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
정상적인 사업자들이 점점 검은돈에 물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바로 기형적인 세금 구조 덕분이다. 한국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자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낮게 둔다. 높은 소득세와 낮은 자산세. 자산이 재분배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사람이 죽을 때이다. 죽고 나면 구간에 따라 절반에 가까운 자산을 떼어가 버리니 자산을 지키기 위한 자들과 빼앗아 가려는 자들 사이에서 절세라는 이름으로 하얀 돈이 검게 되고, 밝은 숫자에서 감춰진 숫자로 바뀌는 것이다.
사업을 시작한 대표들이 처음부터 세금을 아낄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 돈이 점점 벌리다 보면 세금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절세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세무사들 중에 절세 설루션을 제안하는 곳을 찾아다니는데, 이 과정에서 합법적이면서 동시에 법망의 테두리에 있는 빈틈을 노리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애초부터 불법적인 세금 절감 방식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고 감시 수준이 높아지는 상장사 레벨로 가게 된다면 법인 대표들의 월급은 비약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대부분의 자산은 평가자산으로 법인에 묶이게 된다. 결국 법인에 있는 자본을 빼내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나 법인 자산을 대표에게 보내는 과정은 이사회의 결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엄청난 소득세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절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급여 처리를 하지 않고 법인 자금을 회전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돈의 목적지인 수신자에게 도달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왔다.
코스닥, 코스피 상장사에서 자산의 이동은 모두 회계 법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적법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것이 배임이다. 회계 법인은 이렇게 법인 자산을 이동하여 목적지로 도달하게 하기 위해 여러 사업의 문법을 이용해 문서를 만들어주고, 도장을 찍어준다. 우리는 이것을 도장값이라 부른다. 도장 한 번 찍어 주는데 몇백, 몇천, 몇억. 참 돈 벌기 쉽지 않은가. 합법적인 절차로 돈의 이동을 만들어낼 때는 운송 수수료를 지불하고, 그것의 보증인이 회계법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고객이 불법 사업을 영위하거나 소득 출처를 공개할 수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 또는 사용되어야 하는 도착지가 공개될 수 없는 곳이라면 어떨까. 그때부터는 돈의 경로가 끊긴 검은돈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실 검은돈이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추적되지 않는 모든 현금성 흐름을 검은돈이라고 통칭할 수도 있는데, 크게 보면 조카들에게 주는 용돈이나 부모님께 현금으로 드리는 돈도 검은돈의 범주라 볼 수도 있다. 5만 원 10만 원이라면 소명 요구조차 없겠지만, 수천만 원쯤 되는 돈을 용돈으로 드린다면 그때부터는 세금을 피해 가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있었는데 감춘 것이라면 검게 되는 것이다.
2017년 경 ICO가 물밀듯 들어올 때만 해도 재야의 깔린 엄청난 검은돈이 공개 시장인 크립토로 들어오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수많은 개인들의 다단계 투자 자금 명목으로 자산이 들어오고, 송금 과정에서 트레블룰 따위도 없었기에 거래소를 통하면서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제대로 된 감시도 규제도 하지 못했다. 따를 규정이 없었으니 메이저 거래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쉬쉬하며 넘어가는데, 잡 거래소들은 어떠했을까. 그 이상의 일들도 충분히 해줬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두 번째 시나리오가 나타난다. 바로 금융계의 검은 자금이 잡거래소들로 들어가 세탁을 시작한다. 이들의 세탁 패턴은 온체인과 오프체인을 넘나들며 거래 기록을 미친 듯이 만들어 추적을 불가능하게 난독화시킨다. 그것만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주로 자신들이 엄청난 트레이딩 볼륨을 가지고, 펀드 형태로 관리해 주는 겉모습을 띄고 있다.
