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게 본 영화 올드보이
영화감독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힌 지 13년이 흘렀다. 2026년 2월, 그가 세계에 이름을 알린 <올드보이>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 프로비던스에서 보았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만들어진 우리학교 홍보영상에 "서강은 저의 상상력의 원천이었습니다"라고 박찬욱 감독이 오프닝을 열었다. 이때서야 내가 박찬욱 감독이 내가 다니던 학교의 동문이라는 걸 깨달았고, 전혀 전공과 상관없는 걸로 보이는 길로 걸어가서 자기의 자리를 잡고 우뚝 선 선배들이 영상에 나왔다.
영상에서 박찬욱 감독은 철학전공으로 입학해서 1985년에 서강영화공동체를 만들었고(지금도 있는 동아리다), 학교에서 많은 걸 느끼고 나왔다고, 학교와 관련된 홍보영상에는 항상 나와서 말씀하는 선배였다. 지금이야 아트앤테크놀리지 학과가 있지만, 어떻게 그 학교에서 영화동아리를 만들어서 그쪽 업계로 갈 생각까지 했을지 그 힘이 궁금하긴 했었다. 대출카드 덕분에 만들어진 동아리라는 걸 듣고 신기했었다. 우연이 쌓여 필연으로 이어지는 건 불변의 진리인가?
그렇게 유명한 감독인 건 알고 있었어도, 공동경비구역JSA 외에는 난 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영화는 나에겐 수학을 할 때 귀가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경음악 정도뿐이었고, 그에 따라 내가 보았던 건 주로 잔잔한 영화들 정도였지 딱히 기억에 남는 영화도 없다. 그때 <왕좌의 게임> 드라마정도는 열심히 보았던 것 같다.
난 뭔가 이해하지도 못할 세계에 진입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더불어 나는 주변에서 영화가 잔인하고, 뭔가 소재가 거북하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이상한 주관이 있어서인지, 다들 그렇게 좋아하는 마블 영화도 군대 훈련소에서 이야기를 듣고 겨우 본 정도였다. 지금까지도 <오징어 게임>은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미국에서 큰 열풍을 불었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클립 몇 개만 보고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해서 보지도 않았다.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하여>에서 이론의 틀을 갖고 작품을 해석하는 순간 그 작품의 본연의 맛을 잃는다고 했었지 않았는가? 작년 초까지는 나는 리뷰가 없었으면 작품을 음미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영화는 거리를 두었고, 넷플릭스에서 나온 몇몇 영화 중에서 배우가 괜찮으면 한번 보는 정도로 영화를 보았던 정도였다. 2022년에 미국에 와서야 <헤어질 결심>을 시작으로,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그다음에 그 박찬욱 감독이 전 세계로 유명세를 얻은 <올드보이>를 2026년 2월에나 보게 되었다. <헤어질 결심>을 볼 때는 내 힘으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이 없어서 이동진의 리뷰를 봤지만, 이젠 그 리뷰들, 영화 유튜브의 리뷰도 필요가 없이 온전히 영화를 받아들일 자신이 있다.
그런 자신감을 가진 첫 해, 작년에 그간 많은 작품들을 보았다. 대부분 작가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이런 메시지를 사용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보았다. 그러나 <올드보이>에서는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태도를 갖는 순간 촌스러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말 조심하자?' '내 선택에 조심하자?' '자유의지란 없다?' 이런 문장으로 영화를 요약하는 순간 그 영화의 참 맛을 잃어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볼 때, 옛날에 어디선가 들었던, 올드보이를 만들었을 때 나온 인터뷰들이 오버랩이 되면서,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에너지를 내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했고, 열정을 갈아서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지의 대비, 무대, 그리고 독특한 상상력, 정교하게 쌓아 올린 서사,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막다른 길에서 던지는 마지막 불꽃, 이걸 느꼈고 그걸 느끼는 1시간 59분이 좋았다.
이우진의 요가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살라바아사나(메뚜기 자세)라고 하던데, 피아노줄까지 써서 그 요가동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걸 왜 이렇게까지 연출했을까? 사람이 아닌 인공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씬으로 보여준 것 아닐까? 그에 반해 오대수는 세상에 15년 만에 나와서 군만두가 아닌 음식으로 처음 먹은 건 산낙지, 썰어있지도 않은 산 낙지였다. 산낙지를 썰어서 참기름에 절여놓은 음식이 아닌, 낙지 그 자체.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한 씬이었다.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강력하게 전달한 것. 이게 이 영화의 큰 매력이었다.
