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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08. 2024

흉터와 정보

2024. 10. 8.

온갖 일들을 조사하고 도우면서 나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선량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시대의식이 없는 기자들이 많았다. 돈 몇 푼에 어떤 기사든 찍어내는 광고 제작소와 거래는 하지 않는다. 내가 소통하는 기자는 희생을 한 기록이 있는 기자들 뿐이다. 범죄자들에게 위협을 받고, 때로는 위해를 당하면서도 언론의 신념을 지켜낸 이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을 증명했고, 나는 그렇게 증명한 이들만 신뢰한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싸움에는 희생이 따른다. 운동을 하면 굳은살이 배기는 것처럼, 신념을 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목숨의 위협이 따라온다. 범죄자를 적으로 돌리는 이들은 범죄자들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으로 두는 것이다. 사람마다 적의 대상과 목적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협박을 해서 돈을 갈취한다. 내가 혐오했던 사이버 렉카들이 그렇게 돈을 벌었던 것이고, 그랬기에 소통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고결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정보에 속한 이들이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취재하는 이들이건. 중요한 건 그들의 신념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조직의 머리의 신념이다. 아무리 기자가 취재를 잘한다고 해도 윗선에서 막고, 편집되고, 좌천되고, 낙인찍어버리면 끝이다. 조직에 속한 이들은 조직에서 주는 돈에 묶여있기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조직 전체가 희생을 각오한 미친 조직이 아니라면 나는 그런 이들과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사랑하면 희생하게 된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자신이 먹을 것보다도 아이를 먹이고, 자신의 입을 것 보다도 아이를 입힌다.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랑이 향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이는 희생의 증거가 없다. 희생한 적이 없고, 배려한 적이 없고, 내가 손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증거 없는 사랑은 믿을 수 없고, 증거 없는 신념도 믿을 수 없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이는 강해져야 하고, 싸움 끝에는 언제나 흉터가 남는다.


사람들은 곱게 자라온 이들은 왕자와 공주 같다며 예뻐하고, 귀하게 여긴다. 내가 왕국의 시민이라면 상처 하나 없는 왕자보다 전쟁터에서 화살 비를 맞으며 싸우고 돌아온 흉터가 가득한 왕자를 원할 것이다. 함께 싸운 이들이 왕으로 추대하느냐, 아니면 왕으로 추대되기 위해 가꿔졌느냐는 다른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념도 그렇다. 뽀얀 손으로 돈을 위해서 살면서 신념을 말하지 말라. 결혼의 목적이 사랑이 아닌 배우자의 돈이나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위상과 같은 거라면, 우리는 그들을 쇼윈도 부부 정도로 부르는 것처럼 신념도 쇼윈도로 가져와 사용하려는 이들이 있다. 역겨운 이들이다.


살해 협박을 당하고, 의문의 행인에게 공격을 당하고, 집 주소가 추적당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대신 협박을 당하고, "감옥에서 출소하면 너부터 죽이고 다시 들어가겠다"는 범죄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뿐인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들에게 가장 큰 무기를 가지고 있을 때에 그들이 가장 큰 위해를 가한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보는 그런 의미를 가진다. 정보는 칼이고, 어린애처럼 "나도 칼 줘보세요 잡아볼래요" 하는 애새끼 같은 소리는 하지 말기를. 칼을 잡는 것과 칼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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