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으로 나를 포장하지 말자
약 한 달 전, 당근으로 커피머신을 팔았다. 거래자분은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고, 곁으로 보이기에 우아하고 정직해 보이고 이타심(利他心)이 많아 보였다. 처음 보는 나에게 40분 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파트 상가에 북카페를 오픈 예정이고, 주변에 공방 같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북카페를 공간 대여의 개념으로 운영할 것이며 나에게 본인 카페에 와서 일해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이렇게 당근 거래는 신사적으로 잘 된 듯했다.
커피머신을 가져 간지 3주째 갑자기 연락이 왔다. 에스프레소 샷이 추출이 안 된다고... 판매자가 고장 난 것을 팔았다며 수리비 지원을 요청했다. 근데 왜 바로 연락 안 하고 이제야 연락 주었냐고 물으니 수리비 설치비/오버홀(머신청소)을 지인과 전기업자를 통해 설치했는데 안 돼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최종적으로 고장 난 것을 샀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어서 연락했다고 했다.
구매자와 판매자의 입장은 팽팽했다. 나는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 개인의 신념이 자존심이 되는 순간 얼마나 멋이 없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건 해결을 위해 협의하는 과정에서 구매자는 자기는 정직과 신뢰를 신념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인데 우리 측에서 자기를 거짓 주장하는 사람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감정이 상했다며 공격적인 언어로 감정적으로 대화를 끌고 갔다.
신념(信念),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배경과 경험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것이 신념과 가치관이 되고, 그 신념이 타인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때고 있지만 자기도 타인으로부터 그렇게 평가받고 인정받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 중요하면 타인의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고, 신념은 세우는 것보다 신념 대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내면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을 쉽게 드러내는 행위는 신념 보다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에 가깝다.
나는 차라리 구매자가 자신이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돈 뜯어 내려는 비열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 기분 나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인간적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념을 지닌 그럴듯한 사람으로 자기를 포장하고 엄청난 신념이 무너진 것처럼 억울해하는 모습은 사실 그다지 멋있지도 않고 오히려 우스워보였다.
사람이 가장 쉽게 우스워 보일 때는 억지를 부릴 때이다. 아마도 나의 이런 생각이 그분께 전해져서 끝까지 신념이 아닌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나는 그분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더 바라는 것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만큼은 신념을 지키는 멋있는 사장님이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