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경 Jul 18. 2020

어느 16개월 남아의 하루

엄마 맘대로 쓴 16개월 아기의 머릿속

아침햇살이 암막 블라인드와 블라인드 사이 비좁은 틈을

비집고 방안에 새어 들어온다.


7시.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눈을 비비고 옆을 보니 옆에 엄마가 없다. 재빨리 일어난다. 13개월부터 걷기 시작해 지금은 꽤 빠른 걸음으로 걸을 줄 안다. 일단 발가락이 문 아래 지 않게 살짝 비스듬히 비킨 후 문을 열어젖힌다. 종종걸음으로 거실에 나와보니.


이런.

엄마가 소파에 누워잔다. 

'방을 두고 왜 여기 누워있는 거지? 방에 있었다면 옆에서 좀 더 뒹굴 수 있었는데...' 누워있는 엄마에게 내 존재감을 알리고 싶다.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일으켜 세운다.


"으흐. 으으하"

일어나라는 소리다. 엄마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서 웃는다. 아마도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움키고 흔들어 일으키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아ㅡ아"

내 물병을 들고 엄마에게 내민다. 빨리 열란 뜻이다. 물을 마시고 가볍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캬아ㅡ"

그 사이 엄마가 또 눈을 감았다.


기회다.

마침 옆에 빈 컵이 하나 있다. 나는 물을 한껏 빨아들인 후 컵 안에 뱉는다. 그리고 손으로 물을 만진다.

'찰방찰방.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지금이다. 컵의 물을 마신다. '캬아~ 이 맛이야.'

앗. 엄마가 눈치챘다. 다급히 달려와 컵을 뺏어간다. "으앙~~"

분하다.


엄마는 곧 밥을 준다. 형아들과 같이 불고기에 밥을 비볐다.

맛이 그럭저럭 괜찮다. 나는 입을 참새처럼 쩍쩍 벌린다.

엄마가 그러는데 난 뭐든 잘 먹는단다.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싶으면 밥을 바닥에 뱉어본다. 그리고 손을 펼쳐 사정없이 왔다 갔다 흔들어보고 으깨 본 뒤 다시 쥐고 먹어본다. 일명 촉감놀이다. 여차하면 엎드려 강아지처럼 바닥에 얼굴을 대고 떨어진 밥에 입을 가져간다. 입을 대려는 순간 물티슈와 엄마의 손이 내 놀잇감을 쓰윽 닦아낸다.


형들이 학교와 유치원을 간다. 옷을 갈아입는 엄마를 보고 다. 울지 않으면 형들이 등교하는 동안 나는 늦게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집에 갇힌 신세가 될 것이다. 아빠는 내가 더 크게 울 것을 걱정해 등굣길을 함께 하겠다고 한다. 아빠 품에 냉큼 안긴다.

아싸. 오늘도 아침 외출이다.




형들의 등교를 함께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나의 세상이다. 엄마는 팩에 들은 우유를 홀더에 넣고 빨대를 꽂는다. 내 건데 만날 빨대를 꽂음과 동시에 자기가 먼저 맛본다.

"스읍~스읍~" 소리를 내면서. 우유가 튀기 때문이라지만 매번 그 이상은 먹는 것 같다.

나한테 빨대를 물리고 엄마는 형아들이 먹다 남긴 밥을 먹는다. 형들한테 안 먹겠다 약속하더니. 쩝쩝거리며 잘도 먹는다.


우유를 다 먹고 나는 빨대를 뽑고 홀더에서 팩도 빼낸다.

팩을 힘껏 누르면 운 좋게 남은 우유가 튀어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도 있다. '꾹~촤악~' 운수 좋은 날이다. 그러나 우유가 튀어나가는 동시에 엄마도 튀어온다.

물티슈로 나를 닦이고 바닥도 닦는다.

기회다.

나도 재빨리 물티슈를 한 장 뽑아 든다. 바닥을 닦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 물티슈를 입에 넣고 쑤욱 빨아들인다. 아. 이 상큼한 물티슈의 맛. 짜릿하다. 엄마는 금세 내손에서 물티슈를 낚아챈다.


이번엔 뭘 할까. 아무래도 엄마가 설거지하는 틈을 타

주방의 각종 서랍과 하부장노려봐야겠다.

