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광녀.
매일 아침 5킬로 미터를 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운동화와 500미리 생수 한 병을 들고 어기적 어기적 아파트 헬스장으로 간다.
오늘도 갈등한다.
'아... 가기 싫다. '
그러면 마음속에 사는 착한 다중이중 한 명이 말한다.
'가서 걷다가 오든 기다가 오든 뛰다가 오든 5킬로만 채우고 오자. 착하지? 웃음 웃음'
그렇게 1분도 안 걸릴 커뮤니티까지 꾸역꾸역 5분 걸려서 간다.
그리고 러닝머신에서 조금 걷다 보면, 5킬로미터 언제 채우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그때부터 광녀처럼 뛰기 시작한다. 뛰다가 헉헉거리며 걷다가 또 뛰다가 그렇게 오늘도 5킬로미터를 채우고 헬스장을 나선다. 저질체력이라 집까지 걸어갈 기운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즐겁다. 왼손으로 내 뒤통수 한 번 쓰다듬어 본다.
'잘했어! 칭찬해!'
그렇게 오늘도 나는 1년 6개월째 출석률 100프로의 약속을 지켰다.
처음엔 3킬로미터 이상만 걷다가 오자! 였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뉴스를 보니 일주일에 최소 30킬로미터는 뛰어야 내장지방이 줄어든단다.
'젠장'
할 수 없이 5킬로미터로 늘렸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힘들다.
그래도 매번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
매일 아침 백팔배를 올리는 스님처럼 일종의 수행의 과정 같은 것이 되어간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너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달리기를 하면 전두엽에 있는 해마가 커져서 기억력도 좋아지고, 우울감도 없어지고, 체력도 좋아지고,
만병통치약과 같다는 달리기에 관한 글들을 성경말씀처럼 믿고 따르기로 했다.
그런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의 고질병인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감'이 상당히 완화된 것 같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찾아오면 꽤 긴 시간 축축한 기분으로 있었는데 요즘은 헤쳐 나오는 시간이 상당히 짧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매트에 용해되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렇게 고군분투하기로 했다.
좋다는 거 다 해 보기로 했다. 매일 뛰고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나보다 훨씬 많이 배운 사람들, 나보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니 믿어본다.
그리고 오늘 출근길.
무단히 행복하다.
오랜만에 날씨가 맑아서 그런가 신이 난다.
아들들 여름방학때 집에 오면 같이 맛있는 거 많이 먹으러 다녀야지.
심야영화도 많이 보러 가야지.
시골에 혼자 있는 엄마도 보러 가야지.
그러네. 오늘은 신나는 날이네.
아마. 달리기를 열심히 해서 그런 거 같아.
동호회를 들고, 마라톤 대회를 참여하고 이런 것 안 해도 괜찮아.
근력운동을 열심히 해서 멋진 몸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매일매일 나 자신과 약속을 지켰다는 것 만으로 나는 내가 너무 대견해. 내가 좋아.
그리고 분명히 느껴져. 몸도 마음도 많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아무렴 어때. 거창하지 않아도 돼.
매일 아침 내가 한 번 쓰다듬어 주는 내 뒤통수는 무척 신나 있는걸.
그럼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