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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07. 2023

악마

2023. 12. 7

점심을 먹고 동네 산책을 했다. 발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예전 사무실 인근의 한 교회까지 왔다. 오랜만에 주님께 인사를 드려볼까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창공의 푸른빛을 보면서 시원함을 느꼈다.


교회의 첨탑과 아름다운 장식을 보면서 나는 악마들을 떠올렸다. 세상에 숨어있는 악마들과 그 실체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악마라 부르는 사람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우리는 매일같이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악마인지 몰라서일까. 악마여도 상관없는 것일까.


한 때 빌게이츠는 실리콘밸리의 악마 소리를 들었다. 안 그런 곳이 없었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에 기술 훔치기까지 해적 그 자체였던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그를 악마라고 불렀지만 윈도우 OS를 온전히 대체하는 건 현시대에 와서도 불가능하다.


그 대단한 스티브 잡스도 직원들에겐 광인으로 보였고,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짜르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 대장이 악마여도 좋으니 사회에 가치가 됐다면 그건 옳은 일인가.


수년째 추적하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오늘 선명해졌다. 우연찮게도 흘러들어온 몇 가지 퍼즐 조각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실체를 맞춘 것이다. 막연한 악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선명한 악마로 밝혀진 날에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괴롭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악마와 계약한 수많은 이들이 군중이 되어 저 들판에 모여있는 것을. 강남, 역삼, 선릉을 넘어 여의도, 용산, 판교까지.


지인들은 언제나 정의보다 자신을 생각하라 했다. 난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썩어있는 인간들과 사이좋게 술잔을 기울일 만큼 영혼이 타락한 인간은 아니다.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까. 내 삶을 구원하면서 동시에 이 악마들과 싸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신은 우리 곁에 있다고 한다. 어디에 있을까. 악마는 내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세상을 보고 있을까. 텅 빈 교회 앞 주차장만큼이나 비어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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