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가능성의 미생과 안전하지만 리턴이 적은 완생 사이 당신의 선택은?
표지 때문에 읽기 싫었지만
바둑으로 AI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인간 이세돌이 궁금하여 읽었다
이 책은 이세돌의 바둑/대국 이야기, 그리고 알파고와 대결 시 소회 구성된다
하지만 바둑보다는 이세돌의 인생철학에 대한 내용이다
바둑 문외한인 나에게
흑백 돌로 하는 땅따먹기 게임에 (무식한 묘사에 사과한다)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등 뒤에 칼을 꽂는 날카로운 역습"
"거침없이 몰아치는 공격"
"두텁게 막아서는 견고한 방어"
바둑판 위 돌 하나 놓았을 뿐인데 저런 수식어가 맞을까?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 맛을 묘사하는 과도한 형용사 같다
나는 와인 문외한이기도 하다
"복잡한 규칙일수록 오히려 사고를 제한하는 반면, 단순한 규칙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가능성을
높인다. 두 집을 만들면 산다는 단순한 원칙 하나가 수천 가지 복잡한 전투를 만든다." 259페이지
대기업에서는 모든 업무가 세밀하게 매뉴얼 화되어 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까?
자율에 맡기면 방종해질 수 있지만,
반면 규제로 얽매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는다
"바둑에서는 가장 위험할 때는 자신이 유리할 때다. 생각이 많아져 실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불리할 때는 수가 명확해지고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상황을 돌파할 힘이 생긴다" 10페이지
지금 나는 인생의 불리한 국면이니 바둑으로 치면 좋은 거구나!
타협하지 않고 현 상황을 타개하여 돌파구를 만들겠다
" 2016년 말 알파고 마스터버전은 바둑계가 2000년간 지켜온 [3.3 침입] 금기를 깨뜨려버렸다
이제 누구나 당연하게 두는 3.3을 예전에 나는 왜 두지 못했을까?
인간의 믿음과 확신은 얼마나 견고한 감옥인가" 27 페이지
[인간이 책을 만들고, 책은 인간을 만든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지금은 [인간이 AI를 개발하고, AI는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다]
AI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집중력은 체력에 기반한 유한한 자원이므로, 신중히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건 멋져 보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138페이지
나이를 먹고 체력이 옛날 같지 않으니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는 듯하여 더 실감 난다
"바둑에서 상대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선 내 시간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상대적 시간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절대적 시간, 즉 혼자만의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를 향한 인생의 시간 공격은 계속된다." 59페이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받아온 인생의 시간공격은 나이가 들수록 아프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가?
"루틴이 없는 것이 루틴이다"
"사소한 습관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통제했다"
"그런 작은 변수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처음부터 루틴이나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평생 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160페이지
징크스 부자 서장훈은 인터뷰에서 승부에 대한 집착이 하나씩 쌓여 수많은 징크스로 이어졌다고 고백한다
이세돌도 루틴과 징크스가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 믿는 건 각자의 선택이라 했다.
다만 나는 이세돌의 의견에 더 공감이 간다. 징크스가 승부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기에,
스스로 심리적인 허들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형세판단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자기 확신이 부족할 때 형세판단에 집착한다" 172페이지
"믿을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신중함이 중요하지만 행동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173페이지
"자신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175페이지
대부분 의사결정은 미루고 검토만 하는 **그룹 수뇌부가 생각난다
하지만 이 말은 인생의 승부수를 미루고 있는 나에게도 뼈를 때리는 말이다
"우리는 안전하지만 리턴이 적은 "완생"보다 불안하지만 가능성 높은 "미생"을 추구해야 한다" 71페이지
몇 해 전 유행한 드라마 [미생]은 실패한 바둑기사 출신 주인공이 '미생'인 대기업 인턴직을 벗어나 '완생'인 정규직 사원이 되고자 했던 이야기다.
정작 프로 바둑기사로 성공한 '완생' 이세돌은 우리에게 '완생'이 아닌 '미생'의 삶을 추구하며 살라고 권한다
인간의 안전 추구 성향상 편안함을 버리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방향이 맞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도전하여야 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제목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마무리된다
인생을 바둑에 비유한 흔한 인생철학 책
식상할 줄 알았으나 주옥같은 책
추천한다
P.S
이 책을 읽기 전 '승부수'가 바둑에서 유래한 단어인 줄 몰랐다
찾아보니 정석, 포석, 패착, 묘수, 착수, 꼼수, 자충수, 타개, 복기, 사활, 갈라 치기, 호구, 대마불사 등
일상 용어 중 바둑용어가 많더라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