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전은 어렵고 지루한 책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비단 근래의 일만은 아니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 조차도 생전에는 “누구나 고전을 읽어야 한다 말하지만 진실로 고전을 읽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라고 자조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유명 고전의 작가조차 이런 말을 남겼을 정도이니 고전에 대한 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누구나 고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마련이다. “왜 인터넷을 통해 최신 정보를 얼마든지 손쉽게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굳이 낯선 문체에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한 오래된 글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그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인’ 답변은 “오래전,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마주했던 옛 사람들이 고심 끝에 찾아내어 고전에 남겨놓은 해결책을 우리 시대에 비추어 변주(變奏)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라고 하겠다. 그러나 모든 오래된 글에서 언제나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모든 오래된 글이 고전이라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고전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고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고전의 작가가 왜 그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전은 우리 시대에 새로 출판되는 수많은 책들처럼 어디까지나 당대를 살았던 옛 사람이 사유한 흔적이다. 그리고 대개의 글이 그렇듯이, 고전을 쓴 수많은 작가들도 특별히 먼 훗날의 사람들을 위해 그 글을 쓰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대의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이나 감정, 혹은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글을 쓴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일 그것이 아니라 일기처럼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쓰는 글 조차도 ‘지금 여기 있는’ 자기 생각을 재구성함으로서 얻게 되는 흡족감을 얻기 위해서 쓴 글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고전에서 애초에 우리는 고전의 작가가 상정해 둔 독자가 아니다.
물론 타임캡슐에 담겨진 편지처럼 간혹 우리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만세(萬世) 후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씌여진 글도 드물게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글조차도 후대의 사람들이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당대의 사람을 위해 쓰는 글도 당대의 모두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거니와 심지어는 당대에는 외면당한 채 묻혀있다 오히려 후대에 와서야 비로소 찬양받는 작품도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고전을 읽는 중에 별로 공감되지 않는 구절을 마주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구절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일 당신이 고전의 저자가 설파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글은 이미 당신에게는 고전이 아니라 단지 ‘오래된 글’일 뿐이다. 예를 들어, 공자의 어록을 담은 「논어」의 경우 공자를 숭상하였던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불멸의 권위를 갖는 성서(聖書)로 대우받았지만 장자(莊子)와 묵자(墨子)에게는 그저 세상을 번잡하게 만들 뿐인 악서(惡書)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만일 유명한 고전의 내용에 당신이 공감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그 책을 고전으로 여기지 않으면 된다. 오히려 고전의 권위에 눌려 책에 적힌 내용을 전혀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저 선대(先代)의 주장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믿는 태도야말로 고전을 읽을 때 가장 멀리해야 할 자세이다.
또한 고전을 읽을 때 단지 자신이 그 책을 다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고전을 읽음으로서 그 책의 내용을 익힌 것 외에 자신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 다른 이로 하여금 이러한 책이 있다는 사실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고전이라고 인정한 그 책에 적힌 귀중한 가치들을 책을 덮고 난 다음 당신의 삶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