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여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Oct 06. 2024

밀수업자

2024. 10. 6.

FAD · XXX · Jinsu Park · Dong Hyun Kim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훤칠한 모습에 남성적인 매력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느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싶었다. 테스토스테론을 캐릭터로 표현한다면 이런 사람이려나. 그만큼 원초적인 남성성이 느껴지고, 극단적으로 섹스와 알코올, 온갖 마초적 성향을 상상하는 그것이 바로 그였다. 


그는 아주 재밌는 인생을 살았다. 당연하게도 달건이 시절로 시작해서 지역 시장 상인회나 온갖 불법 사업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처음에는 재밌게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독한 쾌락주의적 삶은 전혀 닮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유튜브 쇼츠 몇 시간 보는 정도로 도파민 중독을 말하는데, 이 사람이 보면 참 웃기는 일일 거였다. 


그가 일평생 해온 일 중 대부분은 밀수였다. 전 세계를 누비며 밀수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애초에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기에 그런 시장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국가를 오고 간 이야기를 수없이 해왔다. 지금도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해양 감시대에 걸리지 않기 위해 써온 방법이나 거대한 배에 수많은 밀수 물품을 반입하는 방법까지 설명해주곤 했다. 


그를 알게 되고 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전과가 수십 범에 이르는 사실상 빨간 줄 그 자체였고, 수십 번도 들어갔다 나온 교도소 생활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담그고 한 번 더 들어갔다 오지" 같은 말은 그에게 있어서 농담 삼아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와 그의 무리들은 전략적으로 강자들을 소위 말해 담그는 방법의 전문가였다. 그들은 약물을 구해오고, 약물을 바탕으로 권력자들도 쓰러뜨리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은 이태원에서 놀고 있을 때 그의 무리들은 나에게도 그런 제안을 했었다. 필요하시면 말만 하라고. 덕분에 나는 이태원에서 얼마나 많은 약물이 우습게도 많이 유통되고 있는지와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밀수업자에게 있어서 밀수 상품은 곧 자신의 경쟁력이 된다. 얼마나 시장에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는 상품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니 말이다. 보따리 상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한 편으로는 범죄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수많은 보따리 상이 지금도 중국 인천행 배를 타고, 짐꾼처럼 거대한 등짐을 메는 모습을 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그것이 여전한 현실이니.


사람들은 권력을 무서워한다. 그것을 서울대 생들은 잘 알고 있어서일까. 많은 서울대 친구들은 회사로 가기보다는 공직 코스를 타서 장관으로 향하는 길로 향한다. 법을 아는 사람들이 법을 무기로 쓸 수 있는 법이고, 돈을 아는 사람들이 돈을 무기로 쓸 수 있는 법이다. 밀수업자는 돈도 권력도 없지만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을 지켜주는 법은 세상이 정한 법이 아닌 폭력과 범죄가 보호해 주는 법이다. 나에게 공격을 가하는 권력자가 있으면 대항하는 방법. 그들의 아킬레스 건을 끊어버리는 방법. 


어찌 보면 강자들에게 이들이 쓰는 전략은 귀찮은 모기가 앵앵 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방충망에 모기장을 쳐두면 어지간해선 들어오지 못할 테니. 조심하면 문제없을 테니. 하지만 우리 돈 많고 천진난만한 재벌 자재 분들의 삶은 심심하다. 그들에게 밀수업자들이 가져다주는 독이 든 주스 정도는 마셔줘야 도파민 농도를 맞출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끼리의 세상을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섬의 연구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