여의도에서도 급의 차이는 있다. AMC 자산관리회사 설립에는 자산 70억, 상근 자산운용전문인력 보유 여부 등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로 가게 되면 자기 자본 20억으로 기준이 낮아진다. 그렇게 돈 몇 푼에 사람을 채워 자산을 운용한다는 놈들이 결과적으로 싸들고 온 돈 수십억은 거래소의 ICO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개미들 자금과 자신들의 자금을 같이 말아버리고 믹서기 돌리듯 돌린다. 거래소에서 발생하는 기본 수수료도 없이 비공개 채널을 통해서 자전 거래를 진행한다. 원하는 대로 평가 자산을 만들고, 투자자들에게는 덤핑 방지를 위해 전체 자산에서 일부분만 헷징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돈을 잠그고, 높은 수익성이 나타나고 있으니 계속 홀드 한다. 이 과정에서 유사 수신까지 진행하는 이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모두는 공범이 된다. 검은돈으로 만들어진 불법 자금은 거래소를 통해 말도 안 되는 거래량을 만들어내고, 그 거래량과 수많은 숫자 중에서 진짜 거래와 가짜 거래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뤄지는 모든 결과를 시스템을 까보지 않고, 코드를 따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면 이를 막기 위해 그다음에서야 규정이 생겼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모조리 해 먹고 난 이들에게 알아서 치우라고 하고 있으니 그때 한 배를 탄 놈들이 한 두 명이겠는가.
다만 이러한 검은돈이 시장에 문제없이, 세금을 피해 누군가의 계좌로 들어가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기준이 높아져간 탓에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엔 이용자 보호법까지 생겨 그전에 작전 세력들이 하던 놀이터들도 막혀 도망가기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답을 찾겠지만 이것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양쪽 진영 모두에 적과 아군. 선량한 이들과 악인이 섞여있다. 이게 참 우스운 일인데 평범한 사람들이 이 거대한 세탁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자신들의 계좌를 대여해 준다. 대표적인 예로 가수 임창정 씨가 연루된 논란이 된 작전 세력 투자 사건이 있다. 물론 이 케이스는 주식 시장에서 발생한 사건에 해당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한 일이 크립토에 없었을까. 당연히 있어왔고, 재밌게도 그렇게 한 배를 탄 평범한 이들은 처음엔 자신들이 피해자라 주장했지만 가해에 가담한 똑같은 이들이었다.
거시적인 자본 흐름을 볼 때는 규제가 커지면서 많은 해외 자본이 한국으로 들어올 이유가 줄어들게 됐고, 반대로 빠져나갈 여지가 커진다. 한국의 부자 순 유출은 올해 전 세계 4위로 추정된다고 한다.
점점 더 고강도로 AML을 진행하고,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금융 실명제부터 온갖 자본을 감시의 도마 위에 올려두려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도마를 벗어나려고 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이미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변화를 일반적인 직장인이 알겠는가 학생들이 알까. 숨기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모니터링하면서 "응 잘하고 있어." 응원하며 뒤에선 "야 빨리 숨겨." 이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트레블룰이 있어 한국 시장의 폐쇄성과 송금의 검증 단계가 생겨 해외 유입의 어려움도 늘어났고, 이것이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우위인지는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거래량은 시시각각 떨어지고, 떨어진 만큼의 거래량은 해외로 빠져나가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있는 실정인 셈이다.
사람들이 한참 비트코인을 살 때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거래량이 나와 놀랍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은 어떨까? 다른 나라에 밀리는 수준을 넘어 잡 거래소라 불리는 해외 거래소들보다도 밀리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호가창이 박살 나 매수 매도 금액 사이의 공란이 생기는 일이 생긴다. 이게 한 때는 전 세계 최대 거래량을 자랑하던 업비트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 배후에는 그전까지 들어왔던 거대한 검은돈이 있었고, 그 검은돈이 길을 잃었으니 다른 곳을 향해야 하는 법이다. 위의 랭크를 보면 알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잡 거래소들이 올라와있다. 단순 거래량만 보면 다 MM을 하고 있어서 그렇겠구나 싶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업비트는 그 많던 MM도 이제 빠졌구나로 생각할 수 있는 법이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불법 토토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연간 22조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자금의 출처는 다르겠지만 소소하게 직장 생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이 쓴 돈도 토토 자금으로 들어가는 순간 꼬리표가 끊기 힘들어야만 한다. 토사장들은 대포 통장을 통해 자금을 받거나, 가상 카드를 발급받아 해외 계좌로 입금을 받는다. 그렇게 빠져나가고 숨겨진 꼬리표는 현금화의 압박을 받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해외에서 안락하게 사는 것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폼 잡고 성공한 인생인 척을 해야 할 것이다.
