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라이프』서평
스에노부 케이코 작가의 대표작인 ‘라이프’는 어찌보면 단순한 구성의 만화이다. 평범한 소녀가 오해로 인해 왕따를 당하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작품의 전부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폭력의 무게를 그 나이대라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 수준으로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 참혹한 모습을 때로는 독자를 질리게 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왕따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심각한 범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심지어는 피해자가 예전에 왕따를 주도했던 적이 있더라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보여준다.
꿈도 없고 성적도 평범한 소녀 아유무는 중학생 때 그토록 가고싶었던 니시다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계속 겉돌기만 하고 입학한 이후에 처음으로 사귀게 된 친구 마나미의 남자친구인 카츠미에게 강간에 가까운 성폭행을 당하지만 억지로 찍힌 자신의 나체 사진을 폭로하겠다는 카츠미의 협박 때문에 이 일을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마나미를 비롯한 반 여학생들에게는 자신이 마나미의 남자친구를 빼앗으려 했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으며 바늘을 삼킬 것을 강요받는 등 극심한 괴롭힘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작품은 단순히 학교폭력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중반 이후부터 아유무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적극적으로 반격하고 그 덕분에 차츰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국 최후에는 모두가 아유무를 괴롭힌 주범이 마나미임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제 마나미를 왕따시키려 하고 궁지에 몰린 마나미는 자살하는 것으로 왕따의 책임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 때 아유무는 유일하게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려 하는 그녀를 저지하며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 “살아…!”를 외친다.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스에노부 케이코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라이프’를 비롯한 스에노부 케이코 작가의 작품 배경은 하나같이 비관적이고 암울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작품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이룬 주인공은 더 이상 암울한 세계에서 도피하려 들지도 않고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를 애써 외면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지도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스에노부 케이코 작가가 말하는 성숙한 삶의 방식이다.
아쉽게도 작가는 작품의 결정적인 장면에서조차 삶을 지속할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저 ‘포기하지 말고 살아라.’는 인상적인 메시지만 기억될 뿐이다. 이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아직 빈약하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단순히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문학을 탐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 속에서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는 등장인물의 행동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며 반성하게 된다. 잘 쓰인 문학작품은 독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품이다. ‘라이프’가 괴롭힘을 주도하였거나 방관한 독자에게 자신의 과오를 부끄럽게 만들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독자에게 포기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이미 이 작품은 그 역할을 다한 셈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84368.html
이 글은 지난 2023년 <한겨레신문>에 먼저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