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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Nov 18. 2024

비밀 결사

2024. 11. 18.

Dissolved Girl · Massive Attack · Sarah Jay Hawley


여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들이 모여있다. 각 분야의 정점에 선 남자 20명이 한 달쯤 시간을 내서 별장에 모였다. 그러면 무엇을 할까. 모든 걸 가진 남자들이기에 사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를 불러 성욕을 해소할 수도 남자를 불러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할까. 현존하는 온갖 향정신성 의약품을 비롯해 다양한 제조법으로 완성된 기분이 좋아지는 약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술이 부족할까? 술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지구상의 모든 포도나무의 뿌리를 뽑을 듯 마실 것이다. 아니 마실 필요도 없이 그걸 부어버릴 수도, 욕조에 포도주를 채워 목욕을 하던 우유를 부어 목욕을 하던 무엇이든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꼭 남자뿐이 아니어도 좋다. 그런 사람들이 며칠이고 쾌락의 낙원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 버린다면 어떨까. 더 이상 쾌락을 추구해도 주어짤 쾌락이 남지 않았을 때면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가진 힘과 자신이 인생을 걸쳐 성공해내고 싶은 거대한 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 조 단위 자본을 돌리는 사람들에게도 못했던 일들도 그들이 힘을 더하면 해낼 가능성이 생긴다. 바다 위에 인공 섬을 만드는 일도,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타워를 짓는 것도, 일반인들을 평생소원이 될 만큼 큰 크루즈를 개인용으로 소유하는 것도. 모조리 가능한 상황이 온 것이다. 지구라는 곳에서,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모든 치트키를 다 완성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모임을 공개할 수가 없다. 그들이 엉망진창으로 놀고, 서로의 치부를 보이고, 날 것 그대로를 드러냈으니 어떻게 이런 모임을 공개할 수 있겠는가. 결코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을 서로에게 만들고, 그 비밀을 바탕으로 결속을 만든다. 서로의 약점을 손에 쥐고,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확보되고 나서야 신뢰가 쌓인다. 그렇게 비밀 결사가 만들어진다. 별 것도 아니다. 그저 술에 진창 취하고, 온갖 쾌락과 섹스와 마약이 뒤범벅이 되고 나서야, 몸 안에 모든 정액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거대한 계획을 만들고 실행한다. 


그러나 정보는 센다. 아무리 그들의 결속이 단단하다고 스스로 떠들어도 그들이 가지고 놀던 사람들의 입까지 단속할 수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몰래몰래 찍어둔 비디오가 난무하고, 꼭대기까지 간 사람들이 서로를 처음부터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아무리 거대한 권력의 집단이라도 수도꼭지에서 방울이 떨어지듯, 정보가 한 방울 한 방울 새어나간다. 그 정보는 처음엔 카더라 정도의 이야기로 흘러 다니고, 카더라 같은 이야기는 어느덧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고, 선전지라는 이름은 비밀리에 수사가 이뤄지고, 정보를 무기화하여 파는 정보상들의 손아귀에서 편집되고 정교하게 손질된다. 그 어떤 정보도 100% 날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절대 명제다. 모든 정보엔 거쳐간 사람만큼의 손상과 편집이 발생할 수 있다. 


결사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하지만 결사의 종말 역시 허무하다.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비밀이 조금이라도 깨어지는 순간, 단단해 보이는 도자기가 일순간 부서지는 것처럼 조각조각 깨어진다. 완전히 박살 난 신뢰와 박살 난 신뢰만큼의 날 선 감정과 정보라는 무기. 서로에게 쥐어준 약점은 평생을 따라다닐 약점이 되어 꼬리로 남고, 그것을 잘라내기 위해 권력의 힘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아하... 안타깝다. 그렇게 정보는 또다시 주인을 잘못 만나 권력자의 손으로 흘러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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