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읽기의 역사
귀밑머리를 말아 넘기며 수줍고 당당하게 “제 취미는 독서구요~”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나의 책 읽기 역사의 시작은 202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130권의 책을 읽었고, 그중 60권가량은 금년 8월 현재까지 읽은 책의 수다. 그전에는 책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독서의 기록이 그때를 기점으로 남겨져있으므로 확실한 근거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기에 그렇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지역 축제 백일장에 참가했다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과 어린이날에 관련한 글을 썼었는데 그 이상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화려한 5월 햇살이 나를 감싸고 설날 옥상에서 사촌들과 터트리던 폭죽과는 급이 다른 축포가 터졌으며 상금으로 무려 10만 원을 받았던 시상식의 순간이 더 자세히 기억나는 것 같다. 그 선택적 기억은 수상의 영광이 하루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의 칭찬마저 부상으로 달고 오는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자연스레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의 장래희망은 작가로 정해졌다. 하지만 곧 백일장은커녕 교내 독후감 대회도 나가기가 귀찮고 싫어졌다. 소년등과가 독이 되어 이미 다독 다작 다상량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낸 것이다.
그렇게 졸업에 졸업에 졸업을 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이 지난 시점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른 결혼을 하게 됐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벌써 2년 전에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등굣길에 손 잡고 데려다주고, 하굣길에 교문 앞에 서서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이력이 났다. 대신 집에서 학교 사이 중간쯤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 시기에 맞물려 나의 본격 독서 역사의 맹아는 싹이 튼다.
처음에는 <읽다 던져놓은 책들 다시 읽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책 읽기를 혼자 하는 놀이처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는 4번째 책부터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고, 그것이 2021년 6월이고, 먼저 읽은 세 권은 무슨 책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데, 이것이 바로 읽는 것만큼이나 쓰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아무튼 2021년에는 그렇게 읽다 둔 책 10권을 끝까지 읽어냈다.
이듬해 상반기에는 달리 집중할 일이 있어서 바삐 보내게 되었고, 2022년 7월부터 다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여름은 독서의 계절. 지금은 나 역시 200% 동의하고 주창하는 말이다. 원래는 자주 방문하던 블로그의 블로거가 하던 얘기였다. 그는 패션 블로거였는데 매해 여름이면 구독자들에게 책 추천을 부탁하고 댓글을 그러모아 도서 리스트를 만들었다. 구독한 지 몇 년 되었지만 작년 여름에야 도서 리스트가 공유된 포스팅을 보고 마음이 동하였다. 한여름 땡볕을 피해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할 것 같그든요.
도서관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성지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지휘소다. p.99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그 당시 둘째와 셋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도서관에 가면 노잼의 기운에 사지가 잘릴 것만 같고 큰일이 나는 줄로만 알았던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분류번호를 받아 적어 서가를 돌며 책을 찾아내 빌리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일련의 과정이 보물찾기 같았달까. 그리고는 책이 책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끔 재미없는 책을 만나 살짝 지쳐있을 땐, 가장 친한 친구가 읽다 내 생각이 났다며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한 번은 새로 안면을 튼 둘째의 친구 엄마가 알고 보니 책을 낸 작가였던 일도 있다. 그분은 독서법에 관한 책을 쓰셨는데 그 책을 읽고 필사를 시작하게 됐으니 작은 우연이 나의 독서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셈이다. 올봄에는 눈독만 들이던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누군가가 나타나든, 어떠한 계기가 마련되든 독서 생명은 끝없이 연장되고 있다.
끝없이 읽는 것은 난정이 찾은 자기보호법이었다. (...) 언제나 뭔가를 쥐어뜯고, 따지고, 몰아붙이고, 먼저 공격하고 싶었다. 대신 책을 읽는 걸 택했다. (...)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 한 게 없었다. p.23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책을 통해서라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고, 좌절한 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형사가 되어 범인을 쫓을 수도 있고, 헤어진 연인과의 기적 같은 재회도 가능하다. (...) 그럼 언젠가는 읽게 될 테고 당신의 내일이 조금 더 영리한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p.59 박정민 <쓸 만한 인간>
우리 집 아이들은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엄마는 도서관에 다닌다고 말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도서관에 드나들다 보니 도서관에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도 알게 되었다. 북콘서트도 열리고 인문학 강좌들도 들을 수 있다. 이번 달에 원북 원부산 연계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운영 내용에는 그저 인문학적 사유를 확장한다고 되어있었지만 실은 글쓰기 강좌였다. 나 포함 많은 수강생들이 첫 수업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않았으나 역시 다독 다작 다상량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가 보다 하기로 했다. 읽었으면 응당 쓸 것이고 그렇게 사유를 확장해야지. 다행히 선생님의 강의 방식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칭찬할 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발 밑에 칭찬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는 듯 자연스레 칭찬을 주워서 건네는 고급 스킬을 가진 선생님이다. 첫 수업 때 내가 쓴 짧은 글을 듣고서도 역시 칭찬을 해주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길게 써 붙이면 그게 바로 에세이가 되는 겁니다. 글이 위트가 있네요." 라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댕겨진 불씨를 잘 살려왔다면 지금 나의 모습이 조금 달라져 있을까? 이제 와서 무의미한 회한의 감정도 가져본다. 서론도 길고 본론도 길었는데 결론적으로 선생님의 칭찬이 기폭제가 되어 글쓰기 숙제를 신나게 하게 되었고, 숙제로 시작한 글을 이제 브런치에 옮겨 보고자 한다.
행복했다.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읽을 수 있게 된 다음엔 이제야말로 뭔가를 써야 할 때. 과연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 바로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것. 해 보면 알게 될 것을 왜 물어볼까. p.343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글쓰기도 수영처럼 연습이 필요한거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돼. 글은 자기만을 위해서 쓸 수도 있어. 그러면 내 생각을 내가 읽을 수 있거든” “너무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써도 돼. 오늘 쓰고 내일 읽어도 돼” p.251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