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예슬이 전시회에 다녀와서
이 글은 2014년 8월 17일 서촌갤러리에서 전시된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박예슬 학생의 전시회에 다녀와서 적었던 글입니다. 모쪼록 그날 떠난 아이들이 모두 하늘의 별이 되어 다시는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떠나는 이들이 없기를 지켜봐주길 기원해봅니다.
친구와 함께 광화문에 들렀다가 단식 중인 분들과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신부님, 수녀님들께 마음속으로 응원해드리고 예슬이 전시회에 가기 위해 경복궁역으로 향하는데 두 사람의 경찰관이 따라붙었다.
"죄송합니다만 어디 가십니까?"
"서촌 갤러리에 전시회 보러 가는데요?."
"서촌갤러리라면.... 아! 그 학생 전시회요?"
"예."
바쁘게 무전으로 우리의 행선지를 알리는 경찰관... 그리고....
그렇게 어색하게 경복궁역 4번 출구부터 서촌갤러리까지 우리 두 사람과 경찰관 두 명의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어라.... 우리가 거수자(거동수상자)가 된 건가요?"
".. 아.... 요즘 분위기가 이래서.... 죄송합니다."
멋쩍어하는 경찰관을 보니 공연히 우리가 미안해지는 상황으로 흘러갔지만,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어디론가 가는 상황에 경찰관이 따라붙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스스로 용납하고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것에 적잖은 짜증도 솟아났다.
"괜히 우리 때문에 멀리 걷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하루 종일 서 있었더니 좀 걷는 것도 괜찮네요."
"빨리 이 상황이 해결되어야 할 텐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의경 수도 줄어서 직원들이 지원 나와있는 상황이라.."
본의 아니게 동행하게 된 경찰관들과 수다를 떨며 걷고 있노라니 경복궁역부터 효자동 입구까지 삼엄하게 스크럼을 짜고 있던 수많은 경찰관들도 그냥 익숙한 풍경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서촌갤러리 앞에 도착하고....
"공연히 우리 때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잘 보고 가세요."
그렇게 동행자들(?)과 작별하고 서촌갤러리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예슬이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예쁜 구두 두 켤레와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려온 적잖은 작품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동영상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작은 공간을 예쁜 손으로 또박또박 채워간 느낌. 하지만, 앞으로 더 채워갈 수 없게 된 상황에 가슴이 아파왔다. 너무나 이른 시간에 멈춰진 예슬이와 친구들의 시간들. 어쩌면 살아남아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지게 된 부채의식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예슬아, 아저씨는 네가 탔던 것과 같은 배에서 일하고 있는 항해사란다. 어쩌면, 처음 네가 이곳에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을 때 바로 와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도 내 일과 적잖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예슬아, 딴 것은 약속할 수 없지만 아저씨가 한 가지 약속은 꼭 해줄게. 내가 배를 타는 동안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 뒤에 다른 사람을 두고 도망가진 않겠다고, 그리고 너와 네 친구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쪽지에 꼭 적어두고 싶었던 글을 적어두고 전시회장을 나섰다.
나오는 길에도 여전히 스크럼을 짜고 있는 수많은 젊은 경찰관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 배를 타는 사람들과 땅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둘 다 생활해본 경험을 통해 말해보자면) '나 하나쯤'하고 농땡이를 치게 될 때 잘 드러난다. 물론 땅에서도 밥먹듯이 농땡이를 치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그런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겠지만 배에서는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대충하게 되면 어떻게든 바로 티가 나게 되고 그것에 대해 응당 책임을 질 상황이 땅보다 일찍 다가오게 된다.
특히, 요즘은 배 자체에서 손보거나 열중해야 할 일만큼이나 준비해야 할 paper-work와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 역시 소홀히 했다가는 남의 나라 항구에서 배가 출항도 못하고 붙들리거나 검사관에게 자존심 뭉개질 -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 각오부터 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뱃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우리는 정직하게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위안을 가지고 있다. 화물과 선박에 승선해 있는 나와 동료들의 안전을 최고의 목표로 험한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Good Seamanship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며 뱃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새삼스럽게 2014년 4월 16일의 그 참사를 잊지 않고 끄집어 내게 된다, Good Seamanship을 잊어버린 뱃사람들이 어떤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지. 자랑스러워하는 나의 일이 어느 순간에 다른 이들에게 말을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것 하나는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련다.