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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05. 2024

작은 섬의 연구소

2024. 10. 5.

그곳은 외딴섬이었다.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4~5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이런저런 손님들이 있었고, 어디서 채용했는지 모르는 아름다운 직원들도 많았다. 주인은 꽤 유쾌한 사람이었다. 손님이라 부르기 애매하지만 손님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정말로 자유를 주었다. 손님들은 그곳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는데, 그래서일까 그곳은 호텔이라기보다는 연구실에 가까웠다. 손님들은 그곳에서 연구를 하면서 몇몇은 온라인으로 비즈니스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그렇게 지냈으니 말이다.


주인은 꽤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머리를 써서 일할 사람과 몸을 써서 일할 사람을 금방 나눌 수 있었다.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서빙 등으로 일하는 이들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일하게 된 것이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담아 영상을 찍어두었고, 비디오 플레이어를 통해 실행시켜 주었다. 비디오라니. 내가 비디오로 본 것은 10살? 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쯤 본 알라딘 만화가 전부였었을 것이다. 그때는 호환마마가 무섭다는 경고 메시지를 항상 봤던 것 같은데. 


그의 비디오는 서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압박감 속에서 살면서 교육을 받고, 진정한 자아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산다고 했다. 반면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었고, 비용도 내지 않아도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 머문 시간에 대해서 만큼은 값을 내야 했다. 후불제 시스템인 것이다. 그 안에서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이 시스템은 무척이나 기괴했지만 그 안에서 지내는 이들의 모습은 억압 속에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낙관스럽다고 해야 할까. 후불제로 생긴 빚을 청산하기 위해 얼굴이 반반한 이들은 호텔 안에서 온갖 일을 하는 것 같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연구소 같은 장비들로 뭔가를 골똘히 연구하고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그곳도 역시 현실하고 똑같은 곳 아닐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 지금은 비용을 내지 않아도 언젠가 내야 하고, 낼 수 없다면 낼 때까지 갇혀있어야 한다면 똑같은 것 아닐까. 오히려 더 무서운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그랬다. 여유가 있는 이들은 굳이 이곳에 와서 위험한 게임을 할 필요는 없었다. 호텔처럼 비용을 내고, 적당히 지내다 나가면 됐다. 반면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이곳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 되었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후불로라도 살 수 있는 몇 년의 시간이 소중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이 유료라는 것을 알기에, 후불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안에서도 돈을 갚지 않고 도망가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재밌게도 이 주인은 딱히 그것에 제약을 두지도 않는 듯했다. 오히려 가둬두고 감시하고 있다면 생길 수 있는 분위기가 싫어서일까.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애초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들에게 후불로 받겠다고 엄포는 했지만 사실 그들이 후불로 갚든 말든 이 사람에게는 이곳이 취미 생활을 하는 곳 정도로 밖에 안 보였다. 일종의 재능 기부인 셈이다. 도망가든지 말든지 싶은 분위기로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강인해 보이는 얼굴을 봤을 때 이것은 오롯이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재밌게도 그곳에서 성공을 쟁취한 이들은 딱히 그곳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넉넉한 돈이 생기고 이곳을 떠나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이 왔음에도 종종 다시 돌아와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창조된 수많은 수익모델들을 통해서 그의 작은 섬의 연구소는 운영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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