더불어 이 영화의 미도 역할을 캐스팅할 때 있던 일화도 재밌는 배경이었다. 피해자를 연기해 온 다른 배우들과 달리, 강혜정은 밑의 횟집에서 사시미칼을 빌려와서 칼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씬, 뭔가 순수한 눈빛을 가지고 다정함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함을 느낄 수 있던 연기였고, 그걸 극의 끝까지 잘 끌고 왔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이야 강혜정이란 배우를 알고 있었지만, 무명에 가까웠던 시절, 횟집에서 읍소하며 사시미 칼을 빌려와 연기로 자기를 표현하겠다는 강혜정의 열정을 오디션 장면에서도, 작품에서 느꼈다.
이 영화를 보면서 15년간 오대수가 갇혀있던 방의 기괴함을 느꼈는데, 창문은 매번 같은 초원 위의 사진, 그리고 잘 때면 가스로 재워버리는 모습. 그리고 이상한 벽지. 그 사설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드디어 비를 맞이했는데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 자기 의지가 아닌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 가방에서 탈출해 풀밭에 나왔지만, 근처에 건설 중인 아파트의 옥상. 세상에 나왔는데도 미도의 집에도 나온 이상한 벽지. 오대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우진. 이 기괴한 이미지들의 불협화음이 영화의 끝까지 붙잡았는데, 정말 대범한 시도였다고 생각했다. 반전에 해당되는 소재가 매우 자극적이라 사람들이 그것에 집중해서 안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맞이할 수밖에 없던 사람의 허망함을 이만큼 우아하게 잘 표현한 영화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 정말 잘 보았던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를 찍을 당시에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상업적 성공 후, 다음에 찍은 <복수는 나의 것>의 흥행실패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당시에는 정말 대범하다고 할 수밖에 없던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장도리를 들고 와서 액션을 원테이크로 찍어낸 발상이라던가, 영화대본을 쓰기 시작이 되었다는 질문을 마지막에 회수하는 그 장면, 그리고 사실성을 중요시하는 영화에서 실제 세계에서는 볼 수 없던 벽지라던가, 독특한 화면병치까지. 이때 모든 걸 쏟아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다른 길에서 자기가 생각한 길이 맞을지도 모르는 그 불확실한 상황에서, 작품 하나의 완성을 위해 과감한 선택들을 축적해 온 영화가 바로 시대의 명작으로 거론되는 <올드보이>였다. 대실패 후 안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박찬욱 감독과 스태프들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같이 대범한 연구를 아직까지 하지도 못하고 있고, 좋은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질문이란 한 분야의 향방을 바꿔버리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며, 숨겨진 대칭을 발굴해 내며, 문제를 공략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을 와서 한동안은 지도교수의 제안으로 어떤 방향으로 극한까지 풀어내는 연구를 해왔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무엇인가 열심히는 하긴 했고, 유체역학에서도 꽤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디레클레 경계가 물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연구결과는 다른 경계조건이 이 방정식에서 어떤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더 적합하다는 걸 보여준 결과였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지도교수와 여러 토론을 거쳐 문제를 공략할 방법을 만들어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근래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조건을 주었을 때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는 특이점 형성에 관심을 가지는 게 트렌드이기도 했고, 기대할법한 결과를 냈을 때 좋은 평가를 해주는 시대는 아니다. 열심히 일한 것이지, 좋은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클리에서 그간 수학을 한 10년을 같이 한 친구랑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자기가 정말로 풀어버리고 싶었던 문제를 공략해서 한 분야에서 불가능할 것을 만들어낸 후라 그런지, 뭔가 이젠 자기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도 없어진 상태로 보였다. 그 한 번의 돌파구 덕분인가? 그 친구가 세상에 내놓고 있는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설마 이게 가능한 건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고 있었다. 나는 3개월을 잡아도 도저히 안 된다 싶으면 다른 문제로 넘어가기도 하고,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중간의 난관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는데, 그 친구는 우직하게 그 문제를 뚫고 갔다. 그 친구가 그 연구를 할 때는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길이었다. 자신만의 <올드보이>를 만들고 내 앞에서 3번의 집중강연을 할 때의 그 에너지가 머릿속에 선하다.
이제야 질문을 만들 수는 있어도,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는 질문들만 늘어난다. 12편의 논문을 써왔지만, 아직까지도 될만한 게임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유학 와서 2년 차에 언뜻 들었던 Muskat 문제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수학이론을 공부하며, 그 주제로 한 학기 동안 대학원생과 박사 후 연구원 대상으로 강의를 했었다. 그나마 지금 수준에서 도달할 수 있는 안전한 질문에 대한 답은 성공적으로 했지만, 아직까지는 무엇인가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서 풀어낸 것이 아닌, 기존에 알려진 여러 도구들의 적절한 융합으로 문제를 풀어낸 수준에 머물러있다. 언제쯤이면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독특한 시선으로 문제를 공략해 가고, 그 틀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낼 연구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의 <올드보이>는 과연 나에게 언제쯤 올까?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