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여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Oct 06. 2024

여론전

2024. 10. 6.


지독하게도 많다. 중국의 박살 난 경제만큼이나 손쉽게 댓글 부대를 산더미처럼 저렴하게 구하는 게 가능해졌다. 사실 중국만의 웃기는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저명한 집단에서 댓글 부대 사고팔고, 그것을 직장이라며 다니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벌써 몇 년째 이 분야에 대해 글도 쓰고, 영상도 올리고, 온라인에 올라오는 태반의 여론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다. 처음 이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때만 해도 얼마나 이 바닥이 썩어 들어갔는지 알지 못했다. 간첩과 비밀경찰, 여론전 담당 태스크 포스, 구인 구직을 하는 시스템, 그들이 소통하고 지령을 전달하는 방식까지도 사실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구조를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들도 결국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고, 사람이 일을 할 때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니 말이다.


그뿐인가.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수십 수백 개가 넘는 전국의 맘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는 시스템이 있으니 그 덕분에 사람들은 이제 폐쇄적 커뮤니티 내에서도 조작된 여론 형성 자료를 마주한다. 이것이 이들의 전략 중 하나다. 지역 맘카페와 같이 가입을 할 때 한 곳 또는 그 지역의 몇 군대만 가입하는 특징적 커뮤니티에 겹치지 않게 선동 자료를 업로드한다. 


그 원류를 찾아보면 결국 누구겠는가? 문제의 업스트림을 추적하고 이러한 여론전을 방어하려면 원천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밑에 졸개들과 그들에게 일감을 받아 돈 몇 백 원에 댓글이나 쓰고 있는 알바들을 한 트럭을 잡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유통 알바들이 아닌 유통 책임과 이 거래의 흐름을 알고 있는 핵심 인물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빨대"를 꼽아 뒀다는 점이다. 어디에 꽂혀있는지도 모르는 수십, 수백 개의 빨대가 감시 기관을 역으로 모니터링하는 방법으로 쓰인다. 이거 참 외통수 아닌가. 도대체 누가 배신자인지 조직에서 어떻게 검열할 것인가. 검열 기관이 힘써야 하는 것은 대중에 대한 검열이 아닌 자신들에 대한 검열인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주적인 북한을 제외하고는 그 외에 활동에 대해서 막지 못하고 있다. 여론전을 하는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놀이터에 가깝다. 원하는 대로 주무르고 갈라 치기 하면 그것에 맞게 대중들이 휘리릭 움직인다. 영상이나 콘텐츠를 끝까지 보고 댓글을 보지 않고, 댓글부터 보는 시대가 됐으니 콘텐츠를 아무리 장엄하게 쓴다 한들 사람들이 보겠는가.


내가 댓글 기능을 막고 게시글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같다. 사람들은 도대체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고, 댓글을 통해 사람들의 리액션을 보고, 생각을 레버리징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기보다는 타인의 생각과 비판을 인용해서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그렇기에 댓글은 쓸모가 없다. 논의하고 싶다면 당사자와 직접 논의하거나 직접 콘텐츠를 올리면 된다. 


다행인 점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자금의 규모가 초라해졌기 때문에 이전처럼 극단적으로 많은 양의 여론 선동은 과거보다는 덜해진 듯하다. 문제는 적게 들어오는 그 돈이라도 급하기에 살아남은 이들은 더 극단적으로 먹고 산다는 이유로 선동 자료를 배포한다. 더 많은 채널을 통해서 더 교묘하게 할 수 있다면서 자신을 세일즈 한다. 그것에 선동되어 X와 커뮤니티에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면서 선동 자료를 2차, 3차 가공하는 슬픈 인생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선동당한 이들의 감정을 파먹고 그들의 삶을 파멸적으로 이끈다. 선동 자료에 장시간 노출된 이들이 커뮤니티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보면 충격적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눈뜨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민족 투사에 빙의하여 싸운다. 대표적인 커뮤니티에서 안타깝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역으로 리스트를 뽑는 것? 어렵지도 않다. 


한 번은 참 안타까운 여성 분을 알게 된 적이 있다. 이 분은 선동된 자료에 완전히 오염되어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는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하루종일 모두와 전쟁을 펼치고 있었다. 스피커가 약하니 X에 더 극단적이고, 더 편파적인 자료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일용직 생활도 견디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야간에 하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할지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 선동된 자료를 바탕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 삶을 내다 버리는 젊은 인생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외부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마음이 약하고, 의지할 곳이 필요한 이들이 모이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세상이고, 현실 세계는 찬 바람이 부는 괴로운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이들이 가장 많은 곳도 온라인 세계이고,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으로 텍스트를 분해할 수 없다면 잘못된 이념에 사로 잡힐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나는 선동된 이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지르는 소리와 분노에 찬 함성은 어찌 보면 분노를 배설할 곳이 필요했기에 생긴 필연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돈벌이와 목적에 이용하는 이들과 그것으로 국가에 직접적 피해를 끼치는 이들이 있다면 견제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결국 표를 얻는 싸움이고 표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집안싸움에 외부인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수업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