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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ell's Kitchen 관극 후기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가 있지만, 현실적인 균형을 잘 맞춘 작품

by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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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자기가 어디에 속해야 할지 방황할 때, 그를 잡아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안에 있는 빛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가족의 여행으로 뉴욕시티에 한 일주일 지냈다. 하루는 가족 전체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자는 선택을 했고, 무난한 <알라딘>을 선택했다. 반면에 나는 알라딘만 보고 가면 꽤나 많은 후회가 생길 거 같아, 다른 뮤지컬을 보기로 결정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주인공이 피아노 위에 당당히 서있는 포스터가 눈에 잡혔고, 그게 Hell's Kitchen이었다.


나는 2022년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Hell's Kitchen은 세련된 식당들이 있는 지역의 이미지가 있었다. 이 뮤지컬의 배경을 듣고 보니, 전혀 매치가 안되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알리)의 모델이었던 알리샤 키스는 그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학생 때도 권총을 휴대했다고 하니, 그때의 뉴욕과 지금의 뉴욕은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상태로 뮤지컬을 관극 했다. 더불어 나는 뮤지컬을 다 보기 전까지 알리샤 키스의 대표곡이 The Empire State of Mind인지도 모르고 관극 했다. 그렇지만 들으면서 아 이 노래들을 이 사람이 만들었구나 하면서 감탄하며 들었다.


알리는 저지와 함께 Hell's Kitchen의 예술가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알리의 아빠 데이비스는 음악가로 어렸을 때부터 집에 나와, 저지는 혼자 알리를 키워왔다. 알리는 17살이 되기까지 많은 방황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울리는 친구들은 자기와 피부색이 같은 흑인이지만,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는 엄마가 사용하는 수준이 있는 백인영어억양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dog'이란 단어를 쓰긴 하지만 어색한 용법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거리에서 간이 드럼을 치는 멋진 남자 너크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저지는 자신이 알리랑 같은 나이에 음악가 데이비스와 사귀고 아이를 가진 후, 자신의 삶이 없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자식만큼은 자기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며, 아파트 밖에서의 활동을 철저히 제한한다.


그러나 아파트의 엘레베이터를 오가면서, 헬스키친 거리를 나가면서 느끼는 음악으로부터 느끼는 자유를 갈망했던 알리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스승 라이자 제인을 만나며 자신 안에 있는 음악에 대한 동경을 깨우게 된다. 알리는 원하던 남자와도 연애를 하고, 음악을 하며 자신의 감성을 키우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을 느낀다. 여기서 알리샤 키스의 명곡 <Girl On Fire>이 나오면서 1부 극의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그 행복은 엄마에게 너크와 집 데이트하는 것을 들킴으로써 모든 것이 무너진다. 엄마는 너크를 경찰에 신고하고, 알리를 지키기 위해 극도의 통제를 시작한다.


어머니 저지는 알리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한 것이라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선택이 정당하다는 걸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노래는 어디선가 멜로디는 좋으나, 노래 가사는 아무 알맹이도 없는 로맨스 노래로 느껴진다 (Gramercy Park) 그리고 알리에게 아버지는 도움이 크게 되지도 않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저지는 그때의 데이비스의 모습이 멋져서 아이를 낳았지만, 음악의 자유로움이라는 이름하에 자기의 욕망만 생각하며 움직이는 데이비스의 무책임감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에 대한 분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자식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는 마음에 아이를 극도로 통제하며 갈등이 극화된다.


알리는 모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라이자 제인은 "너의 분노는 진짜야. 너의 분노는 얻어진 거야. 그러나 나는 절대로 네가 그 분노에 지게 만들지 않게 할 거야"라고 하면서 이끌며, 또 다른 알리샤 키스의 명곡 <Perfect Way to Die>가 나온다. 더불어 그 노래를 통해 라이자 제인은 그 개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그 원동력으로 너의 음악을 써내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선조들이 이끌어온 음악의 소울을 이끌어야 한다는 큰 가르침을 선사한다. 알리는 모든 방황을 그대로 버텨나가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깨닫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라이자 제인이 병환으로 사망하고, 알리는 그 슬픔을 원동력으로 발전하여 Hallelujah/Like Water 넘버부터 시작하여, 알리샤 키스의 또 다른 명곡 <Empire State of Mind>을 당당하게 부르며 극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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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지컬은 전형적인 알리샤 키스의 히트곡들을 모아놓은 주크박스 뮤지컬로 보이지만, 이 뮤지컬은 다른 주크박스 뮤지컬과 달리 곡의 배치가 매우 자연스럽다. 일반 대사랑 곡이 이질적이지 않다는 게 좋았다. 뮤지컬의 장르특성상 대사와 노래의 간극을 메우기가 쉽지가 않은데, 이 뮤지컬은 성공적으로 이 간극을 잘 메운다. 아니, 그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R&B 또는 소울을 바탕으로 만들어서 덜 어색하게 느껴진 건가? 극의 완벽함을 위해 새롭게 작곡도 한 노래가 있다고 들었다.


1부는 알리, 너크, 저지의 인간상이 꽤나 입체적으로 잘 묘사가 되었고, 데이비스는 저런 사람이 있지 정도로 넘어간 정도로 생각했지만, 모든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극이었다. 다만 2부는 알리샤 키스의 명곡을 모두 쏟아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1부까지 잘 형성된 주제의식이 급속도로 풀리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이 뮤지컬은 1부만 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뮤지컬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해피엔딩 결말로 가지만, 그 결말로 가기까지의 서사에서 충분히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이 뮤지컬에서 내가 또 감탄한 부분은 무대의 활용이었다. 무대의 바닥을 보면, 뉴욕 맨해튼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 지도 위로 모든 무대장치가 움직인다. 극이 강렬한 힙합과 팝핀댄스로 이루어져있다 보니 무대전환이 빨라 고전적인 방법보다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대장치를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동선을 뉴욕 맨해튼 지도로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생각을 해보면, 알리가 그 지도 위에 서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알리의 무대는 맨해튼 전체라는 것을 상징하고 싶었을까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모습을 연출하며, 공간의 수직이동을 뒤에 스크린을 이용해 잘 표현하고, 다양한 장소로 이동하며, 실제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이 잘 연출해 낸 것도 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왔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대나 장치나, 노래가 좋다고 그 작품이 어떤 사람의 마음에 가닿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적어도 이 작품은 내 개인 경험 때문에 1부가 끝난 후에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인터미션을 보냈다.


나는 수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석사 지도교수님은 "언제까지 아인처럼 살 거야"라는 한 마디로 나를 붙잡았다. 그분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밑바닥부터 의심하게 만들었고, 내가 그간 만들었던 허술한 둥지를 부수고, 새로운 둥지를 만들게 도와주었던, 나에게는 라이자 제인 같은 존재였다. 1막이 끝나자, 석사 지도교수님이 떠올랐다.


현재 시대는 아이러니하게 누구를 이끌어줄 어른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젊어 보이고 싶은 노력만 있을 뿐, 어떻게 우리의 뒤를 이끌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정신이 이제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진지한 가치를 말하면, 진지충이라는 말로 그 생각을 억압하는 사회적 선택압력에 있는 시대이며, 거시적인 프레임에만 중독되어 세밀한 가치가 존중받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순간의 자극에 이끌려 본질적인 것을 도외시하는 21세기에 대해 제작진들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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