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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Aug 20. 2024

2024. 8. 20.

세상을 더 살아볼 이유가 흩어지고 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이제는 보람이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아무런 보상도 없다. 그저 손에 칼을 들고 범죄자와 상대하며 피를 흘리기만 할 뿐. 


오늘은 부모님과 연락을 했다. 며칠 전 아무 이유도 없이 토를 하셨다고 했다. 늦게 태어난 만큼 부모님의 노화는 빠르다. 무언가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말이다. 


한 때는 사업에서 비전을 품기도 했었다. 내가 지고 있는 무게를 나의 직원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어떤 삶을 살아온 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흩어지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삶의 의미를 찾아줄 큰 일들에 그렇게 목을 매고 살아왔던 것 같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길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야 했고, 그 짐을 옮기기도 내려두기도 참으로 어려웠다. 


세상에 실망한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믿었기에 더욱 실망하게 되고, 애를 썼기에 더욱 괴로운 법이다. 시작부터 애를 쓰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더라면 무너질 것도 없었겠지. 세우지 않았으니 무너질 일도 없는 이들이 오늘은 무척 부럽기도 하다.


109.


보통 사람들은 걸어본 적 없는 전화번호. 삶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의지가 될까 싶어 잡아보게 되는 번호다. 사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아보겠다는 이들을 회유하기 위한 장소와 같다. 떠나는 이를 어찌 잡겠는가. 원해서 이곳에 온 사람이 없고, 떠나는 것조차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이곳. 


세상은 감옥과 같다. 넓은 것 같지만 좁아서 매일 정해진대로 정해진 길과 시간을 맞추며 살아간다. 누구 하나 다르게 살면 온갖 훈계를 하며 맞추길 원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정시에 출근하라. 멍청한 소리지. 그랬기에 나는 회사를 9~11시까지 아무 때나 출근하라고 했다. 너무 일찍 오지도 말고, 오전 2시간 사이에 아무 때나 와라.


감옥은 멀리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그렇게 강요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났고 남자면 군대에 가야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웬만하면 대학에 가라고 한다. 그들의 말을 따라 살아서 얻은 이득이 무엇이었을까. 수천만 원의 학비는 누구를 위해 쓰인 걸까.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도 지치고, 지식을 탐구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100개를 알다가 1개를 틀리게 말하면 1개로 인해서 욕을 먹는 게 지식인의 삶이고, 1개만 아는 이들에게도 멍청이 소리를 듣기도 한다.


세계의 고지를 향해서 나아가보기도 했다. 강력한 사람들과 영향력 있는 이들의 삶. 그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에겐 그들이 탐낼 무기들이 꽤 있었다. 나를 아는 이들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했고, 그 추천을 타고 타고 가다 보면 기업의 총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조금은 다를 거라는 환상을 가졌다.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것보다는 조금은 나은 사람들일 거라고. 위나 아래나 모조리 똑같다. 아랫도리의 욕망을 위해서 살기 위한 이들과 모든 게 풍족해서 평범한 것으로는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정신적 가뭄에 놓인 이들. 약과 알코올, 니코틴과 섹스. 그 어느 것에서도 자유로운 인간이 없는 걸까 싶을 만큼. 모두가 똑같이 동물적 본능을 따른다.


그렇게 사나 보다. 본능을 동경하며, 거지 같은 세상에서 하루하루 똑같은 날을 보내면서도 다른 미래를 망상하며. 그렇게 다들 사나 보다. 목구멍까지 욕이 차오르더라도 권력 앞에 목을 비틀어 막고, 새어 나오는 불만은 권력자가 부재한 곳에서 떠들고, 그 안에서 욕망을 해결하고. 그렇게 다들 사나 보다. 


나이를 먹으면 조금은 나은 것들을 보게 될 거라고 기대했기에 실망도 크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알아가다 보면 머물고 싶은 곳을 찾을 줄 알았는데, 머물고 싶은 곳은 이 지구가 아닌 저 세상인 것 같다. 


무얼 위해 살아온 것일까. 살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다. 세뇌당한 것처럼. 매트릭스에 갇혀 사는 것처럼. 여기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창조하고, 없애고, 창조하고, 없애고. 


내 삶의 끈. 


이제 남은 3조각.


이들이 없다면 나 또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겠지.


먼저 간 형제여. 내 길을 응원해 주기를. 

우리가 함께 해내지 못했던 것을 끝마칠 힘을 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Canto Gregoriano, MISSA DE ANGELIS, Schola Gregoriana Mediolanensis, Giovanni Vianini, Milano,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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