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
몸이 건강해져서 좋았다. 몸이 건강해지니 마음도 건강해져 좋았다. 내가 쓰임이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내 보잘것없는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삶의 어느 순간 잃어버렸던 소속감이 생겨 좋았다. 내가 축구를 했을 때.
지난 초여름, 축구단 창단 1주년을 맞아 행사가 열렸다. 회장 언니의 요청과 독려로 대표로 앞에 나가 직접 쓴 축사를 낭독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본 흥분감.
그렇게 1주년 행사를 마친 몇 주 뒤, 1년 임기를 마친 회장단의 뒤를 이을 새 임원단 선출이 있었다. 모두의 바람대로 회장 언니는 연임되었다. 그리고 단체 톡방에서 부회장 추천을 받는데 내 이름이 꽤나 언급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급히 회장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저희 막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어요. … 제가 축구든 뭐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네요...”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 아닌 누군가에게 병명을 내뱉었다. <가을동화>에서 송혜교나 걸리는 줄 알았던 그 병의 이름을… 하룻밤 사이 마치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송혜교도 아닌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