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반 만에 운동장에 나갔다. 축구단 사람들 얼굴만 보러 잠깐 다녀오려 했다. 그러다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남편 역시 "밖에서 보고 있으면 뛰고 싶을걸?"이라며 간 김에 축구를 하고 오라 했다. 막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구장은 그대로인데 노래방 기계로 간주 점프라도 한 듯 계절은 여름 한가운데서 가을의 끝자락이 되었다.
날벼락처럼 떨어진 막내의 백혈병 진단으로 더위도 습기도 모기도 없는 소아 혈액 병동에서 여름을 났다. 낙인처럼 남을 백혈병 진단일은 아이의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1년을 손꼽아 기다리는 생일이 더 중하고 심각한 일들에 묻혀 지나가버렸다. 보름 뒤였던 첫째의 생일날 또한 반쪽짜리 파티가 되었다. 여름에 겪어야 할 더위를 겪지 않고, 치러야 할 행사를 치르지 않았더니 여름을 지나온 것 같지가 않다. 아니, 나는 아직도 그 계절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축구장에 도착하니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얇게 입어야 할지 두껍게 입어야 할지 고민하던 옷장 앞에서도, 그사이 한 이사로 익숙지 않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걸 때만 해도, 헤어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만 뛸 뿐 현실 같지가 않았는데. 아니, 어쩌면 나는 평행 우주의 한쪽 세계에서 다른 쪽 세계로 잠시 건너온 것일 뿐인지도... 그렇게 생각될 만큼 이전에 내가 살던 삶과 병원이 위주가 된 현재의 삶에는 크고 깊은 괴리가 있다. 어느덧 병원 생활의 문법에 길들여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병실에서 벗어나, 집안에서 벗어나 축구를 하지만 완전히 자유는 아니다. 내내 마스크를 쓰고 뛰어야 한다. 날이 선선해 다행이다. 내가 그동안 축구장에 나오지 못한 이유가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날씨가 고맙다. 달리다 보니 코밑으로 턱밑으로 내려가는 마스크를 고쳐 쓰고 또 고쳐 썼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면역력이 바닥인 아이에게 위협이 되는 건 아닐까?' 머리를 지배하는 걱정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중증질환자의 주 보호자인 나는 호흡기 질환에 걸려선 안 됨은 물론이고 넘어지거나 다쳐서도 안 되니까. 내 몸이 아프지 않아야 아픈 아이를 돌볼 수 있다.
기술이 없어 육탄방어라도 해야 했던 내가 몸까지 사리면 축구가 제대로 되려나 싶었으나 운 좋게 골을 하나 넣었다. 워낙 오랜만이라 초심자의 행운이 돌아온 것일까. 하지만 언니들은 "쉬다 와도 살아있다?" 라며 무심한 칭찬을 날려주었다. 그리고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몇몇은 만났을 때 그리고 헤어질 때 말없이 나를 두 번 안아주었다. 마음이 채워졌다. 텅 비다 못 해 폐허가 되어버린 마음의 독에 깨끗한 물이 5부쯤 새로 채워진 것 같았다. 이제 축구는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