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의문

뭐래?

by 수박

책을 읽다가 문득 문득 깨닫곤 혼잣말을 되뇌곤 하는데

다음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면 무엇을 되뇌었는지 잊는다.

다음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라고 말한 건 과장이다.

그만큼 빨리 휘발되어버린다는 걸 알리려다 보니.


그렇다면 과연 나는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든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기억이라는 게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거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비어있다.


그래서 뭐라도 끄적여놓으면 얼마큼은 존재하는 것이려니 하여

책을 덮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화면 우측 아래에 마이크가 하나 떠 있다.

눌러보니 음성을 인식하여 문자로 전환해주는 기능이다.

이제는 입으로도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마이크는 끄고 자판으로 돌아온 것은

나의 뇌는 손가락과는 어느 정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입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판을 익힌 게 언제였던가?


옛날 옛적에

대학에 들어가니 컴퓨터로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여 없는 컴퓨터로 어떻게 리포트를 제출한단 말인가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내 첫 컴퓨터는 그러고도 한 참 지나서였던 것 같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만약 그때 자판이 아니라 입으로 리포터 작성이 가능했다면

나의 뇌는 손가락보다 입과 더 긴밀해졌겠지.

그렇게 훈련된 사람은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면

그 내용이 보다 더 뇌에 쉬 각인되어

기억에 의존한 존재는 보다 더 명확해질까?

.

.

.

.

.

원래 정리해놓으려 했던 생각은 잃어버리고

이상한 의문만 남았다.


최근 읽은 책들에게서 어떤 흐름과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란 것의 신묘함에 대해 풀어보려고 했지만

말을 줄여야겠다.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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