얼마 전 서랍 잠금장치를 붙여놨지만 소용없다. 그것 하나쯤 떼내는 건 나에게 껌이니까.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엄마는 문마다 널찍한 스카치테이프를 붙여놨다. 하지만 엄마가 문을 열 때마다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니 접촉력이 금방 떨어지고 만다. 엄마도 귀찮은지 이젠 방치해놓고 있다.


엄마가 뽀로로 티브이를 튼다. 24개월 이하는 미디어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걸까. 하긴 형아들이 요즘 도라에몽에 빠져서 나의 티브이 시청은 이미 16개월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뽀로로 정도는 박장대소하며 봐준다.


엄마는 티브이를 틀더니 조용히 싱크대로 걸어간다. 내가 모를 줄 알고... 티브이를 조금 봐주는 척하다가 나는 주방 쪽으로 발뒤꿈치를 세우고 유유히 걸어간다. 조미료가 있는 쪽 문을 열려하니 엄마가 달려와 문을 막아선다. 그녀는 유독 이 문에 예민하다. 아마도 엄마가 집을 비우고 아빠와 있을 때 내가 후춧가루를 먹었기 때문인가 보다.


프라이팬이 있는 쪽 하부장으로 타깃을 재설정했다. 역시나 그녀가 엉덩이를 문쪽으로 가져대며 막아선다. 자신도 너무 인색하단 걸 느꼈는지 친히 내게 믹싱볼 두 개와 바가지, 체망과 프라이팬을 쥐어준다. '달그락달그락'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믹싱볼을 가지고 박자를 맞춘다.


이제 슬슬 지겨워진 나는 일어나 그녀를 바라본다.

 "아아~~"하며 손을 뻗었다. 안으란 얘기다. 그러나 그녀는 설거지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나의 필살기를 사용할 시간이다. "음마~" 엄마란 뜻이다. 이 한마디에 엄마 눈이 커지며 "엄마?"라고 나를 쳐다보더니 덥석 안는다. 그러더니 "뽀뽀~"라고 한다. 나는 내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나 내킬 때 외에는 뽀뽀를 남발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한번 쪽. 됐다.


엄만 나를 잠시 안아주는가 싶더니 이번엔 빨래를 하려나보다. 설거지도 다 마치지 않았는데 정신이 없는 걸까. 세탁기가 있는 뒷베란다 문을 열 때 나도 재빠르게 베란다로 나왔다. 이럴 때마다 나를 다시 들여보내곤 하더니 어째 오늘은 그냥 놔둔다. 곧장 분리수거함의 재활용 쓰레기를 만지작 거린다. 어디 보자. 아빠가 먹은 콜라컵이 버려졌다. 집어 들고 나도  번 마시는 척을 해본다. 이번에는 빗자루 쪽으로 걸어간다. 빗자루를 만지자 엄마가 기겁하며 나를 들여보낸다.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들어온 엄마는 내손을 씻기더니 나에게 또 먹을 걸 쥐어준다. 어제 엄마가 외출했다가 사온 빵이다. 내 손엔 빵을 주고 내가 잠시 정신을 판 사이 엄마는 커피를 마신다. 믹스다. 뱃살 때문에 한동안 다이어트 커피를 먹더니 또 시작이다. 엄마가 식탁 의자에 앉아있으니 나도 식탁에 오르고 싶다.

"아아~~" 올라가려 용을 써본다. 안아주는 척하더니 나를 다시 내려놓는다.


빵을 먹으니 왠지 슬슬 배가 아프다. 서서 힘을 줘본다. 개코 기능 탑재한 그녀가 귀신같이 킁킁거린다.


"아 냄새 냄새. 한이 응가했구나?"


목욕은 좋으나 똥꼬만 씻는  난 정말 싫다. 욕실로 가는 순간부터 몸부림을 친다. 속절없이 그녀의 손에 엉덩이를 내어주지만 싫은 건 끝까지 싫은 거다.



새 기저귀를 하고 엄마와 조금 놀다 보니 슬슬 잠이 밀려온다. 그걸 눈치챘는지 엄마는 나를 방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아직 자고 싶진 않다. 순순히 눕는 척하다 다시 일어난다. 어제 했던  '앞 베란다에 있는 작은 화분의 흙 퍼내기, 세숫대야에 고인 차가운 물 몸에 붓기'를 하고 싶어 몸이 근질댄다. 문이 열린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손을 담가도 좋겠다. 요샌 어찌나 다들 문을 꼭꼭 닫고 다니는지 변기 근처에도 못 가겠다.


