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6.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끝으로 가면 모두가 만난다는 건 참으로 재밌는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만화나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전개가 아닌가.
자웅을 겨루던 이들이 모두 각자의 정상을 향해 나아갔으나 결국 그들이 쫓던 정상은 한 곳이었다는 사실이. 결국 그곳에서는 모두가 만났다. 목사와 신부. 박수무당과 중. 인간을 자유케 하는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모인 곳인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굴종을 하게 하는 이들이 모인 것인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울뿐인 도덕이 벗겨지는 건 역사적으로 시간문제였다. 흉흉한 국가에는 도적들이 권세를 잡고, 도적들이 세를 키워 더 큰 권력에 도전한다. 나라님에게 공물로 뜯기고, 도적떼에게 뜯기니 평민들이 살아갈 수가 있나. 아무리 일을 해도 자식새끼 먹일 쌀이 떨어지면 선량한 사람도 도적떼가 된다. 오갈 곳 없는 이들에게 도덕은 가장 먼저 버릴 수 있는 허울일 수도 있고, 최후까지 지키고 싶은 보물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따르는 가치를 버리기를 시작한다면 사람은 극단적으로 다르게 살 수 있다. 돈만 주면 온갖 범죄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남들이 얻기 힘든 것을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악마를 보았다'처럼 사는 연쇄 살인마라면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당할 복수나 자신을 쫓는 경찰의 위협이 없을 수 없는 것처럼. 선을 넘어버린 이들은 동시에 새로운 위협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새로운 위협을 감내할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이 정한 세계를 결정한다.
중국이 난세일 때 흥했던 황건적은 도적떼였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런 정신적 공동체가 없이 구성된 것은 아니다. 모든 범죄 조직은 그들 서로가 범죄자이고, 도덕의 선을 아득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 간의 신뢰를 위해 종교라는 장치가 기저에 필요하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테러 단체들은 종교적 배경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막장 조직 내에서도 규율과 규칙을 만들어 운영한다. 황건적도 그랬다. 태평도라는 종교를 기저에 두고 움직였다.
범죄 조직 내에 구성원들이 모두 따르는 일관된 가치가 없다면 결국 길을 잃은 인간과 같이 돈과 쾌락 정도로만 엮인 조직이 될 뿐이다. 조직으로 움직이며 함께 지켜야 할 가치가 없으니 결국 남는 거라곤 비즈니스. 돈. 쾌락. 이해타산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순간 관계가 끝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기에 거대한 조직일수록 종교적 가치나 그에 준하는 목표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한다.
기업가들의 논리에서도 이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소위 하나님의 뜻(그러나 모두가 말하는 하나님은 다르다)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어떤 하나님이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는 걸 좋아하시는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경제 공동체니 연합이니 하는 것들 역시 그 기저에 들어간 논리는 동일하다. 돈만 가지고 엮인 관계는 돈이 사라지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고, 돈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따른다고(명목상으로라도) 해야만 그 조직은 유지된다. 인간의 이 단순한 패턴을 바탕으로 모든 꼭대기에는 단순히 돈만으로는 엮일 수 없는 종교적 카르텔이 존재하게 된다. 구성원을 결속시키고, 그들이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대한민국에 있는 온갖 종교 단체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식으로 인정받지도 않는 교단에서 사람이 신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교리를 따르는지 따져보면 충격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초능력을 쓸 수 없다. 이 단순한 명제를 인지 부조화까지 오면서 모순을 견디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계수한다면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중 평균 x%는 자기 병도 못 고치는 교주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이들이니 말이다.
범죄를 가장 많이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전문가인 집단은 누구일까? 교도소에 간 범죄자들일까. 아니다. 검사들이다. 범죄의 성립 조건과 이해관계를 알아야 기소하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의 디테일과 방식, 어떤 이해관계가 그들 사이에 있었고, 재화로 사용된 것은 어떤 경로로 이동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적과 싸우는 이들은 적에 대해서 가장 잘 알게 되고, 그들이 변절하면 무서운 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변절한다라는 게 일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세상이 흉흉해지면 선량한 사람도 도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세상의 온도는 다르고 변절의 기준점도 다르다.
공격을 알아야 방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해커들에게는 너무도 선명한 명제다. 해커가 하는 일은 시스템의 취약점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알아내 보호하는 일이기에 먼저 공격해야 한다. MMA 선수가 대련을 하면서 공격에 따른 방어를 연구하는 것처럼 보호해야 하는 시스템을 공격하며 시스템을 지켜내는 셈이다. 그들이 똑같이 변절한다면. 보이지 않는 시스템 곳곳에 백도어를 열어둔다면. 가장 뛰어나고 모든 것에 접근 가능한 인물이 변절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은 없다.
