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바라보는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이번에 본 연극은 1970년대 오하이오를 배경으로 한 연극인 "Liberation"이며, 여성 참정권을 목표로 했던 제1차 페미니즘 운동 이후,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여성의 지위 해방을 다룬 제2차 물결을 배경으로 한다.
리지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고, 무엇인가 진이 빠지고, 허탈한 느낌이 있던 차였다. 어머니가 돌아간 후,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가 과거 오하이오에서 CR 운동을 조직하고 페미니즘을 전파했던 '혁명가'였음을 알게 된다. 리지는 40년간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과 과거의 급진적인 발자취 사이에서 당황하며, 왜 엄마는 이런 모습을 감췄는지 알고 싶어서 과거를 상상해 보는 극이다.
리지(엄마역으로 1인 2역이며 같은 이름을 쓴다)를 비롯해서 총 7명이 등장한다. 결혼생활을 30년 이상 한 마지, 시내에서 직장인으로 활동하고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도라,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뉴욕에서 오하이오로 돌아온 흑인 지식인(이 극에서 인종이 꽤 중요하게 강조된다. 역사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셀레스테,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이사도라, 그리고 노숙인 수잔, 그리고 아이 6명을 기르고 있는 조앤까지. 오하이오의 한 학교의 체육관에서 모여, 각자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겪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자매애를 느낀다. 그런데, 리지(엄마)의 말 하나에 이 모임이 무너지는데....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이 연극은 엊그제 브로드웨이에 정식으로 상연이 시작된 Liberation이란 연극이다. 나는 지난번에 봤던 Purpose라는 연극의 Aziza 역을 연기했던 Kara Young이란 배우가 추천한 걸 보고 이 연극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 이 연극을 선택한 계기는, 첫 번째로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는 연극 중 드물게 모든 주인공이 여자였던 점이었다. 물론 Six와 같은 뮤지컬도 있긴 하지만, 내가 일 년간 바라본 브로드웨이 연극들 중에서 모든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다. 두 번째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지금의 진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1970년대 여성들이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지를 느끼고 싶었다. 나는 정식상연 이전에 봤고,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연극이 다루는 주제뿐 아니라, 내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시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CR 그룹은 19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에서 나온 풀뿌리 여성운동의 한 형태였고, 직장 내 차별과 무엇보다 가정 내에서의 성 역할과 억압을 핵심 문제로 다루었다. 이 CR 그룹에서 참여자들이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면서, 각자 개별적인 고통이라고 느꼈던 것이 생각이상으로 보편적이었다는 걸 알게 되며,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꿈꾸게 되었던 원동력이었던 걸로 안다. 아마 이런 맥락에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라는 캐치프라이즈가 나왔던 걸로 보인다. 특히 이 연극은 어머니 세대의 투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 투쟁이 지금 세대에 어떻게 남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구성을 갖고 있다.
연극의 1막에서는 리지(엄마)가 오하이오에 오면서 서부와 동부에서 생긴 리버럴 운동인 CR그룹을 만드는 걸로 시작한다. 이 모임에 마지, 이사도라, 도라, 셀레스테, 수잔 이 네 명이 참석하며 모임이 시작된다. 도라는 어떤 모임인지도 모르고 왔으며, 셀레스테는 과거 뉴욕에서 이런 운동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를 했고, 마지는 정확하게 무슨 모임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끌림 때문에 참석한 느낌, 수잔은 극에서 황당하면서 웃긴 포지션을 맡았기 때문에 매우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 모임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포가 형성된 이후, 극의 주인공들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다. 연배가 제일 많은 마지는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계좌도 없고, 특히나 은퇴한 남편을 보며 하루 종일 화를 삭이고 있는 경험을 공유한다. 이사도라는 LA에서 영화계에서 일하다가 오하이오로 이주 왔다고 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공유를 하면서, 자기는 사랑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을 조금씩 하다가, 마지막에는 영주권 때문에 지금 남편이랑 결혼했다고 하고 자신이 남편에게 학대받았고 어떻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져버린 사람임이 드러난다. 결혼은 이사도라에게는 선택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불안정한 신분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 자유를 찾기 위해서 구속이 된 인물이다.
뉴욕에서 일을 하다가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돌아온 셀레스테는 엄마를 간호할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걸 알지만, 왜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모습이 나온다. 이 연극의 1막은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오하이오 시내에서 페미니즘 시위를 하는 것으로 마친다. 더불어 1막 마지막에는 갑자기 남자가 등장하며, 리지랑 호감을 주고받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 연극은 핸드폰 반입을 금지한다. 그 이유는 2막에서 모든 배우들이 상. 하의를 탈의하고, 몸에 대한 억압에 대해서 논의하는 CR 모임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타인의 시선에서 몸을 해방하기 위한 시도로 이런 운동을 했었다고 하고, 나중에 학과 스태프에게 이 연극을 감상하고 나서 물어보니까 자신의 부모님 세대에서 그랬었다고 말했을 때 더 실감이 났었다. 이 장면에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미덕이라고 그간 25년간 배워온 도라가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성생활에 대한 불만을 말하며, 이런 말 하면 남자친구가 싫어할 거라고 알몸으로 체육관을 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남들과의 화합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사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관객이 직접 마주하게 하는, 이 연극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그러나 2막에서는 이 환상적인 연대가 과연 현시대에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해체한다.
