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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워싱턴, 지금 보는 워싱턴

by Will

3년 전에 워싱턴에 처음 왔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워싱턴에 왔었다.


그때는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이 많다는 것만 알았을 뿐, 유명한 기념물이 있다는 것만 보고, 나는 여기에 왔다는 사진만 찍는 사람이었다. 영어가 능숙하지도 않았고,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하던 수학외에는 다른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질 힘이 없었다. 미술관에 돌아다녔을 때, 유명한 고흐의 작품, 그리고 모네의 작품을 보긴 했으나, 이 작품이 왜 사람들에게 특히 미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림인지는 잘 이해하진 못했다.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된 지라, 수학 외에 가지고 있던 질문을 던지는 힘이 많이 제거된 면도 있었을 거고, 해외생활에 대한 걱정도 있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왜 이런 것에 끌리는지 이유는 몰랐다.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주변에서는 예술작품을 그냥 느끼라고만 할 뿐, 나에겐 도움되는 건 없었다.


올해 가족이랑 워싱턴에 가는 여행계획을 세울 때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기에 오는게 맞을까?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좋아하는 곳이지만, 가족이 좋아할만한 곳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갔을 때, 나는 그 곳에 있는 작가들이나 전시의도를 생각하며 차분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가족들은 내가 그 공간에 있었다라는 것에 만족하는 여행스타일이다. 그런 면에서 도시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면서도 언어문제 등으로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백악관이나 링컨기념관 구경 외에는 어느정도로 만족할지 예상이 안 갔다.


과거에 찍은 사진들을 한번 보았다. 내가 워싱턴 DC를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가 국립미술관이었다. 나는 뭔가 눈길이 가는 작품들이 있으면, 사진으로 내가 보는 관점으로 찍어서 저장한다. 무엇인가 느낀것이 있으나, 아직 형상화가 안 되었을 때, 사진을 찍는게 습관이다.


한 3년전에 고흐의 자화상부터 시작해서 몇 가지 작품을 찍었던 것을 보면, 저렇게 왜 아지랑이 같이 묘사를 한 건지, 고흐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기에 그림을 그려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붙잡아 준 사람은 동생 테오밖에 없다는게 안타까웠다.


그때 사진을 찍은 걸 보면, 르누아르가 그린 색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지난 번 방문에서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향했다. 링컨기념관, 워싱턴기념비, 그리고 6.25 메모리얼 파크까지. 링컨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분수대가 있었다. 3년 전에는 분수대가 있구나 라고만 보고 넘겼겠지만, 그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조형물에 시선이 머물렀다. 원형으로 둘러싸인 곳에, 양 옆에 힘찬 두 물줄기가 있고, 가운데에 분수를 바라볼 수 밖에 없게 의도한 느낌이었다. 알고보니 한 쪽은 대서양, 한 쪽은 태평양을 나타낸 것이었고, 그 둘러싸인 곳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모든 주와 부속 섬들을 다 기린 것이었다. 왜 분수로 이 추모공간을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분수 덕분인지 시원한 느낌도 있을 뿐더러, 사람들의 대화가 분수의 소리에 묻힌다는 느낌이 있었다. 아마도 조용하게 묵상할 수 있게 돕게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었다.


그 다음 링컨기념관으로 걸어가는 길, 이 커다란 호수가 궁금했다. 영화에서 매번 본 장소이고, 마틴 루터킹의 연설이 있던 그 장소였다. 왜 이렇게 물을 담아놓고 큰 길로 남겨놓았을까? Reflecting Pool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여러 성찰을 해보도록 한 길이었던 것 같다. 멀리서 링컨 기념관이 비쳤고, 맞은 편에서 바라보니 워싱턴 기념탑이 물에 비쳤다.


미국에서 사랑받는 대통령을 꼽는다면, 하나는 워싱턴이고, 하나는 링컨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미국을 독립시킨 독립전쟁 영웅이면서, 권력의 정점에서 자기 스스로 물러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인 워싱턴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고, 링컨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분열이 된 그 시점에서 하나의 미국을 위해 노력하고, 인권에 대한 선구적인 시선이 있었기에 존경받는 인물인 것 같았다. 링컨에 대해서 노예제 관련해서는 음해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사에 따르면 충분히 노예제에 대한 부당함에 대한 인식은 확실했던 것 같다.


정작 링컨 기념관에 들어가보니 노예제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서 의아했었다.

링컨기념관이다. 그리스 신전처럼 만들어진게 의아했으나, 무엇인가 권위를 보이려고 이렇게 디자인한 것 같았다. 기둥 위에는 미국의 주들이 적혀있었는데, 무엇인가 링컨의 업적이 이 나라를 있게 만든 것을 묘사하려고 이렇게 기념관을 만들었을까 싶었다.


들어가보니, 링컨이 "연방을 구해낸 사람"이라는 말로 기념을 남긴걸 봤다. 양 옆에는 링컨의 연설문이 있었는데, 그 유명한 노예해방문이 아닌 다른 연설문인게 신기했었다. 무엇을 의도했던 것일까 생각을 해보면, 이 나라의 통합에 더 큰 의의를 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오고 보니 정말 신기했던 건, 이 reflecting pool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이 나라를 이루는 두 근간을 묘사하고 싶었던 걸까?


6.25 기념공원에 걸어갔다. 이 시선으로 바라보니, 자유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군인들이라는 걸 느꼈다.

옆에 큰 벽은 38선을 의미한다고 하던데, 보면서 지금과 같은 갈등의 시대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랑 걸어가면서 이런 것 하나하나 다 음미하면서 천천히 다니고 싶었지만, 3년을 미국에 살면서 시선이 내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다. 과거에는 나도 명소에 가면 사진찍기에 일수였지만, 이런 공공예술을 보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닿게 하고 싶은건지 생각을 계속하면서 걸었다.


뉴스에는 희망찬 이야기보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더 많고, 지금 살아가는 나라에서 내가 어떻게 있을 수 있을지 걱정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학생을 잘 가르치고, 연구자로서 내가 속해있는 수학 공동체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하고, 그리고 뉴스와 예술작품을 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 포근하면서 날카로운 마음을 갖도록 갈고 닦는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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