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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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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an 22. 2024

나의 죽음

2024. 1. 22.

꿈에서 나는 죽었다. 죽은 망자들이 타는 승합차에 앉아 저승을 향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 여럿 망자들 모두 슬픔음 없이 앉아있었다. 두런두런 옆에 앉은 망자와 세상을 보며 나는 이야기했다.


분명 세상은 산 사람들의 것이지


세상의 밝게 빛나는 거리를 지나서 곧이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고향집이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서둘러 차에서 내려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세상은 흑백으로 어두웠다. 나는 “어머니!’를 외치며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목이 터져라 부르며 들어간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서 식탁에 앉아 계셨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온 것을 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나는 나의 죽음을 부모님께 알려야 했다.


나는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이제 망자들의 세상으로 떠나야 해요.


그리고 나는 부모님께 아내와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서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꿈 속이지만 부모님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칠흑처럼 어두던 세상이 아닌 온갖 선명한 색으로 물들어진 세상이었다. 꿈이라고 하기에 너무나도 선명한 집을 보면서 나는 자리를 일어나려 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어떤 상황인지 내 죽음을 내가 전하러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인지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이제 떠나야 한다고 하니 어머니는 부랴부랴 저승길에 춥지 말라 양말을 개어 주머니에 담아주셨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보니 시간은 고작 1시간쯤 흐른 걸까. 선명한 기억에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이 슬픈 꿈을 기억해 두며 녹음해 두었다.


사실 저승을 향해 가는 차를 타는 꿈과 부모님을 뵌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두어 번 나는 비슷한 꿈을 꾸었다. 그전 꿈에선 현실과 지옥의 사이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몸은 모두 땅에 묻혀 있었다. 오직 손만 땅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발목이라도 잡으려 허공에 간절히 손을 휘두르곤 했다.


이들도 살아생전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왔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누군가가 자신을 땅 속에서 뽑아주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었다. 나는 이들 중 한 명을 뽑아주려 했으나 저승길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말라 했다. 이유는 땅 속에 있어도 옆에 있는 이들이 그곳에서 빠져나가게 해 줄 귀인을 만난 것 같으면 크게 울부짖으며 모두가 자신도 빠져나가게 해달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간절한 희망으로 보이지 않는 땅구더기에서 손만 내놓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곳에서 허우적거리며 구원을 찾는 이들이 길가와 풀숲에 모두 가득했다.


반대로 그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씩 차에서 꺼내 땅 속에 묻는 사자들이 있었다. 힘없는 영혼들은 두려워하며 땅 속에 파묻히기를 거부하곤 했지만 영혼이 이 텅 빈 세상을 떠 돌아다녀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산 사람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을 걸어도, 손짓을 해도, 아무도 모르는 세상. 배고픔도 허기도 느끼지 못하지만 낡은 몸뚱이 하나를 이끌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저 의미 없이 배회하는 영혼일 뿐. 육신이 없으니 욕망도 자극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땅 속에서 영혼이 담고 있던 모든 기억과 원한들이 잊혀 나무와 다를 바 없이 굳어버린 손이 되면 그제야 이 길고 긴 여정은 끝이 난다.


나는 여전히 두렵고 아프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이 아프다. 참으로 슬프다. 이 빛나는 세상에서 살아가며 나를 사랑해 준 이들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분명 내 꿈은 현실과 무관한 나의 세상, 나의 기억에서 가족을 놓아주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부모님이 머무는 1층이 아닌 내가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보냈던 2층으로 나는 향했고,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설령 내가 저승길을 향한다 하더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집에 있는 양말을 고이 개어주실 분이었다.


참 슬픈 밤이다. 죽음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슬프다. 내 힘든 시절을 거치며 내가 이 길을 견딜 수 있게 항상 사랑해 주신 나의 부모님. 아버지와 어머니.


언젠가 이 모든 빛이 사라질 날이 와도 항상 감사했고, 사랑했노라고 기록하고 싶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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