강력한 힘은 보통 개인이 아닌 집단에서 나오고, 집단의 결속력은 단순히 돈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이들은 적다. 반대로 실제적 가치는 없는데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선동하는 힘만 있는 집단은 그것만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먹고 산다. 일본에 1/4 밖에 안 되는 땅덩어리에 5천만 국민이 아등바등 살면서 그 안에 사이비 교주부터 불법 다단계 회장들까지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것은 그들은 사람들의 내면을 다루는 방법이 깊은 것도 있겠지만 그들과 같은 편에 서는 변절자들로 인해 권세를 얻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가 봐도 저것은 잘못됐다고 알고 있지만 사회에서 건드리지 못하는 집단이 곳곳에 즐비하다. 그들의 뒤에 누가 있었는가. 총명한 지혜로 각 분야에 꼭대기에 올라간 이들이 어느 날 그들에게 야합하면 어중이떠중이 집단에서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이 되는 건 일순간이다. 결국 인간의 기저에는 상황에 따라 기준점이 달라지는 도덕의 선과 동시에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기에 능숙한 선동가(또는 교주), 그리고 한 분야에서 정점에 도달한 뛰어난 인물들이 합쳐질 때 괴물이 나타나게 된다. 그 끔찍한 괴물들은 사람들의 인생을 빨아먹는 괴물로 성장한다.
괴물을 잡겠다는 것은 이들 모두와 싸우겠다는 의미를 뜻한다. 뱀과 여우의 말을 섞어 쓰는 교주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욕망에 빠진 이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는데 능숙하다. 정치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강해 보이지만 막상 돈이 없고, 그들이 가진 권력의 위치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돈을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고, 누군가의 목줄을 멜 수 있다는 권력으로 의기양양한 척한다. 이들이 찾는 것은 자신에게 표를 줄 사람들과 선거에 쓸 돈을 제공받아야 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사람과 돈 모두를 가지고 있는 존재를 찾아다니게 된다.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정치인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표와 돈. 그럼 그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 정치인은 규제의 칼날로 기업가들을 견제할 수 있다. 정경유착이라는 표현이 한국에서는 조금 먼 표현일 수 있는 게 규제라는 이름으로 기업가들에게 삥을 뜯는 것에 가깝다. 일진한테 돈을 뜯기는 불쌍한 학생이 일진과 유착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 기업가들은 깡패짓을 하는 권력과 싸우기보다는 그들이 잘 보이려고 하는 이들을 구워삶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거부할 수 없는 금액으로. 먹이고 또 먹이고. 그렇게 그들 역시 경제의 정점에서 경제를 이끌다 결국 변절하게 된다. 또 다른 변절자. 또 다른 악의 후원자.
결과적으로 그들 모두는 도적떼가 된다. 도적떼의 습성대로 농가를 약탈하고, 피해를 입히며 살아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괴물들을 처단해야 하는가. 모두가 살아남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 보니 결과적으로 괴물로 변절해 버렸다. 괴물들의 모임에 한 때는 정상에 섰던 인물들이 모여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 다 종교적, 이념적 뿌리를 둔 선동가를 팔짱에 끼고 말이다.
"괴물과 싸우는 이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괴물들의 거대한 잔과 그들의 식탁은 '나도 괴물로 살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궁전에 가까운 집과 사치와 향락이 가득해 보이는 풍경에 모두가 정신을 잃고, 자신이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관까지 버리게 한다. 우습지 않은가. 그들을 따르는 도적떼들에게는 종교적, 이념적 목표와 규율을 심어주고, 그들의 내면에는 똑같이 허무주의와 쾌락주의만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너도 사실 이걸 원하잖아' 하고 유혹하는 악마의 속삭임을 눈앞에서 거절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인류 역사를 다 찾아보더라도 그런 인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총명한 인재들과 세상을 제패하는 이들이 뱀의 꼬리에 붙는다. 뱀은 용이 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도 뱀일 뿐. 바뀌는 건 없다.
나는 그들을 찾고 싶었고, 뱀의 머리를 짓밟고 싶었다. 그들 내장에 가득한 사람들의 피가 터져 나오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들 모두와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은 광기의 집단이고, 세뇌당한 피해자들이었다.
나는 황건적들의 마지막을 생각해보곤 한다. 그들이 세력을 얻자 그들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려는 군웅들이 할거했고, 군웅들로 인해 새로운 시대를 맡게 되지만 어쩌면 계속된 싸움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싸움. 끝없이 자라나는 잡초를 모두 뿌리 뽑는다고 자라지 않겠는가. 바람을 타고 온 씨앗에 또다시 자라는 것을.
그래 다 좋다. 그러면 가장 꼭대기만 노린다. 수백수천의 괴물들의 머리가 누구냐. 가장 많은 피를 삼킨 이가 누구냐. 그렇게 나는 그를 쫓기로 결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