그 시작은 CR그룹에 있지 않는 조앤이 질문을 시작하며, 이 연극의 갈등이 하나씩 드러난다. 조앤은 밤 6시 이후에나 자신의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 6명을 키우느라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CR그룹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하며, 자기가 활동할 수 없는 시간에 CR 운동이 진행된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당신들의 고민이 나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마지는 그간 3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불만들을 하나씩 리스트로 정리해서 남편에게 제시를 했고, 남편은 케이블 TV 리스트는 열심히 보면서, 집안일 리스트는 하나도 안 본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남편이 집안일을 하나씩 하게 되어서, 집 위로 올라가서 원래 좋아하던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그 오랜 집안일을 하면서 보낸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나의 취미가 없어지고, 그걸 할 능력이 없어지고, 남편이 하는 게 신경이 쓰여서 미칠 거 같다는 묘사가 나온다. 페미니즘 운동이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십 년에 걸쳐 개인이 축적해 온 습관, 자아, 정체성은 쉽게 바꿀 수 없었다는 걸 시사하며, 당시 여성들의 비극을 대변한다.
이 연극의 갈등의 절정은 이 CR 그룹을 만든 리지(엄마)가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남자는 리지(엄마)가 페미니즘을 존중한다고 하고, 같이 뉴욕으로 가면 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리지를 북돋는다. 남자는 변호사로 오하이오에서 뉴욕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만나던 리지(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청혼을 한다. 그러나 리지(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리지는 엄마의 CR그룹 친구들에게 "내 엄마는 결혼생활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고 왜 엄마는 저에게 CR그룹을 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을까요?"라고 하며 질문을 던진다. 남성 중심적인 시선 안에서조차 허용된 해방에 머물렀던 엄마의 모습에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엄마 덕에 리지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엄마가 그 자유를 지키지 못하고 현실에 대한 타협을 한 것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엄마를 사랑하지만, 왜 당신의 치열한 역사를 숨겨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엄마랑 이야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양가감정이 드러난다. 그러나 엄마(리지)는 나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고,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하면서 연극이 마무리된다.
이 내용들만 보면 연극이 매우 2시간 30분 내내 진지한 분위기일 것으로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진지한 주제인만큼, 불편한 감정을 씻어 내리게 하기 위해 배우들은 서로 합을 맞춰서 유머를 던진다. 마치 Purpose on the broadway와 같이. 한 10분에 한 번씩은 계속 웃다가, 마지막 한 30분 정도는 웃음이 하나도 안 나오는 장면이 있을 뿐, 감동적이며 유쾌한 연극이다. 특히 노숙자로 연출된 수잔이 의도적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환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심각한 분위기를 주기적으로 유쾌하게 끌어올린다. 더 중요한 교훈은 고정사고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연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세대 간의 침묵을 생각해 보며, 아직까지도 불완전한 해방이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었다.
이 연극에서 내가 주목한 건 몇 가지 장치였다.
이 극에서는 어느 시점부터 배우들이 담배를 계속 피운다. 나는 미국의 여성들이 담배 홍보문구 때문에 1930년부터 담배를 공개적으로 피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연극에서는 의도적으로 계속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알고 보니 1967년의 '버지니아 슬림' 광고처럼 여성해방 메시지와 연결되어 공개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서서히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하이오 주와 같이 보수적인 주에서는 사회적인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왜 체육관을 배경으로 했을까? 벽에는 모두 남자 스포츠 경기 우승기록만 있고, 여성 운동 기록은 하나도 없다. 알고 보니 Title XI이 제정된 게 이 무렵이라, 여성체육이 시작된 게 실질적으로는 1970년대 이후부터였다는 것이 몰랐던 사실이었다. 더불어 체육관이란 남성적인 공간에서 여성들의 의식고양운동을 한다는 대비효과를 보이고 싶었을 것이고, 대학강당이 아닌 체육관이라는 면에서 풀뿌리운동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이 극에서는 제4의 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같이 연극을 보고 있는 청중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CR그룹의 일원같이 느껴지게 만들게 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 제4의 벽을 깨는 방법이 정말 특이한데, 이건 스포일러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 그 사람이 배우가 아니라 작가인 줄 알았다.
더불어 나는 동양계로서 엄마이름도 리지, 딸 이름도 리지였던 게 헷갈렸고, 리지역할을 극 중 다른 인물들이 연기를 한다. 특히 딸 리지가 엄마 리지의 연애사 또는 엄마와의 대화를 할 때 다른 배우가 엄마 리지를 연기한다. 아마도 리지라는 인물이 옛날에도 지금도 어떤 문제에 마주하고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다른 인물들로 연출을 계속했던 것 아닐까 싶었다. 더불어 세대가 지속되어도 해결되지 않는 해방문제를 묘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 리지가 딸 리지에게 자신이 한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침묵이 말해주는 게 무엇일까. 운동은 의의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제에 종속되었던 자신의 실패를 딸이 짊어지지 않길 바랐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거운 짐을 주지 않기 위한 사랑이었을까.
이 연극에 대한 감상문을 쓰면서, 인물들의 설정이 매우 정교하고 다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의 설정을 하나씩 더 생각해 볼수록,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람들로 느껴져서 실제 인물들이 무대에 올라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작가 Bess Wohl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이 문제를 생각해 왔는지 드러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