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라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위기였는지도 모른 채, 이제는 진부해진 지 오래인 이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 늘상 거론되는 담론의 화두이다. 그런데 이는 결코 오늘날에 와서야 새삼스레 거론되는 현상이 아니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244년 전인 1781년에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그 유명한 책 『순수이성비판』의 초판 서문에서 “한때 만학의 여왕으로 칭송받던 형이상학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져 지금에 와서는 ‘늙은 하녀’의 처지가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적어도 인문학의 여러 분과들 중 철학이 학계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일은 결코 현대 한국사회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주류의 전통(?)” 을 간직한 철학은 학계의 말석에서 경멸받는 처지에 놓여야 마땅하다 할 것인가? 물론,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철학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그 빛나는 성취를 보여달라” 고 말이다.
이는 꽤나 예리한 지적으로 보인다. 실제 플라톤의 『국가』처럼 철학계에서 불멸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저술마저도 전국의 수많은 공과대학에서 매년 발행되는 수 백 편의 논문들 중, 그 어느 것보다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적은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나무를 보고도 그 장대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근원적 힘이라 할 수 있는 깊은 뿌리를 떠올리지 못하는 일과도 같다.
예컨데,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분명 철학은 강을 건너는 것 자체로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철학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철학은 다리를 놓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강을 건너는 데 있어 땅굴을 파는 것과 수영을 배우는 것, 다리를 놓는 일 중 어느 편이 가장 합리적인지 결정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할 뿐이다. 그런 문제에 답하는 일은 철학이 아닌 공학과 경제학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철학은 강을 건너려는 이들에게 강을 “왜” 건너야만 하는 지 묻는다. 이 질문을 간과한 채 그저 나무를 베어 다리를 놓고, 나중에는 다리를 건너는 일도 귀찮다며 다리에 컨베이어벨트를 놓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따져 묻는다. “굳이 다리를 만들어 끊임없이 마을을 넓혀야만 하는가?” 라고 말이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철학자들의 준엄한 경고를 무시한 채 그저 맹목적으로 마을을 넓히려고만 한다면, 그러한 마을은 결국 아무도 살고싶지 않은 마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마을의 내부에는 주민을 행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공학자들의 성품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다. 사실 타고난 성품으로만 본다면 철학자와 공학자는 전혀 다를 바 없이 태어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공학자의 잘못은 그저 순수하게 숲을 태워 나무를 없애고 그 자리에 집과 도로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였을 뿐, 결국 이 마을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지를 생각하지 않은 데 있다.
그러나 마을의 존재이유를 규명하는 일은 철학서를 닥치는 대로 읽는다 해서 저절로 답이 나오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권위에 눌려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진리라 믿고 따르는 일이야 말로 철학적 사고에서 가장 멀어지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천이성비판』이나 『논어』의 가르침보다도 연인에게 받은 진심어린 손편지의 내용이 더욱 큰 깨달음과 위로를 줄 수도 있다. 어떤 책이 다른 이들에게 삶의 귀감이 되어준다고 한들, 당신이 보았을 때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철학적 사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철학서를 읽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철학하는 주체인 “내”가 자발적인 자세로 의심하며 탐구하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가 갖추어져 있다면 사실 철학서마저도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나침반과 지도가 없다면 처음에는 꽤나 헤맬 것이고 때로는 막다른 길로 들어서는 일도 있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목적지로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철학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사유가 타당한지를 검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도구일 뿐이다. 만일 철학서의 내용에 집착해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잊는다면 철학서는 차라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편이 낫다. 지도와 나침반에 의존해 단지 목적지까지 최단경로로 가는 법만 알 뿐, 의외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가련한 여행자의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때로는 “책을 읽지 않을 필요” 가 있다.
결론적으로, 철학을 배우는 일은 “세계 속에서 나의 의미를 스스로 규명하는 일” 이라 하겠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제시한 답을 다른 이에게 잘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내놓은 답이 최선의 결론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질 때까지, 집요하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일은 철저히 너 자신만의 문제이기에 그 누구도 대신하여 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