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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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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Aug 23. 2024

표적

2024. 8. 23.

인간에게는 두 가지 상태뿐이다. 살거나 죽거나. 죽음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면 원하던 원치 않던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한참을 멈춰서 있었던 것 같다.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 이유가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세계에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 같았다.


오래된 고민은 내가 바닥까지 내려갈 때 고민이 생기지만은 않았다. 바라온 일들이 이뤄져 갈 때마다 그 허무함에 덧없음을 느꼈다. 고작 이걸 위해서 여기까지 왔던 걸까.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은 종교나 정치와 같이 신념을 따르는 곳들을 보게 만들었으나 심연으로 향할수록 그 안에 있는 검은 오물들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사업일 뿐. 모든 조직과 이념은 목적 달성의 수단이고 대부분의 목적은 돈, 그 이상은 권력과 지배였다.


도대체 뭐 하고 사는 것일까 우리는. 마치 인간은 학교를 가는게 당연하다고 주입당한 학생들처럼 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사상, 이념, 가치관까지도 쥐락펴락하려는 이들이 가득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위에 서고 이 동그란 돌덩어리인 지구에서 대단한 역사를 만들어보겠다 애쓰고 있다. 우주의 작고 처량한 점 같은 이곳에서.


그러나 이딴 쓰레기 같은 세상일지라도, 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 보려는 이들. 숭고한 희생을 하는 이들은 대를 잇기 힘들다. 이기적 유전자에 따라 적당히 사회에 어울리고, 적당히 인내심도 있고, 적당히 착취적이며, 적당히 이기적인 인간들이 세상에 가득해진다. 배에 기름이 가득 찬 눈먼 이들이.


보고자 하는 것이 현실인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환상의 세계와 편집된 미디어의 세상에서 헤엄친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판잣집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러 가고, 차게 식어버린 노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 나라가 포기한 독립 유공자들을 대접하고, 삶이 어둠 속에 잠식되어 가는 이들을 어둠에서 구해낸다.


왜 살고 있는가. 죽지 못해서. 죽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두려워서. 그렇게 산다. 살아야 할 이유도 선명하지 않고 죽음보다 소중하게 지킬 것도 없다. 그렇게 아무런 신념도 의미도 없는 방황하는 세계. 욕망의 술을 마시고 취해버린 이들. 나는 이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죽지 못해서라도 반드시 살아야 한다면 , 살 수밖에 없다면, 나는 그들의 목덜미를 잡아 그들이 창조한 오물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싶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야 그들의 욕망은 만족에 다다르겠는가.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겨야 그들의 악행이 끝이 나겠는가.


바닥의 바닥을 보며 나는 꼭대기 위에 꼭대기를 노린다. 어느 날 그가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 광복의 날만큼 기쁘게 나는 바닥에서 함께 걸어온 이들과 함께 춤을 추겠지.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삶의 고리도 끊어낼 수 있겠지. 나에겐 텅 빈 허공 속에 불타는 더러운 표적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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