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7.
ecile II · Brad Mehldau
사람들은 이중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포르노를 접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이다.
공공연하게 AV 배우가 유튜브에 나와도 모두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성별을 나눌 필요도 없다. 인간이 가진 본능에는 성이 배제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많다. 도덕적 우월함으로 대중을 교정의 대상으로 대한다. 그렇기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높은 수준의 규제가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국가다. 그러면서도 암암리에 어떤 형태로든 욕망을 충족한다.
이중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사생활이 제삼자에게 사찰당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러시아와 같이 국가의 감시가 삼엄한 곳에서 사찰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텔레그램은 2013년도 카카오톡 사찰 논란 당시에 새로운 대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텔레그램의 높은 프라이버시 보호에서 생긴 범죄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를 공개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 누구에게도 감시받지 않는 서비스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감시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왜 만들지 않을까. 애초에 양립 불가능한 것을 세상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치 이런 것이다.
"칼을 날카롭게 만들어 주세요. 어떤 생선, 고기도 잘 썰리게요. 그러면서 사람들을 찌르거나 벨 수는 없어야 해요."
그래 이런 상품이 있다면 만들 수야 있겠지. 하지만 사람인지 감시는 어떻게 할 것이며, 사람인지 여부를 사찰하지 말라고 하는 요청이 온다면 또 어떨까. 이처럼 이중적으로 자신에게 필요로 하는 것만 요청하는 대중이 있기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음식 프랜차이즈가 대중성과 가게마다의 특별함을 모두 챙기는 건 사실상 말이 안 되는 것처럼. 기준이 없는 시스템은 시스템이 아니라 그때그때 사장 기분 따라 달라지는 구멍가게 수준의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내 인생에서 기준점 역시 오랫동안 고민이 됐다. 개발자이자 해커로 살면서. 사업가이자 컨설턴트로 살면서. 어디서부터가 악이며, 어디서부터는 선인지. 어떤 기준에서는 옳은 것이 어떤 기준에서는 그른 것이 되는 것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걸 고민하느니 돈만 보라는 이들도 많았다. '돈만 보라.' 나는 이 말처럼 돈이 가장 우선 두는 가치로 사는 인생은 살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개발자로 등록하고 여러 플랫폼에서 외주를 받을 때 온갖 쓰레기 같은 서비스 제작 요청을 받았다. 그전까지 알지도 못하던 밤의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밤의 세계에서는 그들만의 시세가 있고, 그들만의 제작 방식과 협의 방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논의를 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지하 가게에서 이야기하는 걸 선호했다. 계약서는 제대로 작성되지 않거나 또는 변호사까지 동원해서 자신들에게 지독하게 유리한(나에게는 독소조항으로 가득한) 계약서를 들이미는 경우 둘 중 하나였다.
"돈만 봐라."
이 말은 내 뇌와 가치관, 삶의 기준까지 몽땅 내팽개치고 돈만 본다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돈만 보는 비즈니스는 없다. 돈 이전에 사업의 구조를 봐야 했고, 사업의 구조에서 피해자가 생기는지, 우리가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닌지가 중요했다. 사업의 설계 단계부터 피해자가 뻔히 생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전략이다. 그러면 모든 사업이 미친 듯 쉬워진다. 사람들을 기만해서 투자금을 모으거나, 허황된 말로 상품을 부풀려 과대광고를 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것에 대해서만 해결하거나 잠적하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감옥에 다녀오면 된다는 마인드로 사는 사람도 많다.
그렇기에 허황된 말, 과대광고, 성공 팔이 모든 종류의 소비자를 기만하는 인간들을 나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데, 그들은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이코패스적이다"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상대방이 피해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것에 가깝다. "내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고객이 내 좋은 상품을 써봤으면 된 거 아냐?" 같은 개소리를 하는 인간들을 보다 보면 그들이 가진 삶의 기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상품은 딱히 좋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팔아 대는 제품의 실체는 대부분 허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짓말에 의존해 살아간다.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결국은 리플리 증후군처럼 어디서부터가 거짓이고, 진실인지도 판단하지 못한다.
피해자를 양산하는 비즈니스 모델. 사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어떤 곳에든 할 수 있다. 음식 재료를 상하기 직전의 재료로만 싸게 떨이로 가져와서 판다면, 원가 절감이 되어 돈을 더 벌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걸로 피해 입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비즈니스는 무너진다. 어떤 사업이든 정도를 포기하는 길은 별게 아니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좋은 신선한 재료를 사서 원가율이 높아지면서, 인건비는 깎아가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이 정도이면서, 상도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의 기준이나 악의 기준, 심지어 도덕의 기준까지도 사람들의 기준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20대까지만 해도 나는 대중의 기준이 중요했기에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애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대중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얼마나 감정적 동요를 주는 사건이 그곳에서 생겼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 기준은 매번 바뀐다. 언제는 날카로운 칼을 원했다가, 언제는 이 빠지고 쓸모없는 안전한 칼을 원하는 것이다.
