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형석에 대한 비판
예로부터 무릇 노인은 지혜의 보고라고 하였다. 오래 살았으면 아무래도 보고 들은 것이 많을 테니 분명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가 많을 것이다. 하물며 그 노인의 나이가 무려 100살이 넘은데다 만학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철학을 전공한 어르신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그는 정치적 성향이나 전공분야를 초월해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둘 만한 금언(金言)들을 전해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정말 우리나라에 있을까?
철학자 김형석 (1920- )은 1960년 첫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을 출판한 이래 100세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최근에는 전국 일간지의 사설란을 통해 철학계의 ‘원로’로서 어지러운 작금의 시국을 비판하는 등 지식인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사회참여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실 김형석 교수는 과거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려는 경향을 보이지는 않았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지난 1954년부터 1985년 까지 그는 단지 간혹 강의 중에 현 시국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 정도만 표했을 뿐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처럼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피력하지는 않았고 그 대신 뚜렷한 정치색을 띠지 않는 경수필이나 학부생을 위한 철학 입문서 집필에 몰두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과거의 그를 ‘어용 교수’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비록 적극적으로 반독재운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서정주 시인처럼 노골적으로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문학 작품을 발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수가 강의와 연구활동이라는 본업을 접어두고 사회운동에만 전념하는 것 역시 일종의 직무유기적인 행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교수로 재직하였을 당시의 그는 윤리적으로 크게 비판받을 만한 점이 있다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년퇴임 후 40여년이 흐른 지금, 그가 보수 일간지에 기고한 여러 편의 사설과, 숱한 인터뷰를 통해 확인되는 그의 우편향적인 정치관은 도무지 ‘원로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공산주의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견어린 시각은 철학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차라리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느껴질 정도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지난 2023년 10월 3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
그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싸우는 데만 통달했을 뿐, 공부를 전혀 안 했다”고 말한다. 물론 당시 대학에서 반복되는 학내 시위로 인해 학사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운동권이주도한80년대의 대학 민주화운동이 학생의 본분을 저버린 무책임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학에서 전공수업을 통해 전문 지식을 배우는 대신 다른 학우들로 하여금 인간이 단순히 밥을 배불리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동시에 그들은 인간에게 있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나 그 숭고한 가치는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지금의 독재정권에 의해 어떻게 기만되었고 왜곡되었는지 끊임없이 사색하고 토론하였다.
5공화국 시절, 수많은 열사들이 안온하게 상아탑에서 책을 읽으며 순수학문에만 전념하는 대신 목숨을 걸고 싸워 자유를 가져온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는 비로소 인문정신을 꽃피울 터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눈부신 경제성장 만큼이나 한국사회를 선진사회로 평가받게 한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그들의 투쟁이 학생의 본분을 저버린 무책임한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신의 직업이나 전공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그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절대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1월 11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그의 칼럼 내용은 더욱 가관인데, [2]
그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비롯한 일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공산주의 유물관을 지목하였다. 일단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라는 논리의 비약은 잠시 제쳐두고서라도, 설혹 정말로 운동권 출신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가졌다 해도 그것이 성범죄를 야기한 이론적 근거로 활용된다고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불과하다.
운동권 일각에서 성범죄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가부장적 사고관과 여성을 단지 ‘투쟁을 위한 보조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성차별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지 결코 맑시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김형석의 칼럼을 읽다보면 그는 자신이 증오하고 있는 맑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데, 오히려 맑시즘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성평등을 추구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공산주의의 기본원리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것을 거부하는 인본주의와 만민평등사상에 기반해있음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끝으로 김형석이 왜 100세가 넘은 나이에 갑자기 사회참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아마도 그는 자신의 주장을 공개지면에 발표함으로써 추락해버린 우리 시대 인문학의 위상과 ‘원로의 목소리’가 가진 권위를 되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100년이라는 연륜이 무색하리만큼 비논리와 편협으로 점철된 그의 주장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독자에게 있어 ‘학식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다고 여기거나 무비판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는 교훈만을 설파할 뿐이다.
[1]
김형석 "尹, 끝까지 진실된 대통령으로 남아야… 진실이 이긴다"
(2023년 11월 1일, 조선일보)
[2]
‘김형석 칼럼’ 남은 과제는 국민의 선택이다 (2024년 1월 11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