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하는 나로서 느꼈던 감상
1년 반 전에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보스턴에서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피아노 곡을 들은 이후로 주기적으로 보스턴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클래식 음악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아는 곡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성진이 라벨을 쳤을 때도 어떤 곡을 쳤는지도 잘 몰랐고, 곡을 다 친 이후에 찾아보고나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란 노래를 알게 될 정도로 클래식을 잘 아는건 아니다. 다만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공연은 가끔 공부할 때 노동요로서 듣는 정도랄까? 그정도라고 해야겠다.
이번에는 임윤찬이 어떤 곡을 칠지를 살펴보니, 정말 특이해서 이 피아니스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왜냐하면 첫 곡은 한국인 작곡가가 쓴 최신 클래식 곡이었고, 두 번째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들이었다. 무엇인가 이젠 충분한 명성은 얻었으니, 내 뜻을 펼칠 수 있다는 포부도 느꼈다랄까. 첫 곡을 쓴 한국인 작곡가 이한우리는 임윤찬이 아끼는 후배중 하나로 한예종에서 같이 공부했었던 작곡가였고, 임윤찬을 위해 작곡을 한 곡이라고 했었다. 반면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미 300년 전에 바흐가 작곡한 곡이었으니, 그 시대의 대조를 보여주려고 했던걸까 싶었었다.
임윤찬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내 마음속의 빅뱅이다"라 하고,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킬 만큼 깊은 의미의 곡이라고 했었다.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그걸 느끼고 싶었다.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는 많지 않아서, 유명한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어떻게든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려고 했지만, 어느정도 시점부터는 녹음의 질이 좋지 않아서인지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듣다 말았다. 다만 처음의 아리아에서 지속적으로 3의 배수만큼 변화를 하며, 마지막에 다시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온다는 배경정도만 익히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 2번은 노다메 칸타빌레 때문에 알게 된 곡이고 제일 좋아하는 낭만적인 곡이라 여러번 들었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 곡은 무엇에서 찾아야할 지 감을 잡진 못했다. 초등학교때 쳤던 체르니 30 같이 무엇인가 반복은 느껴지는데 이걸 어떤 묘미로 듣고, 사람들이 지금까지 칭송하는 명곡으로 남았는지를 알긴 어려웠다.
첫 곡으로 자기가 아끼는 후배의 곡을 연주했다. 이 곡은 내가 그간 많이 들어온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의 곡이랑 달리 뭔가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는 연주들이 많았다. 뭔가 복잡한 현대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곡으로 느껴졌었다. 경쾌함은 없고, 조금만 잘못하면 모든게 무너질 것 같은 마음상태를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곡을 듣고 바로 그 다음에 골드베르크의 규칙적인 곡을 들으니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완벽한 질서와 절제된 구조로 만들어진 곡으로 알려진 곡이니, 무엇인가 이걸 통해서 임윤찬이 자기의 생각을 피아노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골드베르크의 변주곡은 간단한 아리아 하나로 계속 유사성과 함께, 곡이 다이나믹하게 바뀌다가도 침울해지고, 여러 변화가 있었다. 굴드의 골드베르크와 달리, 현장감 때문만은 아니고, 내가 그간 들었던 베토벤이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감성을 느꼈었다. 규칙적인 구조는 살아있지만, 자기만의 감성으로 그 구조에 새로운 살을 덧붙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30개의 곡을 스치면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그 끝에 마지막에 다시 원곡과 유사한 느낌의 곡으로 마무리를 들었을때, 나는 이 곡의 끝이 왔구나는 걸 느꼈고, 무엇인가 거기서 희망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 인생사는 여러 기쁨과 슬픔도 가득하지만, 그걸 초월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아마도 그 간단한 선율에서 시작되어서 복잡한 마음을 거쳐, 다시 간단한 선율로 돌아간다는 면에서, 처음의 시작은 약소하지만 큰 우주로 발전한 '빅뱅'처럼 이 음악이 자기한테는 그러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고,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음악세계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임윤찬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인지 곱씹어보다보니 어느덧 내가 근래 연구하고 있는 문제를 발표하던 순간이 생각났다. 3년 전에 처음으로 이 학교에 왔을때 들었던 수학문제가 있었다. 다공성 매질에 있는 유체의 경계면을 다루는 문제였다. 이 주제에 대해 우리학교에 와서 많은 연구자들이 발표도 했었고, 내 지도교수는 최근에 이쪽 주제로 중요한 문제를 하나 해결했었다. 이 문제가 적어도 나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한 두 어가지였다. 원 문제는 유체의 속도장, 압력, 경계면의 발전까지 다 고려해야 했지만, 아주 독특한 대칭성 덕분에 경계면의 발전만 연구하면, 모든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고, 그 경계면은 열 방정식처럼 일종의 확산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간 인류가 150년간 만들어왔던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경계면은 좋은 움직임만 보일것 같지만, 비선형항이 너무 복잡해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다공성 유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직관이 통할리가 없다. 다공성 유체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체의 움직임도 있으니, 무엇이든 직관적이지 않은게 당연하다.
