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adway 버전, Robert Icke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책을 보고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잘 알진 못했다. 큰 줄기만 알고 연극장에 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평한 만큼, 잘 만든 작품을 각색하는 것은 꽤나 많은 연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불어 고전연극을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올리려면, 많은 자금이 투입이 되는 만큼, 현대 시민들이 와닿을 수 있게 적절한 각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National Theater Live의 많은 연극들을 보면, 셰익스피어의 고전연극을 현대버전으로 각색을 한 것이 많았기에, 이게 꽤나 대세인 흐름이구나 싶었다.
내가 이 각색버전에 끌렸던 것은, 발상의 전환때문이었다. 오이디푸스 몰락의 두 가지 요인은, 하나는 자신의 오점이라고 생각한 사건, 그 살인사건이 자기 아버지를 자기도 모르게 죽였다는 것에서 온 것이었다. 또 하나는 자신이 자기를 낳은 엄마랑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상황이다. 이것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실과 어떻게 잘 엮을 것인가? 원작에서 오이디푸스는 왕이었고, 역병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진실을 찾다가 비극을 맞이하는건데, 이건 현대극에서는 맞지 않는다. 이걸 창의적으로 대통령선거와 연결을 지었다. 출생증명서가 위조되었다는 상대편의 주장에, 자신은 도덕적이고 청렴하고,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고 캠페인은 전개한 오이디푸스는 나는 결백하다고 증명하겠다고 강하게 외친다. 그래서 나는 이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어떤식으로 각색했는지가 궁금했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를 어떤 연유로 버린 것으로 개연성있게 각색했는지가 궁금했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를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나에게 이 연극 각색본이 흥미로웠던 것은, 원래 극에서는 영웅이었던 오이디푸스를 응원할 수가 없었다. 원래의 오이디푸스는 완전무결한 왕이지만, 이 오이디푸스는 강인한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 가정에서는 꽤나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비극의 구조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오이디푸스를 안쓰럽게만 볼 수는 없었던 복잡한 심정이랄까. 오이디푸스 개인이 맞이한 운명은, 자기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었던 일들로 가득한 일이었다. 자기가 차선위반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시킨 후 교통사고 뺑소니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부분 영어를 못 알아듣긴 했지만, 정치공방이 가능하려면 이정도의 죄는 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버지를 죽인 것인지 몰랐고, 예전 대통령의 아내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자신은 그 아내의 아들이었다는 것. 어느 하나도 오이디푸스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에서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하고, 투명성을 추구한다. 그것때문에 대선 캠페인에서 큰 성공을 거머쥐고, 대통령이 된다. 대선 캠페인을 마치고, 축하하는 파티에 자신의 엄마를 원래는 초대하지 않았고, 엄마가 이야기하자고 해도 계속 미루고 진실을 찾는데에만 몰두한다. 겉으로는 아들 딸들하고는 행복한 가정으로 보이지만, 식탁을 중심으로 갈등이 크게 전개된다. 특히 아들들간에 총을 겨누는 모습도 나타나나, 가족을 훈계하기 보다는 가볍게 넘기는 모습을 보인다. 그중에서 딸 하나만 아버지의 캠페인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극도로 추구하며, 대통령이 되기 하루 전, 모든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찬다. 이념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가까운 사람을 보듬지 못한 정치인을 얼마나 많이 봤는가? 그래서 결말에 오이디푸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원작처럼 슬퍼함은 없었던 것 같다. 안톤 쳬호프의 벚꽃동산처럼 희극이라고 하기에는, 오이디푸스가 패망하는 길이 개인의 오류가 있는게 아닌,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이 맞이한 진실이 끔찍했기 때문에 희극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이 연극은 내 보통 감상문과 달리, 어떤 변주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는지를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게 스포일러이기도 하고, 약간 졸렸던 면도 있었다. 극의 핵심이었던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대화를 영어가 짧아 못 알아 들어서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한게 전부였기에, 중간에 조금 졸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VOD로 어딘가 플랫폼에 올라온다면 다시 볼 생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