이놈의 엄마가 내 수를 눈치챘는지 갑자기 나를 등에 들쳐 맨다. 그러고는 청소기를 집어 든다. '위잉 위잉~' 아. 이 익숙한 소리. 어디서 들어봄직한 소리. 엄마 뱃속의 추억이던가. 매번 이 수법에 속지만, 귓가에 맴도는 익숙한 백색소음에 내 눈은 또다시 속절없이 감긴다.




눈을 떠보니 또 엄마는 옆에 없다. 인상을 찌푸리며 아침처럼 밖으로 나가본다.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잘 잤냐고 물어본다. 썩쏘를 날려주니 "아, 귀여워~"고 한다. 사실 나는 이효리 저리 가라는 눈웃음을 가졌다. 가히 양가 통틀어 독보적이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한번 웃어주면 좋아서들 난린가보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좀 흐르니  형아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온다. 형들은 놀이터를 간단다. 나도 매일 나가  걷고 싶은데 엄마는 어째 일주일에 서너 번밖에 나를 안 걸린다. 오늘은 운 좋게도 형들이 나간 후 나도 따라나섰다. 길가에 핀 꽃도 꺾어보고 자동차 구경도 한 후 형들이 있는 놀이터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오늘 놀이터엔 형들과 엄마, 나만 있다. 그걸 본 엄마가 마스크를 풀어 준다.

나는 정신없이 걸어 다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졸졸 쫓아다닌다. 그림자가 따로 없다. 이때 한 할머니가 놀이터에 있는 운동기구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을 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할머니가 엄마에게 묻는다.


"아이 어린이집 보낼 거예요?"

"오전 시간에만 보낼까 요즘 생각을 좀 하고 있긴 해요. 아이도 집에서만 있기 심심할 거 같고. 코로나가 좀 걱정이지만 그나마 우리 지역이 청정지역이잖아요."


어린이집 원장을 만났다고 착각을 했나 보다. 엄만 마치 상담이라도 할 기세로 관심을 보인다. 그때 그 할머니가 말했다.


"어린이집 보내지 말아요~애는 엄마랑 있어야 제일 좋지"

엄만 실망이라도 한 걸까.

"잠깐만 가면 더 재밌진 않을까요? 저도 체력이 달리고"

내가 여기저기 갔을 때 잘 놀았더니 그렇게 생각했나 보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나 혼자만 있을 때도 잘 놀지 어떨지 그건 나도 모르는데.

그때 머니가 한 마디 한다.

"뭐가 힘들어요~ 내 새끼는 황소만해도 안고 다닌다 하잖아요" 

그 말만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지는 할머니.

엄마가 또 고민하겠다 싶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저녁 먹고 잘 일만 남았다. 나는 욕조에서 형들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물론 나는 나만의 언어로 왕왕대고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키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씻을 것이다. 나오기 전엔 나가지 않겠다고 한번 반항을 할 거고 로션을 바른 후 옷을 입을 때와 기저귀를 할 때는 힘껏 도망치기도 하고 발버둥도 쳐줘야 한다. 형들과 내가 개운해하며 노는 사이 엄마는 또 밥을 주겠지. 나는 아침과 점심때처럼 입을 쩍쩍 벌리고 참새처럼 받아먹다가도 바닥에 음식을 뱉고 손으로 만질 것이다.


잠시 전자피아노를 치는 형 옆에 올라가 같이 띵똥 띵똥 연주를 하거나

전원 버튼을 눌러 켰다 껐다를 반복할 수도 있다. 내려올 땐 엄마를 "아~아하" 부르며 나를 안으라 손을 뻗고 죔죔을 하듯 손바닥을 쥐락펴락 할 거다. 나는 아직도 발끝을 세우고 까치발로 걷는 게 좋은데 그러다 여기저기 부딪히곤 한다. 오늘도 벌써 몇 번, 몇 군데 부딪혔는지 모른다. 자기 전까진 그런 일이 더 없길 바라며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찻길로 뛰쳐나가고 싶은데 영락없이 엄마가 막아선다. 결국 엄마는 날 안았다. 나는 "아~~" 소리를 내며 손가락 끝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모든 것이 내 눈에 신기하단 얘기다. 나를 데리고 자주 나오란 얘기다. 힘들어도 이 시간은 금방 지나갈 테니까 더 많이 나를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두라는, 그런 얘기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기면 엄마가 먹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