나는 이런 효과는 표면장력을 고려하지 않은 수학기술의 한계때문에 그러할거라 생각했고, 표면장력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이상한 해는 없앨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수학적으로 그걸 보이는 건 지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학의 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한 두어달 만져보고 깨달았다. 관점을 바꿔보니,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된 문제가 너무 많았다. 표면장력이 없다면, 열방정식에서 쓸 수 있는 고전적인 기법들을 쓸 수 있지만, 표면장력을 고려하는 순간, 고전적인 방법은 적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표면장력이 있음에도 대역적 해가 존재하는지 아직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 황당했는지라, 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많지 않았지만, 의외의 다른 관점으로 당연히 쓸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 고전적인 방법론을 사용할 수 있는 관점을 다른 논문들을 통해 배웠고, 그걸 지도교수와 바탕으로 여러 토론을 한 끝에, 처음에 보이고 싶었던 목표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알아내고 싶은 답은 찾아냈다는 것에 기뻤다.
나는 발표를 구성할때, 왜 이 문제가 나의 관심을 끌었는지를 설명하고, 이전에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것을 해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앞에 먼저 그 길을 걸어온 덕분에 나는 이런 문제를 생각했고, 그 문제를 풀기 어려웠던 난관들을 하나씩 설명하고, 그 난관들을 어떤 아이디어로 해결했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그 아이디어를 설명할때 나는 기쁨을 내뿜는다. 내가 잘났다는것이 아니라, 앞에 그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한 그 여정, 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했을 때 앞에 앉아있던, 많은 수학문제를 풀어오고, 학생들을 지도하셨던 원로들이 흐뭇한 모습으로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줬을 때 기뻤었다. 그때 발표했던건 내가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내가 존경하는 원로들이 진지하게 들어줬을때 내가 연구한 것이 이분들에게 꽤나 가닿았던 것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어제 임윤찬의 공연을 보고 돌아온 다음 날 지도교수와 그간 해결한 것에 대해서 토론하고,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부분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다 해결되었고, 이제 하지 못한 것을 더 생각해보려고 내가 생각해봤던 걸 화이트보드에 던졌다. 이런 관점으로 돌리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던졌었지만, 여러 관점으로 볼 때 이 문제를 추상화해서 해결하는 건 매우 어려울 거라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세미나의 막바지에 정말 이것이 안되는 걸까 라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고, 지도교수는 근본적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으로 다시 문제를 바라보는 걸 알려줬다. 그리고 잠시의 토론끝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관점을 발견했고, 원하는 결과의 80%까지 다 보일 수 있어 보였다. 물론 계산을 체크하는 건 내 몫이지만, 희망적이다.
어쩌다 임윤찬으로 시작해서, 이 문제로 돌아오는 글을 썼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생각이 그렇게 흘러갔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의 세계를 끝까지 탐구하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의 곡을 들어서 더 자극이 된 걸까? 앞으로가 기대되는 피아니스트였다. 나도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문제를 잘 해결해내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