논란이 됐던 MZ 조폭들의 자금 출처 중 일부는 불법 토토였다는 사실인 것처럼 이렇게 만들어진 자금은 세탁의 압박을 받고, 돈을 여러 형태로 꼬리표를 붙여주어야 한다. 예전 같았으면 오프라인 매장들 통해서 현금성 매출을 잡거나 현금을 금덩이와 바꾸는 순박한 방법을 사용했겠지만 이제는 거국적으로 하니 이것을 태워줄 거대한 프로젝트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 딱 알 맞았던 수단은 크립토 프로젝트였고, 그러한 자금은 결과적으로 쓰레기 코인들도 비행기를 태워 하늘 높은 곳으로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부자가 된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몇몇은 올릴 거 올리고, 내릴 거 내려서 지금은 바닥을 쓸고 있는 코인들이 태반이다. 거래도 없고, 거래소에서도 퇴출되기 직전인 재단들이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열심히 일했다고 하고, 애썼다고 하고, 남은 돈도 없다고 한다. 사실 그들의 현금성 자산은 털고 나간 것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렇게 모아둔 돈이 어지간한 사람들이 평생 벌 돈보다도 큰돈이고, 그들이 일한답시고 보낸 유흥에 들어간 돈을 생각해 본다면 지독하게도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꼬리가 끊겨버린 돈들은 절대 환수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에 참여한 셀 수 없는 사람들과 어디서부터 진짜고 가짜인지 알 수도 없는 중앙 거래소에서 발생한 거래 내역들. 거기에 더불어 자발적으로 유사수신에 참여한 성실한 일반인들. 피해자라고 고소했다가 자신의 돈을 못 돌려받을뿐더러 동시에 자신도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감추려 하는 성실한 일반인들이 한 트럭을 넘어 수 백 트럭에 쌓여있다. 이들이 벌어간 것은 도대체 누구의 돈일까. 결국 옆 집에 성실하게 일하면서 한 번쯤 코인을 사본 이들일 것이다.
크립토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법인 자금을 뺄 때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도 부동산이다. 법인 자산으로 빌딩 매입을 하거나 사옥을 짓는 과정에서 법인 자산을 곱하기하는 방법도 있다. 법인 자산이 100억이 있다면 그것을 급여로 지급하지 않고, 빌딩을 세워버린다. 그리고 그 빌딩을 세우는 과정에 작업이 들어간다.
물론 이 과정은 대부분은 합법이고, 결과적으로 세금이 비싼 쪽에서 세금이 덜 비싼 평가 자산으로 자산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기에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건설, 건축 분야에서 발생하는 비자금의 흐름을 생각해 본다면 또 다르다. 언제나 재벌 그룹들이 비자금이 필요할 때 곶감 빼먹듯 쓰던 방식이 건설 아니었는가.
바꿔 말하면 그것을 위해 적절한 땅과 적절한 토지 승인이 나와있는 곳이 있다면 참 매력적인 매물인 것이다. 왜?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딱 좋은 매물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대형 건설 사업은 자기 자본은 쥐꼬리만큼 들어가고 대부분은 프로젝트 파이낸스로 들어가는 시대에선 더욱 뻔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PF가 회수가 되지 않으니 이렇게 빙글빙글 돌리던 방법도 막혀버렸으니 참 언짢은 시절이 와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이렇게 경제에 활력을 주던 검은돈의 흐름이 끊기니 그 아래에서 떨어지는 동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어차피 자본가에게는 시간의 문제이다. 반면 그들이 내려주는 낙숫물이 없으면 생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되었으니 누구부터 살려야 하는가. 이것 역시 높은 이들의, 정의감 넘치는 이들의 삶으로 해결될까. 감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의 보스가 배신자라면 그들의 성실함이 결과적으로 악을 돕게 된다. 잠깐 그게 정말로 악일까? 어디서부터 악이지? 시스템이 낳은 악인가? 시스템을 따라 생존하기 위한 전략인가? 이것에 대해 단언할 수 있는 이들이 부럽다. 양면성 속에서 고민할 수 없이 살 수 있는 이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