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교육현장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
난 지금 아이비리그에서 수학을 연구하고, 학부생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친다.
저번 주에 강사의 요청으로 50분 정도 대리수업을 했다. 처음 7분은 지난 수업시간에 한 것을 복습을 위해 예제를 몇 개 풀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속도를 맞춰가면서 학생들의 이해도를 점검했다. 그 다음에는 두 섹션정도 수업을 진행했다. 개념을 도입하고, 예제를 가지고 계산을 하고, 전형적인 수학 수업이었다.
나는 한 20분 정도 지나면 무의식적으로 한번은 농담이던 어떤식으로든 인지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사관학교에서 그간 3년간 강의하면서 내 강의패턴중 하나로 중간에 잠을 깨우는 시간이 필요해서 했던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이젠 무의식적으로 이 과정을 한다. 특히 이 수업은 내가 원래 강의하던 수업도 아니라서, 일부러 라포형성도 시도하기 위해 Lecture capture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었는데 모든 학생들이 다 웃었다. 미국학생들이 어떤 부분에서 웃는지를 스탠딩 코미디 쇼를 보고 Sidechat을 염탐해서 그런가, 다 웃는 것을 보고 뭔가 뿌듯했다.
이번학기에 새롭게 시도하는 건, 학생들에게 "수학은 사람이 만들어온 것이며, 수학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지난 글에서 쓴 미적분학의 탄생도 그런 맥락에서 쓴 글이었다. AI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더 생각해봐야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글이기도 하다.
편미분방정식의 해라는 것을 정의한 후, 중첩원리를 설명하기 전에 말을 하던 순간이었다. "제가 이번에 수학사와 관련된 글을 써서 올리고 있어요. 이 중첩원리에 엮인 수학사도 정말 황당하긴 한데요, 제가 글을 올리고 있는거 봤나요?"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아 그런데 뉴턴은 개자식이긴 해"라고 말했을때 "오우..." 하면서 바로 머리를 박았다. 학생들이 엄청 웃었다. 나도 모르게 실수한 것을 알았으니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스탠딩 코미디처럼 약간 과장하며 자책하는 느낌을 연출했다. "아 그런데 걔 나쁜 사람은 맞아"라고 말했더니 학생 중 한 명이 "왜 뉴턴이 그렇게 나빠요?"라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7분간 왜 뉴턴이 나쁜지 설명을 했다. 내가 가르친 어떤 부분보다도 학생들이 주목해서 듣는걸 봤고, 그 집중력으로 남은 20분을 끌어내서 수업을 끝냈다.
미국의 교실에서 강의를 할때 권장하는 강의태도가 있다. 포용적이여야 하며, 안전한 환경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유행하는 교육관은 active learning이라던가 inclusive learning이라던가 여러 개념들이 있다. 그로 인해 강의는 매우 정적이기도 하고, 학생중심적인 성향이 있다. 그러나 내 수업은 아마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150명을 휘어잡아야 하는 강사는 학생중심적으로 강의를 하기 어렵다. 적정 수준의 학생을 가정해서 설득하는 식으로 강의를 해야하고, 청중의 마음을 휘어잡아야한다. 특히 이번 학기에 강의하는 강사는 연극쪽에 배경이 있어서, 배우 한 명이 청중들을 흔드는 식으로 강의를 하는 걸 보고, 상당히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근래 연극, 뮤지컬을 보면서 학생들의 방어기제를 낮추는 것이 교육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봤고, 스탠딩 코미디를 생각해봤다. 상식을 깨서 방어기제를 낮추며, 불편함을 유발해도 그걸 유쾌하게 풀어내는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에 매력을 느꼈다. 예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을 언급할 때,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과제작성을 하는 학생을 하나 가정하며 "Hey bro, 이건 당연하잖아"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아. 그건 나를 설득하지 못해요. 다 설명하세요"라고 모노드라마를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질 않나, 몸 동작도 정적이라기 보다는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중간에 설명하는 에피소드는 수학과 직접적으로 연관은 없지만 생각할만한 거리를 던진다.
사실 이 방식은 기계적으로 보면 inclusive learning의 철학에 정면으로 배척된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여야 하고, 모든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면 안된다고 하는 교육관이니까. 특히 "bro"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반감을 느낄거다. 이 단어자체는 과거에는 특정 인종그룹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었고, 특히 inclusive learning의 탄생 백그라운드를 생각해보면, 백인남자들이 실수하는 강의 태도를 교정하려는 시도로 나온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 bro라는 단어는 어떻게 그걸 사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유머의 장치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학생들이 멍청한 소리를 하는 친구보고 'hey bro'라고 말하면서 뭐라고 한 소리 하는 걸 인스타그램 릴스나 레딧에서 관찰했기에 이정도 수준은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제 학생이 오피스아워에 찾아와서 내 게스트 렉쳐가 매우 재밌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답안지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냐고 찾아왔는데, 내가 어떤 수준으로 원하는 것인지 질문을 정확하게 읽어주고, 질문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를 설명하며, 마지막으로 이걸 어떤 수준에서 작성해야 하는지, 논리 전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답안지를 써야 나를 설득할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그 학생은 미소로 화답한걸 보니 많은걸 깨달아서 좋아했던거 같다. 어떻게 해야 깔끔하게 설득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기쁨으로 보였다.
근래 Claude에서 새로 만든 걸 보면서 위협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의 눈에서 빛이 나는 걸 봤다. AI 시대 이후로 교육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렇지만 20세 언저리에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 느낀건, 어떻게 하면 내가 덜 멍청해질 수 있을까라는걸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수학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뭔가 그 학생에서 기억에 남는 선생이 될지도 모른다. 그걸로도 내 역할은 다하는 거 아닐까 싶다.
링크드인의 자기개발논리는 불안함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지고 있다. 어느 시대보다 방향성을 잘 잡고, 자기 주관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그걸 잡아 줄 수 있는 건 문학과 예술이며, 수학은 거기에 덧붙이는 예술과 더불어 논리의 최정점인 학문이다. 그걸 느끼게 하고 졸업시키는 걸로도 내가 하는 역할은 다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