 적은 금액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역시 똑같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결국 내가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수년간 내 인생과 같은 돈을 많은 이들에게 뿌리고, 돕고, 대신 책임져주며 살아왔지만 그들 모두가 도망갔다. 그럼에도 항상 내 삶을 지켜보고, 뒤에서 상훈이 형이 어떻게 지내는지, 한대표가 뭐 하고 사는지를 물어보고 다닌다는 게 건너 건너 강남에 처박혀 일만 하는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
결심한 것은 이제는 먼저 베푸는 것을 멈출 때가 온 것 같다. 너무 많은 상처가 마음에 가득 찬 것 같다. 심지어 아주 가까운 이들도 내가 아주 힘들어할 때 단 돈 '5만 원 10만 원'도 보내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것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도와준 이들은 반대로 1/10만큼이라도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지 않다면 그게 무슨 관계인가 싶다.
나는 그들을 가족 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더 이상 그들을 가족, 형제, 친구, 동료, 직원, 그 어떤 표현으로 두고 싶지 않고, 타인으로 두고 싶다. 정확히는 삶에서 영원히 보고 싶지 않다. 당연하게도 그들을 점점 보지 않고 살고 있지만 내가 그들을 배려한 만큼 더욱더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왜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쓸까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페이스북에 대상자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번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한상훈이라는 인간에게 받은 것과 준 것 중 무엇이 더 많은가.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준 게 없구나." 하는 걸 적어도 수 백명의 친구 중에 몇 명은 알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갚을 생각이 없다면 제발 부탁이니 나를 친구 삭제하고, 나와의 인연은 모두 끊고, 그냥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살아가줬으면 좋겠다. 굳이 내 손으로 한 명 한 명 쳐내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양심이 있다면 본인이 받은 것과 준 것 중 무엇이 큰지는 스스로가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