해커로서 나는 핵티비즘을 항상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나라와 세계는 사실상 프라이버시가 없다고 할 만큼 어떠한 정보든 원한다면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사람들은 흔히 "이거는 절대 모르지."라고 생각하는 게 있는데,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접속하는 인터넷은 누군가가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1차 가공된 데이터, 2차 가공된 데이터든 상관없이 공수를 들이면 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중요한 데이터를 서비스 제공자가 볼 수 없도록 클라이언트 레벨에서 암호화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가 되고 있으나 설령 그렇다고 한들 어떠한 요청도 시간과 IP의 기록은 남게 된다. 그뿐인가. 대한민국은 전국 어디를 가도 수많은 CCTV가 감시하고 있다. 그 CCTV를 감시하고, 볼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감시자가 부패했을지 안 했을지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왓치맨 패러독스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꼭대기의 권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이들에게는 악마의 속삭임이 찾아오고, 그들은 그것으로 본인의 수익 이외에 감춰진 돈을 벌며 선을 넘어 다닌다.
이 기준들에 대해서 나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한 편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부끄러울 일들은 인생 살면서 참 많았다. 부끄러운 일들도 하면서 사는 게 사람이라면 적어도 하나의 선명한 신념을 품고 살아가자. 그리고 신념을 세우기 위해서는 많이 고민해 보자.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정해진 나의 신념. 완전한 암호화와 보호. 그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해 왔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다. 감시하는 이들은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하고, 그들을 감시함으로 인해서 얻는 무언가가 있기에 감시를 원한다. 감시가 없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 그게 설령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될지라도 아주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야 한다. 칼을 만드는 장인은 단단하고, 부러지지 않는 칼에 집중해야 하지 자동 인식 센서가 달린 어린이용 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나는 이것이 무기 상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기 상인은 전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하지만, 무기는 인류 역사에 없을 수 없는 필요악 같은 존재이다. 지구상 모든 무기가 사라지고, 국가 간 전쟁을 평화롭게 주먹다짐으로 하자고 해야 할까. 쪽수대로 아무런 무기도 없이 주먹으로 싸우게 된다면, 쪽수 많고, 체격 좋은 국가가 전 세계를 무력 통일하는 상황도 괜찮을까. 무기가 진정으로 필요한 곳은 약자인 것처럼, 프라이버시가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곳은 프라이버시가 철저하게 무시받는 곳이다.
어쩌면 나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몇 년 전부터 세상을 끝없는 전쟁터라 생각하게 됐다. '무저갱'이 이곳일까 싶기도 했다. 예수가 말한 "평화가 아닌 칼을 주러 왔다."가 이 말인가 싶다. 세상은 전쟁터다. 대한민국은 전쟁 중인 국가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북에서는 미사일을 쏘고, 댓글 부대가 헛소리로 여론을 조작하고, 대놓고 여론 조작한 인물이 감옥까지 갔다 온 국가인데도 사람들은 딱히 두려움이 없다.
그뿐일까. 이 평화와 번영이 언제까지 이어질까를 몇이나 고민하고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의 급속도로 세워진 평화가 번영은 언제나 폭풍 위의 촛불처럼 연약하게 흔들린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약하다. 전 국민이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절대적 명제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도 없고, 땅은 작고, 유일하게 사람뿐인 국가이다." 자원 없고, 먹고살 방법이 없어서 미친 듯 공부시키고, OECD에서도 항상 최고 수준으로 과로하고, 노동생산성은 바닥이고, 자살률을 수년째 1위를 기록하는 국가임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소멸하고 있는 국가임에도 딱히 공포에 떨지도 않는다.
눈앞에 있는 공포만 언제나 공포로 여기기 때문이다. 익숙한 공포는 공포가 아닌 상황이 됐다. 언제나처럼 북에서 미사일을 날리던 관심도 없고, 연예인이 음주 운전을 해서 누구를 죽였다는 게 더 와닿는 세상. 비바람 속 촛불만큼이라 위태롭게 흔들리는 와중에 이 나라에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나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해외로 나가는 것을 물어보았다.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고, 먹고살기 팍팍한 이 대한민국을 벗어나 유토피아를 찾아서, 지금까지 악착같이 모은 돈을 가지고 조금 한적한 국가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려고, 부자들이 끝도 없이 도망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부자 순 유출 순위는 올해 전 세계에서 4위로 추정된다고 한다. 올해만 갑자기 늘어났을까? 아니 대한민국의 부자들의 유출 순위는 오래전부터 높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따위는 없다. 코리아의 세계적 평가가 그만큼 위태롭고 보잘것없으니 디스카운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다 부자들이 떠나는 국가들은 어디일까. 중국, 영국, 인도다.
