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여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Dec 06. 2023

청소

2023. 12. 6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있다.


사실 며칠 됐지만 BLCNT도 내년을 기약하고, 현재 단계에서는 폐업 처리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BLCNT는 반년 전부터 뜻이 일치한 대표님과 이사님과 함께 하던 사업이었다. 청소, 이사, 하자체크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만 10년 넘게 해 오신 대표님이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나는 기술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다른 이사님은 자금 확보와 마케팅, 운영 전략을 담당해 주셨다.


천천히 일은 진행되어 갔지만 언제나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펼쳐진다. 주 고객처로 보았던 곳에서는 갑자기 6개월 이상 일정을 뒤로 미뤘고, 투자 시나리오를 잡아뒀던 것은 BLCNT의 연혁이 3년을 넘기면서 신규 창업 법인으로 받을 수 없는 혜택으로 넘어가버렸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고꾸라진 것처럼 당연하다 생각했던 부분에서 놓쳤던 것이다.


BLCNT도 정리하고, 플렉스웹의 거의 마지막 프로젝트도 정리하면서 새 하얀 종이처럼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세무사를 통해 마무리해야 할 정산들을 처리하고, 인수인계가 필요한 프로젝트에는 적절한 인수인계를 해줄 전문가를 초대하고 있다.




2022년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2023년이 여러 꿈이 실현되고 세상을 누비게 될 시간이라 꿈꿔왔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약속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마치 꿈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얼굴마저도 희미해져 갔다. 손쉽게 뒤집는 약속이 허다하고, 사업을 하면서 만나는 온갖 허황된 말들, 갈등들, 소송과 분쟁,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까지도 도와달라는 사람들까지.


그 안에서 균형을 잡으며 하나하나 청소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청소가 별 것인가. 더러운 곳을 쓸고 닦고 하면서 점점 더 깨끗하게 하는 것일 뿐. 허울뿐인 약속들로 얼룩진 관계는 청산하고, 잊어버릴 것들은 모두 잊고,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시간을 주고, 그동안 나는 살아남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의 무책임의 무게를 대신 어깨에 지고.




완전히 깨끗해져 가는 바닥을 보면서 나는 텅 빈 자유를 느끼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무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교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


지금 나의 모습이 그렇다. 모든 걸 치워가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관계를 만들지도 않고, 더 이상 급이 떨어지는 대표들의 전화도 정성 들여 받지 않는다. 그저 텅 빈 공간 중간에서 깨끗해진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남은 청소를 마무리한다.


올해는 고작 25일 남았을 뿐이다. 자유를 향한 여행이 아닌 자유를 위한 청소가 된 2023년. 나는 청소를 한다. 수많은 관계와 사건들을 청소하고, 악취를 풍기는 이들을 집 밖 멀리 던져두어 깨끗한 방을 만들어 간다.


난 이 모든 청소를 마치고, 2024년을 마주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