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몇 가지 취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보람을 주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수필을 쓰는 일입니다. 제가 수필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저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수필을 씀으로써 제 입장을 분명히 표현하고, 추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나의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은 저에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하지만 수필이 언제나 제게 즐거움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다섯 줄 남짓한 문단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번을 고치고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일단 다음 문단을 먼저 써 내려갑니다. 그 문단까지 완성했는데도 끝내 마땅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문제의 부분이 처음에 썼던 문장보다는 조금이라도 낫다는 점에 만족하며 멈추곤 합니다. 그리 흡족한 결말은 아니지만, 이것이 제 문재(文才)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믿었던 재능이 사실은 기껏해야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임을 깨닫는 일은 지망생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하지만 본업을 따로 둔 채 순수한 자기만족으로 예술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니, 이 정도면 취미로 글을 쓰기에는 충분한 재능이라 여겨도 될 일입니다.
문제는 제가 그리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전업 예술가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대학을 휴학했을 때 저는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분류하고 나르는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리 그 일을 통해 보람을 느껴보려 애써도 급료 외에는 도무지 보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육체노동처럼, 제가 싫어하는 일로는 생계를 영위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신 좋아하는 일인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이는 정말 드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도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이 뒤따라올 것이다’라는 철 지난 유행어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닙니다.
대학을 졸업한 저는 이제 거의 매일 카페에 가서 홀로 하루를 보냅니다. 주로 비치된 책이나 가져온 신문을 읽고, 간혹 공책에 수필 초안을 쓰기도 합니다. 자취방에만 종일 있기에는 너무 갑갑하고 외롭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부모님의 지원이 끊기지 않은 덕분에 이런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 있어 부모님께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훨씬 큽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아주 불운한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다면, 어렸을 때는 누구나 부모님이 자신의 꿈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실 수 있으리라 믿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교복을 입을 나이가 되면 깨닫게 됩니다. 지나치게 철이 없지 않는 한, 초등학생 시절부터 비상한 재능을 보인 천재거나 수십 억 이상의 유산을 상속받을 재벌가의 일원이 아니라면, 전업 예술가로 살겠다는 자녀를 환영할 만큼 관대한 부모님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철이 좀 없는 편이라 이 진리(?)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원고지 한 장 반쯤 되는 분량의 문단 하나를 쓰는 데도 일주일씩 걸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수없이 퇴고를 반복하며 겨우 수필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그 결실이 단 2~3분이면 다 읽고도 남는 짧은 글이라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며칠 뒤 제가 쓴 수필을 찬찬히 읽다 보면 과거의 저 자신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생겨난 우울이나 불안을 해결할 단서를 찾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수필 쓰기를 취미로 삼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제 생각을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언어로 다듬어 표현하는 방법인 동시에, 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앞서 카페에서 하는 일 중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출판사의 연락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일입니다. 최근 저는 그동안 써온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낼 요량으로 20여 곳의 출판사에 투고하였습니다. 이 중 자비 출판을 전제로 한 승낙만 겨우 한 군데를 받았고, 나머지는 거절당하거나 답신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돈을 들여 출판할 정도로 제 글이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자비 출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불안정한 삶이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 작가라고 확신하지만, 그에 걸맞은 재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앞으로도 이렇게 수익을 얻지 못하면서 글쓰기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하지만, 평생 저에게 맞지 않는 일에 종사하면서도 희망을 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런 삶에는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