중국과 인도는 압도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많고, 부자들의 숫자도 많으니 당연한 순위라고 볼 수 있고, 영국은 지난 몇 년 브렉시트 이후로 엉망이 된 꼴을 보면 내가 부자라도 나가고 싶을 것이다. 그들을 제외하고 나면 우리나라의 부자 탈출이 1위인 셈이다.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수많은 국가들을 제치고 말이다.
나는 종종 시중은행 뱅크런 사태에 대해 친구들과 지인들과 이야기하곤 한다. 대한민국에 돈이 많다고? 지나다니는 비싼 차들과 건물들을 보라고?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가 고작 1년 전이다. 제2 금융권에서 일어난 인에 한국은행이 유동성 공급 하겠다며 불 끄는 게 이 나라다. 제2 금융권의 은행에서 생긴 뱅크런 사태에 중앙은행이 벌레 벌떡 뛰어와서 유동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만큼 돈도 없고, 휘청휘청 거리는 국가가 바로 이 나라다.
나는 서두에서 이중성을 이야기했다. 나라가 개판으로 진행되고 있고, 어떤 사람도 국장을 하기보다는 미국주식을 하라는 게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조언이 됐음에도 죽어라고 부동산 가격을 맹신하는 이들이 가득하다. 한국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고, 살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유동성도 말랐는데, 자산가격은 오른다는 건 어떤 논리에서 나오는 말인가. 논리가 아니라 그렇게 주장해야만 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고, 그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똑똑한 사람도 바보가 된다.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금 자산은 별로 없이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에 의존된 상태이다. 노후를 대비한 여유 자금이나 현금도 없다. 오롯이 부동산 평가 자산이 대부분의 가게들의 자산 구성의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 평가가격이 떨어지는 순간 퍼센트로 내 인생이 깎여나갈 것이니 죽어도 살아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 심정은 이해하겠으나 누가 올려줄까? 돈 많은 부자들은 자산 정리해서 밖으로 나가고, 젊은 사람들은 떨어지는 노동 가치로 인해 돈을 모을 수가 없는데.
노동 가치도 처참하다. 2013년 기준 1000대 기업의 평균 임금은 3325만 원 선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엄청난 상승을 보인 금융계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소폭 상승했고, 공공기관 등은 거의 상승하지 못했다. 지난 10년 동안 오른 물가와 자산가치에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럼 그전 10년은 어땠을까? 2003년과 2013년을 비교한다면? 노동의 가치는 시시각각 떨어지고 있고, 노동 수익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대다.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삶이 피폐해질수록 나라에 도적 때가 많아지고, 범죄자가 들끓었던 것은 유구한 역사이다.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더 극단적인 길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엔 아닌 사람들도 돈의 논리로 본인이 가진 도덕의 기준을 한 걸음씩 뒤로 퇴보하고, 때로는 기준을 송두리째 바꾸며 이도저도 아닌 시류에 흘러가는 생각으로 살게 된다.
나는 이 시대를 쭉 보면서 정한 것은 이들의 기준을 따라가지 말고, 내 기준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고 정한 것이다. 회사를 해외로 옮겨 외화를 벌어오고, 한국에서 영어가 능숙하고,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로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해외에서 찾아내고, 자본주의의 시스템 모순을 보고 있으니 그곳에서 나와 내 가족을 대피시킬 방법을 찾아간다. 또한 국가와 각각의 회사와 이해집단들이 호시탐탐 사람들을 감시, 검열, 교정, 세뇌하는데 혈안이니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앱, 웹 제품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블록체인이 될 수도 있었다.
결국 내가 정한 길과 신념을 따라가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시류는 그때그때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바뀌고, 자신의 이득을 따라 사실과 논리마저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세상에서 내가 보고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나와 형제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뿌리부터 바꾸고 싶었다. 우리의 신념과 방법, 절차에 대한 의견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말이다. 지금은 이 길이 아플지라도 훗날 조금 더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일념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전쟁터다. 총과 칼이 이제는 0과 1의 숫자로 치환된 데이터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킨다. 총탄을 볼 수 없는 전쟁터에서 볼 수 없는 이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전쟁에서 헌신하는 이들을 막아서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지의 값.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헌신하는 이들로 인해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때론 잊곤 한다. 마치 우리가 지금도 안전한 것은 총을 들고, 경계를 서는 군인들과 이 사회가 존속되도록 헌신하는 수많은 이들이 함께 만든 것임에도 그들을 기억하지도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