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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빛반사
Sep 03. 2020
최강의 이름
나의 둘째 아이의 이름에 대해..
나의 둘째 아이 이름은 '최강'이다.
첫째가 '건'이라서 둘째는 '강'이 되었다.
둘 간의 끈끈한 연결선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리 지었다.
최강이라는 말은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장난감 광고에 자주 등장한다.
뭔가 강인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쓰는 말이다.
최강전사, 세계최강, 역대최강, 최강의 캐릭터...
그러나 사실 우리 아이
강이의 이름에는
'편안
하다'
는 뜻이 담겼다
.
아기 때까지 강이는 그
이름처럼
무던했
다.
카시트를 처음 탔을 때도 가만히, 유모차를 탈 때도 가만히,
5개월 어린 나이의 첫 비행에서도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니들이 그렇게 한다면야....'라는 표정. 뭔가 초월한 듯한.
조금 더 크면서는 유독 통통 튀는 귀여운 목소리와
부정확한 발음,
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수시로 옷을
벗어젖히는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웃음을 줬다.
이후
점차 말대꾸도 잘하고
짓궂은 아이가 되었지만 강이는 여전히 우리 가족에게 편안함을 주는 아이다.
그런
강이를 종종
머뭇거리게 만드는 녀석이 있다.
바로 부끄러움이다.
강이를
부끄럽
게 만드는 일들은
생활 곳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처음 본 친구에게 인사를 하거나 먼저 말을 건네보라고 할 때면
엄마인
내 뒤로 숨어버리고,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말을 하다가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딴짓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6살
강이의
부끄러움은
자기 이름에 옮아갔다.
종종 이름으로 주목을 받다 보니
강이의
부끄러움이
발동을
건 것이
다.
7살 때 유치원을
옮기게 되면서 고민은 더 깊어갔다.
코로나로 등원이 늦어진 상태에서
강이는 줄곧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영락없이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을까
봐라는
이유가 탑으로
꼽혔
다.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서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사실 이름을 지을 때부터 나 역시 아이가 혹시 놀림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름을
통해
아이들에게 서로가 하나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고
싶었고
나중에 그 뜻을 안다면
언젠가는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강이에 이어 한이까지 '건강한'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이름은 기억하기 쉬운 특별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중간이 무너질 위기에
봉착한
거였
다.
강이는 이름을 두 가지로 바꾸고
싶어 했다.
하나는 박이. 그리고 나머지는 강열이다.
최박, 아니면 최강열.
그러면 우리 아이들의 이름은 건.박.한 아니면 건.강열.한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딱 강이만 할 때 이름을 바꾸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내가 바꾸고 싶은 이름은 다름 아닌 '백장미'였다.
지금 보면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7살이던 내게 '백'만큼 강해 보이는 글자는 없었고, '장미'만큼 예쁜 말은 없었다.
그 둘이 합쳐지면, 최강 파워를 가진 가장 멋지고 예쁜 이름이 될 것 같았다.
성을 그렇게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릴 때 지어진 이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기억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 이름으로 수없이 불러주었다.
그렇게
그 이름이
내가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수천수만 번 불려지면서
어느 순간
이름과 나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가끔 용기 있는 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겨지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찾
는다.
유도탄,
피해자,
방귀남
등 평생을 놀림받으며 살아왔을 극한의 독특한 이름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동안 불리던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받아들이는 건,
설레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나처럼 추억을 중시하고 미련이 많은 스타일에게는 더욱이.
문득 신랑에게 물었다.
"
정말 강이가 나중에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하
면
어떻게 할 거야
?
"
신랑은 대번 "아쉽지만 존중해줄 거야"라고 말한
다.
남편과 함께 아이의 이름을 지은 나 역시
건강한으로 이어지는 아이들 이름에 애정이 있지만,
강이가 언젠가 정말로 이름을 바꾼다고
하면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반가울지도 모른다.
늘 새로움을 꿈꾸면서도 말뿐인 나완 달리,
강이가 정말로 그 용기를 실행하겠다고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
나도 그땐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
지 않고
기어코
두 팔 벌려 응원하고 존중해 줄
것이
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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